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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대기업 워킹맘의 고백

내가 벌써..

by 허당 언니

내가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

50대에 퇴직을 못하고, 아직, 대기업 귀퉁이에 머물고 있는 나의 모습은

끈질긴 생명력일까?

승진을 포기하고, 그냥 하루를 존속 버티고,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는 나의 비루한 모습에서 비롯되었을까?


내가 50대가 되어서, 아직도 회사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이시점에 내가, 20대때, 30대때, 40대때는 아직도 그 50대에 회사를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를 못했다.

난 x세대이다. 당돌함의 대명사, 싸가지의 대명사였던 그 시대에서,

올해로 대학입학 30주년을 맞이했고,

회사를 다닌지, 25주년을 맞이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이렇게 버틴 내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하루 하루를 주저 앉지 위해 사는 삶을 사는거 같다. 버틸수 있는대 까지 버텨 보다.

체력이 언제까지 버텨 줄까? 난 아이들이 어느 나이때까지 일을 할수 있을까?

내가 회사를 관두고 나가서 할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하루에 출퇴근 2시간을 오로지 이생각을 한다.

미어터지는 9호선을 다면서, 급행을 타지 않으면 지각하고, 최대한 애들 엄마라는 티를 안내기 위해서 버티온, 후반부의 직장의 삶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시도를 해봤지만, 참 고되기만 할뿐 안정적이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 거대한 톱니바퀴의 생활의 나사의 삶을 지속할지도 모르겠고, 그동안의 삶의 한심스럽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곳이 있고, 퇴근할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 하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회사에서, 그들은 일이 힘들고, 상사가 또라이라고 해서, 이직을 참 쉽게 한다. 나도 그럴때가 있었는데,.. 대기업 경력와 외국계회사의 경력, 해외 주재원의 경력까지. 나이가 드니, 눈만 높아져 갔다. 이래도,

난 이직하더라도 받아 줄곳도 없다는 것을 40대 중반에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여자, 아직 어린 애들이 2명이고, 아프면 뛰어 가야 하고,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그런 상황에서,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만 하는 것도 버거울 따름이었다.

똑같은 업무를 주더라도, 이제 쳐내기만 할뿐, 그리고 오늘 칼퇴를 할수 있을까? 나 없는 아이들이 걱정이었고, 일에대한 열정을 내 안에 담아내기가 참 힘들어졌다. 부당하지만, 침묵해야 했고, 어린 상사들, 후배들의 팀장과 본부장, 상무가 될때, 그들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벌써 마음으로는 퇴직을 했지만, 50대가 되어도 내 몸을 일어나서, 하루를 보낼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간혹, 협력업체의 어린 직원들, 회사의 어린 후배를 보면, 라떼를 모르게 뛰어 나온다.

"멈쳐야지. 멈쳐야돼. 니가 머라고" 이게 나의 위치다. 조용히 침묵하는 시간이 늘었고, 이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수용으로 보이겠지만, 그들은 젊으니깐, 여기 안다니고, 다른 곳에 다녀도 된다.

수 틀리면 나갈수 있지만, 난 여기가 마지막 직장인듯하다.

"올해 50, 내가 여기서 얼마를 더 다닐수 있을까? "

머리카락은 벌써 반백이 되었고,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지치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난 내 나이에 허탈하고, 이러다, 일 만하다 병들어서 늙어 죽을거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한다.

그런데, 회사가 그만 다니라고 할때까지 버티고 싶다.

매일 아침 반백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이제 쉬어도 되지 않을까? 체력도 되지 않았아?" 나 자신에게 반문을 한다.

"이제 니가 정말 하고 싶은일을 해봐, 건강하게 살 날도 많이 남지 않았는데"

그래서, 재작년에 성과 평과가 어떻게 되든, 3개월을 쉬어봤다. 3개월동안 쉰 나는, 내가 IMF 시대라는 것을 잠시 까먹고 있었다.

취업이 안되어서, 멀쩡한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이 안되었던 그때,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아서, 환율을 무시하고, 어학연수, 해외 유학을 보내 줄 형편이 되지도 않았다. 맘 졸이면서, 취업 준비를 한 시기를 떠오르는, 아무런 대책없이 회사를 관두는 것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나큰 트라우마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을 쉬면서, 난 할일이 없었고, 무엇을 할지도 몰랐다.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고, 집안일 하고, 커피마시고, 낮잠자고, 그리고 넥플릭스 보고, ... 어느순간 밤낮이 바껴있었을뿐. ...

나의 본모습, 강요하지 않으면, 게으르다는 것을 깨닫는 3개월의 시간이 흐리고, .. 희망퇴직 없는, 일이 힘들어서 자연 퇴사율이 높아서, 희망퇴직 계획도 없는 회사를 계속 다니게 되었다. 회사를 가면,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 내가 50대라는 것도, 내가 애 엄마라는 것도 잊고 지내고, 하루에 시간이 너무 잘 간다.

나의 시름도, 나의 흰머리카락도,

정신적 체력, 육체적 체력이 고갈이 되어도 이렇게라도 버티고 싶은것은, 일이 주는 중요성 때문이다.

그 일... 돈 되는일. 내가 아이들과 먹고 살수 있는 힘이 되는 , 돈 되는 일을 스스로 못 일으켜서 이다.

회사에 출근 하면,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4~5명 아침에 회장실과 캔틴을 청소하는 모습을 본다.

다들 내 나이또래. 사뭇 젊어진거 같다. 내가 나이를 들어서 인듯 ..

그들이 결국 돈 때문에 남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바닥청소를 할텐데, 내가 이 회사를 관두면, 나도 저들속에 어느순간 끼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정말 25년동안 회사만 다닌듯하다. 그 안에서 생존의 기술, 그건.. 아직까지 있는듯하지만, 승진의 기술은 없고, 그냥 묵묵히, 전형적인 곰과(X세대 ㅋㅋ만 아는 단어 ) 여성이다.

어느순간에는 실적이 나겠지. 어느 순간에는 알아주겠지. 근데, 그게 정답인데,,, 이제 나이가 드니 이것도, 체력이 딸린다. 그 근면 성실도 어려워진다.


젊은이들 기준으로 머리가 안돌아고, 이해력이 딸린다. 한 말을 꼽씹어서 생각해야 하고, 한번더 유동식처럼 씹어서 먹어야 그들의 수준의 평타가 된다.


아직까지는 버티지만,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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