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워킹맘의 진짜하루, “밥 짓는 엄마, 일하는 여

by 허당 언니


50대 워킹맘의 진짜하루, “밥 짓는 엄마, 일하는 여자”


어느 순간, 나는 ‘때늦은 워킹맘’이 되었다. 진정한 워킹맘. 방학 때 아이들의 삼시세끼를 걱정하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 세 끼를 준비해야 하는 그 워킹맘이 된 건, 정말 좋은 이모님을 만나 12년 가까이 살림을 도맡아 해주셨기 때문이다.

워킹맘의 비빌 언덕, 3대 복 중 하나. 친정도 시댁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나는 이모님 덕분에 12년간 직장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고, 50이 되어도 아직 현업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남의 집에 가서 이모님 역할을 할 나이가 되었고, 회사에서 청소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비가 계속 드는 이 도시생활 속에서—시골도 돈이 든다고는 하지만—하루 세 끼 밥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마친 후 함께 집을 나서 또 다른 출근을 한다.

이모님이 계셨을 때도 시간이 부족해서, 내 인생의 또 다른 준비를 못 한다고 단언했는데, 정말 내가 50대까지 직장생활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 시골 입맛에 길든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국과 찌개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아이들. 엄마 반찬은 맛이 없다는 아이들. 절대적인 기준은 이모님의 손맛이다. 똑같은 재료로 고향의 맛을 재현해도 그 맛이 안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아, 시간은 항상 없구나. 지금이 제일 시간이 많을 때구나.”

이런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머리가 반백이 된 나이에, 나는 김치도 안 좋아하고 찌개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게 안 되는 현재의 식습관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50대, 진짜 하루 세 끼를 해야 하는 주부로서, 다시 양념의 조합—간장, 된장, 소금, 설탕, 감미료, 조미료—에 따라 아이들의 입맛을 테스트하며, 가지무침, 잔멸치볶음, 노각무침, 두부조림, 순두부백반, 감자국, 미역국, 김치찌개, 부대찌개… 매일매일 끓이며 세 끼를 준비한다.


그리고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맛없어… 맛이 음…” 하는 아이들을 때려주고 싶지만, “너희들이 배가 안 고파서 그래. 간식 먹지 마.” 하면서도 굶을까 봐 간식을 사놓는다.

맞벌이 엄마로서 결핍이 있을까 봐, 아이들이 얼굴이 뜰까 봐, 배고픈데 못 먹을까 봐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늦은 결혼으로 꼬박 35년간 밥을 챙겨주셨는데… 그 한 끼 한 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오늘 아침에도 식세기에 설거지거리를 넣으며, “먹는 건 없는데 왜 이렇게 설거지거리가 많아?” 생각했다. 얼마나 고되셨을까. 그 시절엔 식세기도, 청소기도 없었는데… 건조기는커녕.

점심시간에 잠깐 마트를 다녀오며, 매일 장 보러 가셨던 엄마 생각이 났다. ‘해먹이려고 그렇게 장을 보셨구나.’ 매일 반찬 투정하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뭐라도 하나 먹여서 보내려던 엄마.

“과일 깐 거야. 이거라도 먹고 가.” “아이, 싫다니까. 늦었어, 바빠…”

외면하고 나왔던 싸가지였던 내가, 지금 아이들이 이렇게 입이 짧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모님이 없어지면서, 계속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쫓기는 듯한 삶.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가고, 집에서 자습하며 공부 습관이 안 든 아이들. 혹시 중요한 시기에 엄마의 부재로 아이들이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학원을 보내서 해결한다고 하지만, 엄마의 응원은 내면 속에서 누군가 나를 지독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 사랑이 공부의 원동력이라고 믿는 나로서, 이것을 아이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부랴부랴 퇴근해서 집 청소, 설거지를 하다 보면 밤 9시. 아이들과 잠깐 얘기하고 씻고 나면 잘 시간이 되는 현재의 운영체제.


쓸데없이 마음만으로 산 음식들로 냉장고 속은 자꾸만 썩어가고, 아이들에 대한 마음… 이 망할 손이 그 귀한 재료들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날마다 버리며, “이렇게 음식을 해먹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정년이 60에서 65세로 늘었다고 해도, 정년이라는 퇴직은 단순히 나이의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여자, 특히 아이를 출산한 일하는 엄마로서, 이모님이 없었다면 나의 정년은 출산 후였을 것이다.

이분 덕분에 내가 50살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이건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의미가 아니라 생애 주기가 빠진, 그들만의 리그 속의 정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인플루언서가 된 어느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현재 직장의 지인의 지인. 내 주변은 나처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투성이라서 유명인을 안다는 것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를 보며 느낀 건, 우선 유명해지고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있어야 50대에 회사를 퇴직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돈이었다.


그냥 살아갈 만한 돈. 아이들이 자립할 때까지 교육시킬 수 있는 금액. 아이들과 외식할 수 있을 만한 돈. 주인이 나가라고 해도 세를 구할 수 있는 돈. 추우면 따뜻한 외투 하나 살 수 있는 돈.

솔직히 나는 아이들 교육에 막 투자하지도 않고, 영어유치원이나 영어학원도 안 보내는 엄마다. 브랜드 옷도 없고, 명품 가방 하나 없지만, 그런 욕심은 없다. 다만 먹고 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고 싶다.

호텔 같은 의식주는 바라지 않는다. 퇴근 후 맥주 한 잔 사 먹을 수 있는 여유. 아이들과 피자 한 판 사 먹는 데 부담 없는 돈.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한 달에 20~30만 원 드는 학원비. 친구와 만나 차 한 잔, 케이크 한 조각 내가 낼 수 있는 여유.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는 돈. 과소비하지 않고 딱 그 수준이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하루에 1시간 정도 글을 쓰고, 영상을 제작하고, 1시간 정도 운동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너무 욕심일까? ㅋㅋ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물 쓰레기가 될 수 있는 밥, 반찬, 국을 만들고 있다. 배달을 시켜야 하나? ㅋ

keyword
작가의 이전글50대, 대기업 생존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