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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허울뿐인 경력, 그 끝에 찾아온 현실"

by 허당 언니


먹을 자리를 맡고, 컵라면에 물을 붓고, 김밥에 렌즈를 돌려서 막 먹을려고 하는 찰라에, “띠르링,띠르링” 전화가 왔다. N사(유통회사)의 식품그룹을 맡고 있었던 양차장이었다. 내가 N사를 나가면서, 그 뒤의 바통을 이은 후배가 전화가 왔다.


편의점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하필 이때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바로 받아도 되지만, 일부러 그냥 울리게 놔둔다. 내가 너무나 한가한 백수처럼 보이기가 싫었다.


그 후배는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동료였다. 정확히 말하면 후배는 아니었지만, 직장 먼저 들어오고, 내가 나이도 많으면 내가 선배 아닌가? 내가 외국계 칫솔회사에서 영업하면서, 두 번째 직장인 외국계 세제회사로 넘어오면서 그 후배를 만났다. 같이 근무하면서 의기투합이 되었고, N사(유통회사)로 내가 같이 옮기자고 얘기를 했다.


“이제 제조사에서 영업하는 거 지겹다. 허울만 좋지, 개뿔, 맨날 국내 소비자, 유통사로 영업만 해야 하고, 별 잘난 것도 없는 새끼들이, 갑이라고 뻣대는 꼴을 보니, 배알이 틀려. 우리도 갑좀 해보자. 저 갑질하는 유통사를 가서, 좀 조져 놔보자. 내가 영업하고, 조지는 건 선수잖아 헤드 헌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15년~20년 경력으로 카테고리 별 실적 목표 달성을 위한 종합적인 브랜드관리, 전략, 차별화를 추진하기 위해 시장 기회와 소비자 트랜드 분석, 목표 달성을 위한 제품 판매 지표를 추적하고 분석, 제품실적 및 시장상황에 대한 장기적인 기회 포착을 한단다. 같이 가자”

후배라고 하지만, 아무런 후배가 아닌 양차장 역시도, 그런 시간이 지겨웠고, 유통사 경험이라도 해야지, 나가서 사업이라도 하지라는 계산이 있었던 거 같다.

내 입장에서 내가 양차장과 같이 가자고 한 이유는 내가 숫자에 약해서이다. 유통은 다 숫자라고 하는데, 숫자에 강한 놈이 있어야 같이 살아 남을 거 아니야. 두 번 째 직장, 아니, 첫 번 째 직장에서도 항상 내 꼬봉이 한 명씩 있었다. 똘똘한 놈인데, 내 말 들을 놈으로, 숫기는 없는 놈으로,, 너무 머리를 굴린다든가, 인간관계가 좋아도, 뺀질해도 지가 나를 치고 올라 갈수 있으니깐, 나보고 좀 나이가 어리면서, 나 배신 안 할 숫자에 강한 놈이 필요했다. 어쩌면 W사를 옮기면서 그 후배를, 양차장을 안 데리고 가서 그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내 사람이 없어서, 그 어리디 어린 사장한테, 회의 시간에 “이본부장님, 가장 기본적인, 이런 것도 체크 안 하시고 회의에 들어오셨어요? 지금 경력 몇 년차시죠? “ 첫 업무 보고 자리에서, 병신처럼 금액의 단위를 빼먹고, 작년 대배, 전월대비 성장률, 증가률의 수식도 틀리고 숫자가 틀리니, 당황하고, 까매지고, 어벙벙 했던 거다.

또 당황해서, 사유 분석 할 때, 유통의 금기어를 썼다. 유통에서는 사유 분석 시 절대 나오면 안되는 금지어, 단어가 있다. 바로, 비로 인한, 폭설로 인한, 태풍으로 인한, 출산율이 떨어져 등의 누구나 뻔히 아는 날씨와 인구에 대한 매출 부진에 대한 사유이다.

“작년보다 분유와 기저귀의 판매량이 줄어든 이유가 출산율이라구요?” 그럼 N사는 전월대비 20% 성장했다고 하는데, 그 정보도 파악 안하시고 오신거에요? 거기는 무슨 다른 나라입니까? 거기 이용하는 고객하고 우리하고 다른가요?”

“폭설 때문에 매출이 떨어 질 거라구요? 무슨 구시대적 발언이세요? ”

아차 싶었다. “아니, 배송 시 사고가 발생 할 수도 있고, 협력업체들이 폭설로 납품을 못 할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하자고 말씀 드렸는데, 제가 워낙 말주변이 없다 보니, 말이 잘못 나온 거 같습니다. “

같이 일하던 사람이 없으니깐, 대표에 대한 정보도 어떤 스타일인지도, A급의 정보를 못 파악하고 회의에 왔다. 이렇게 다른 임원 진 앞에서 바보 취급 당하는 그 사단이 안 났을 수 도 있었다.

W사의 채용부터가 1명만 필요하다고 했고, 이제 유통도 2년정도 경험했는데, 나 혼자서 될 줄 알았다. 이 자리가 대표 욕바지 자리인줄은 몰랐다. W사에서 너무나 파격적인 스톡옵션, 상장만 되면 10억 가치를 제시했었다. 10억만 있으면 일안하고 노후는 편하지 않을까? 아이들 대학등록금, 결혼자금으로 3억씩, 나머지는 내 노후 자금으로 하면 딱 맞을 거 같았다. 지금은 다 물거품이고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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