감정은 언제나 천천히
누구보다 슬펐지만, 누구보다 조용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흘리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는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쳤지만, 얼굴은 마치 오래된 벽지처럼 말라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상주 복장을 입은 채, 문상객들 앞에서 허리 숙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정해진 말들을 반복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들 사이로, 나는 계속 내 표정을 점검했다. 나는 왜 이토록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가.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건 좀…”
나는 들었다. 귀를 막고 싶었지만, 내 귀는 참 쓸모없게도 멀쩡했다. 새아빠의 친척이 뒤에서 작게 말한 그 한 마디는 내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할퀴고 지나갔다. 순간 울컥했지만, 그 울컥함조차도 삼켜버렸다. 장례식장은 애도를 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관리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거기서 감정을 소비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아니, 정확히는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엄마를 미워했다. 살아있는 동안 그 두 감정은 줄다리기처럼 내 안에서 싸웠고, 그 싸움은 늘 무승부로 끝났다. 엄마는 아플 때조차도 나를 애틋하게 챙겨주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무거운 짐을 남겼다. 간병의 시간 속에서 나는 여러 번 엄마를 탓했고, 또 여러 번 미안해했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나는 안도와 공허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 안도는 죄책감을 동반했다. 너무 오래 간병을 해서였을까. 더는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더는 이런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 나를 몹쓸 딸이라고 자책하면서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떠난 그날, 나는 도망쳤다. 감정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그리고 내 스스로로부터.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울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마치 무대 위에서 실수를 숨기기 위해 아무 일 없다는 듯 연기하는 배우처럼, 나는 그 자리를 버텼다. 나를 의심하는 시선과, 조용히 나를 평가하는 말들 속에서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장례식은 '죽음'에 대한 의식을 치르는 자리인데, 정작 '산 사람'의 감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이 정해진 틀 안에 있어야만 한다. 적당히 울고, 적당히 무너지고, 적당히 위로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틀을 벗어났다. 너무 조용했고, 너무 무표정했고, 너무 멀쩡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슬펐다. 무릎이 아플 만큼 오래 서 있었고, 속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말라버렸고, 심장은 계속해서 쿵쾅거렸다. 나는 너무 많은 걸 참고 있었고, 그래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울면 무너질까 봐,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할까 봐,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버텼다. 그건 오히려 내 방식의 애도였다. 조용한 슬픔, 조용한 애도.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혼자 방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TV도 켜지 않았고, 불도 켜지 않았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꺼이꺼이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울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슬펐다는 걸 알았다. 장례식장에서는 감정을 잠갔지만,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는 그 감정이 서서히 틈을 타고 올라온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한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던 사람들, 조용히 수군대던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걸 다 듣고도 아무 말하지 못했던 내 모습까지. 시간이 흘러도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나는 내 마음속에 대고 묻는다. 그날, 나는 정말 울지 않았던 걸까? 아니, 어쩌면 나는 계속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 방식이 남들과 달랐을 뿐.
나는 이제 조금은 안다. 진짜 슬픔은 때로 너무 커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걸. 눈물로 표현되지 않는 슬픔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슬픔은 조용히 사람을 갉아먹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는 걸.
나는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은 딸이었다. 하지만 그게 슬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 슬펐고, 누구보다 애도했고, 누구보다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그러니 이제는 말하고 싶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타인의 슬픔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애도에는 정답이 없다고.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 슬픔을 살아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