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산 도시의 부활, 의도치 않은 트럼프 효과

방산

by 기린

러시아의 침공과 미국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면서,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던 방산 산업 도시들이 다시 부흥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부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구 6만 4천 명의 이 소도시는 과거 무기 수주 감소로 일자리를 잃으며 침체를 겪었지만, 최근 미사일과 자주포를 생산하는 유럽의 방산 대기업 MBDA와 KNDS가 향후 5년간 총 10억 유로를 투자하고 2,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을 세우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미 국방 예산 증액 덕분에 신규 주문이 늘었고, 실업률도 전국 평균 이하로 떨어졌으나, 인구 유입에 따른 주거, 보육, 교육, 의료 서비스 부족과 숙련 인력 양성,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새로운 과제가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독일 하노버 인근의 운터뤼스에서도 나타난다. 라인메탈은 이 도시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두고 있으며, 자주포와 장갑차에 이어 탄약 공장까지 신설하면서 직원 수가 곧 주민 수(약 3,500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소음과 교통 혼잡, 오염이 심해지고 지역 상권이 빈약한 탓에 주민들은 정작 큰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연방 선거에서 이 마을의 극우정당 AfD 지지율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게 나온 것도 이러한 불만의 반영일 수 있다.

한편, 폴란드는 다른 방식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올해 국방비를 GDP의 4.7% 수준까지 끌어올렸지만 대부분의 군 장비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국방장관은 전체 군 장비 주문의 절반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자 한다. 그러나 국영 방산기업집단 PGZ가 민간 기업을 압도하며 자국 군대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비효율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주포와 ‘보루숙’이라는 국산 장갑차를 PGZ에 발주했으며, 이 차량을 생산하는 남동부 도시 스탈로바 볼라는 이를 계기로 산업도시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이 도시는 과거 제철소와 함께 만들어졌지만, 1990년대 대량 해고 이후 외국 자동차 부품 투자를 통해 겨우 산업 기반을 회복한 곳이다. 현재는 방산 수요 확대에 힘입어 제철소가 창고를 확장하고, 2026년까지 생산 능력을 세 배로 늘릴 계획이다.

이처럼 '국방 호재(defence dividend)'는 유럽의 낙후된 도시들에겐 반가운 기회일 수 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현재 수준의 국방 지출이 유지된다면 2028년까지 EU GDP를 0.5%가량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실질적인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며 정치적 극단주의 세력을 강화시킬 위험 또한 상존한다.

https://www.economist.com/europe/2025/06/10/the-cities-winning-from-war

제조업 부흥을 외쳤던 트럼프의 정책은, 역설적으로 유럽의 몰락했던 방산 도시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의 침공은 유럽에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각인시켰고,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경시와 외교적 불확실성은 유럽 각국이 국방 자립을 추구하게 만든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그 결과,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유럽의 방산 산업은 활기를 되찾았고, 제조업 기반의 부활은 도시 전체의 생태계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부르주, 독일의 운터뤼스, 폴란드의 스탈로바 볼라는 과거 산업 쇠퇴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국방 투자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기업의 증설과 함께 하청, 물류, 건설, 상권까지 연쇄적으로 살아나며, 장기적인 산업 회복의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 호황이 영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부활한 산업 기반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럽의 재무장 흐름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 변화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이 아니라, 구조적인 산업 재편의 서막일 수 있다.

이와 함께 독일의 부채제한 완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재정균형의 상징이던 독일이 국방 투자를 명분으로 부채제한을 유예하면서, 프랑스나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균형재정을 고수하던 독일의 변화는 유럽 전체의 경제 기조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다.

결국 세계는 다시 양적완화의 흐름으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유동성 확대는 팬데믹과 전쟁 같은 충격 속에서도 자산시장을 끌어올리는 데 활용되어 왔다. 단기적인 하락이 있었지만, 매번 악재 이후에는 유동성 공급이 자산시장의 반등을 이끌었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자산 버블을 미래 세대의 기술과 성장으로 해결하길 기대하며 현재의 문제를 뒤로 미루는 행태와 닮아 있다. 그 모습은 마치 기후위기처럼, 회피로 인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불길한 유사성을 가진다. 문제는,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현재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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