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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Dec 17. 2022

든든한 받침이 되고 싶어!

한글 받침을 닮은 한국어 선생님이 된다는 것에 대해


1.

“미소야, ’ 먹다’의 ‘먹’은 받침이 있으니까 뒤에 ‘으려고 해요’를 써야지. ‘보다’는 받침이 없지? ‘려고 해요’를 쓰고."

"아니 아니, 연화야, ‘라면를’이 아니라 ‘라면을’!"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우리글이 ’ 받침‘이 있는 글자를 쓰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초급 수준의 수업이 많다 보니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앞에 받침이 있어요. 어떻게 써요? 앞에 받침이 없어요. 어떻게 써요?”이다.      

태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하는 때도 받침의 등장이 크게 연루되어 있다. 

한국인이라면 의식할 필요도 없이 쓰는 조사 ’이/가, 은/는, 을/를'이 받침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외국인 입장에서는 늘 염두에 둬야 하고 받침 뒤에 누가 따라붙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발음을 연습하는 것도 외국인들에게는 지난한 과제가 된다.


       

불규칙 활용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일등공신도 받침이다.

학생들이 어제 배웠던 '듣다'와 ‘받다’의 경우만 해도 태국 학생들이 야돔을 미친 듯이 코에 쑤셔 넣고 싶었을 만하다.

(태국 사람들이 애용하는 야돔은 막힌 코를 뚫거나 어지럽다 거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멀미날 때, 더해 그저 습관처럼 쓴다. 수업시간 학생들의 한 손에는 볼펜이 다른 한 손에는 야돔이 들려 있을 정도다.)   

‘듣다’는 ‘들어요. 들으세요’가 된다고 하더니 ‘-고 있어요’를 배우면서는 디귿을 리을로 바꾸지 말라고 배우는 것만 해도 머리가 지끈한데, ‘받다’는 ‘받아요, 받으세요, 받고 있어요’ 라니.

의아해하며 “왜요?”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그냥 외우세요.”라고 말하는 이 내 마음이 어찌나 쓰라리던지.



우리 학교 제2외국어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가 있다.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선택한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한국의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드라마를 언급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장 솔직한 답은 중국어, 일본어보다 생긴 모양이 쉬워서 학습이 쉬울 거라는 기대다.

쉽겠거니 판단하고 선택한 언어의 배반이다.

한국어가 얼마나 불규칙스럽고 예민하며 까다로운지를 경험하면서 뭣도 모르고 한국어를 선택한 학생들은 후회하기 시작한다.     



2. 

여전히 ‘이/가, 은/는, 을/를’ 사용에 애를 먹는 고1 한국어 교양반 학생들을 위해 이 조사들을 반복 연습할 문제지를 만들다가 받침이 있는 우리말 한글을 객관적 시각에서 물끄러미 보게 되었다.

뭐 이리 흥미로운 언어가 다 있담.


폐에서 나오는 바람의 지지를 실컷 받으며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는 자음과 모음의 발아래 받침이 짜잔 나타나면 위에 놓인 자모의 사랑에 제약이 가동된다.

기호에 따라, 그러니까 기역은 목구멍에게, 디귿은 혀에게, 비읍은 입술에게 방해꾼 역할을 부여하는 거다.     

받침이 입말에 제약을 주는 역할을 한다지만 받침이 쓰인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정겹기 그지없다.

위에 놓인 자모를 다정하게 어부바하고 있는 모양 아닌가.

위의 자모를 절대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 간격을 유지하지만 든든하게 위의 자모 커플을 지지하는 거다.     

한글의 받침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조금은 생뚱맞은 바람이 생겼다.

한글의 받침과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각 학생들의 고유한 특성과 성질을 침범하지 않는 간격을 유지하며 그 아래에서 든든한 역할을 하는 받침, 나 잘났다 뽐내지 않고 제 역할을 묵묵히 하는 받침, 그러한 교사.

포부가 큰가?     



3.

얼마 전, 고 2 한국어 전공반 학생들이 공책에 쓴 과제를 검사하다가 사랑이의 공책을 통해 받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올바른 받침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랑이가 내게 일깨워준 거다. 

    

‘-(으)ㄹ 거예요’ 문법을 학습할 때 내 준 예문으로 문장을 만드는 과제였다.

‘저녁’의 받침인 기역이 니은으로 바뀌었을 때의 파장, 게다가 그 뒤에 따라오는 동사가 하필 ‘먹을 거예요’가 되어 그 평범한 문장이 호러물 시나리오 문장으로 바뀐 걸 보면서 ‘받침 하나가?!’하며 웃음을 빵 터뜨렸다.     

사랑이의 공책을 들고는 마스크를 나풀대며 웃는 나를 사랑이가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음, 사랑아, 웃어서 미안. 저녁은 받침이 기역이야. 기역!”


빨간펜으로 니은을 기역으로 고쳐 써주며 받침의 쓰임에 대해 생각했다.     

한 획 차이로 따스한 저녁이 누군가의 앙심이 담긴 저년이 된다.

아름다운 저녁놀을 품은 저녁처럼 남을 교사 될 것인가 상스러운 언어로 소모될 교사가 될 것인가.

받침의 역할은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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