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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Apr 19. 2022

중년, 소원이 생겼다

나는야 태국의 한국어교사!

1. 

나의 생일은 봄이 오는 초입에 걸터앉아있다. 

잔망스러운 봄의 재채기가 반가울 즈음 또다시 돌아온 생일. 소담한 생일 케이크를 압도하는 촛불의 수가 아찔하다. 한국에서 맞이하는 생일이니 한국나이만큼의 초가 빽빽하게 꽂혀있는 케이크, 촛농이 떨어질까 잔뜩 쫄았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내 몸이 기억하는 봄의 개수로 나이를 셈한다면 좋겠다. 그런 셈법이면 봄이 없던 열대의 나라에서 산 세월이 십년을 훌쩍 넘으니 지금의 나이에서 그만큼 빼야 내 실제 나이가 되지 않겠냐고 우길 수 있지 않을까. 생일케이크 위에 올라간 초의 개수가 부담스러워 긴 초를 하나 빼볼 양 떠오른 얄팍한 속셈이다. 그런 셈법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내 몸이 내게, 맞이한 여름의 수를 더 생생히 기억하니 그 수로 나이를 셈하자 따지고 들면 어쩌려고. 경험한 계절 수와 무관한 헷갈리지 않을 가장 정직한 셈을 해볼까. 그러니까 나는 태양의 주변을 몇 번째 공전한 거지? 이런이런. 나이의 무게가 버거웠나. 케이크를 앞에 두고 난무하는 쓸 데 없는 잡생각들이라니.


이제 케이크 위 촛불을 끌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생일맞이 행사에서 소원빌기 순서란 ‘이모’에게는 사치다. 촛불 끄기는 어린 조카의 몫이다. 조카는 언제쯤 어른에게도 소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까. 촛불을 얼른 끌 양 오리 같은 입술을 쭉 내민 조카아이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 

‘올해는 이모에게도 소원이란 게 있단다.’ 


그렇다. 올해 나에게 그럴싸한 소원이 생겼다.

한국어교사로 태국에서 살기.

이 한 문장의 소원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한국어교사가 되는 것. 그리고 태국에서 사는 것. 두 가지 옵션 모두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도전이다. 나는 왜 직업을 바꾸려하는 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대한 경력으로 인정과 대접을 받아야할 이 중요한 시기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잠시 내 전 직업을 잠시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2. 

최근 15년간 나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조금은 세상에 덜 알려진 분야, 내 부모님조차 딸의 직업 소개가 어려워 큰 딸 직업이 뭔지 묻는 친구들에게 해외선교사(실상 나는 무신론자다)라고 얼버무리는 분야에서 현장 활동가로 지냈다. 캄보디아, 네팔,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등의 나라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학교 건물과 도서관, 마을센터를 짓고, 한국어교실과 사회적 기업, 한의원, 결혼이주여성지원센터, 여성직업훈련센터를 차리고 운영했다. 이미 짜여진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했고,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강산이 한번 반 변해있었다.


현장에서의 활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은 커져만 갔다. 현지인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해결되기 바라는 열망에서 시작한 활동이니 그 의지는 좋았다. 하지만 나로 인해 사업이 자칫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 민폐 한국인이란 낙인이 찍힌 채 퇴장해야하는 건 아닌지 항상 고민이 컸다. 치열하게 반복되는 낙망과 보람의 감정에 마음이 곤죽이 되기 일수였다. 

그런데도 왜 나는 현장을 떠나려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답은 하나, ‘사람들’ 때문이었다. 마음만 앞섰던 어설픈 내가 ‘감히’ 손을 빌려주겠다고 간 곳에서 되레 도움 받는 일이 몇 곱절 더 많았다. 가는 곳곳마다 온통 고마운 사람들 천지였다. 좌절할 때마다 따스한 격려로 등을 두드려주는 현지 사람들의 따스한 배려가 나를 계속 머무르게 한 것이다. 


문제는 현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더니 마음의 빚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마음의 빚과 활동에 대한 회의감에 설상가상 그 무섭다는 중년 위기가 덮쳤다. 몸과 마음이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고루 아팠다. 나는 아픔을 감수할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다. 아픈 나부터 보살피자. 그런 이유로 올해 초 결심을 했다. 현장 활동가라는 타이틀에 작별을 고하기로.      


작별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다른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살아보고 싶었던 나라 태국에서 오랜 기간 마음에 품고 있던 직업 한국어교원이 되기로 말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얼마 전에 한국어교원 태국 파견사업 공고문을 발견하고는 들뜬 마음으로 지원서류를 준비하는 중이다. 내세울 만한 한국어교육 경력이 없는 이력서가 부끄럽고 오랜만에 써보는 자기소개서는 무진장 낯간지럽다. 생일 촛불 앞에 합격소원을 빌지 못했으니 밤하늘 보름달에 의지해야겠다. 

그나저나 정안수는 어디서 구하나...



조카에게 받은 첫 생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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