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인하

PBM

by 기린

트럼프는 미국 약값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싸다며 최혜국 대우 가격으로 약값을 낮추겠다고 압박했지만, 이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미국 의료를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 약값이 비싼 이유는 탐욕스러운 제약사 때문만은 아니다. 초과이익의 60%는 병원, 보험사, 유통업체, 특히 PBM(Pharmacy Benefit Manager) 같은 중간 단계에서 발생한다. PBM 3개사가 전체 처방의 80%를 관리할 정도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약값을 ‘가치 평가’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이 때문에 신약 접근성은 미국이 더 빠르고 넓다. 2014~2022년 사이 신약 승인 속도를 보면 미국이 유럽보다 평균 6개월, 일본보다 평균 3년 앞섰다. 트럼프의 ‘유럽 가격 맞추기’는 사실상 유럽이 매긴 건강 가치 평가를 그대로 수입하는 것과 같으며, 그렇게 되면 미국은 약값은 낮아지지만 치료 접근성과 의료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신약 개발은 실패율이 90%에 달하는 고위험 투자다. 미국에서 수익이 줄면 제약사는 신약 출시를 지연하거나 다른 나라 가격을 올리거나 연구개발을 줄일 것이며,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

따라서 단순히 유럽 가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유럽식 ‘가치 기반 가격 책정(value-based pricing)’을 미국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일부 약품에서 성과 연계 지불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접근이 확대되면 미국인의 최첨단 치료 선호를 반영하면서도 가격의 투명성을 높이고 혁신을 효과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가격 격차는 여전히 남겠지만 건강 효과 대비 지출 효율성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5/10/02/donald-trumps-cure-for-drug-prices-is-worse-than-the-disease

한국의 약 유통 경로는 제약사 → 도매상 → 약국/병원 → 환자로 이어진다. 그러나 미국에는 여기에 PBM(Pharmacy Benefit Manager)이라는 중간 단계가 추가된다. 원래 PBM은 수백 개의 보험사마다 다른 보장 범위를 조정하고, 대량구매를 통해 약값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가 약가 폭리를 비난하면서 직접적으로 PBM을 겨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전부터 PBM의 리베이트 구조를 부정적으로 언급해왔다. 실제로 현재 환자에게 높은 비용을 전가하는 불투명한 구조 속에서 PBM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 특유의 리베이트 구조와 자유시장 경쟁은 PBM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만들었고, 약의 실제 가격과 할인가 역시 외부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 구조는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보험사마다 약 보장 범위와 본인부담금이 크게 달라져 환자에게 심각한 불평등을 낳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가격 인하 요구보다, PBM 리베이트 구조의 투명화, 정부의 직접 협상 권한 확대 같은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미국의 약가 구조가 환자 중심으로 다시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이 실제로 제도적으로 작동할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내부 유통 구조를 개혁하는 일은 어렵지만, 트럼프 입장에서는 제약사에 ‘폭리’ 이미지를 씌우고 가격을 강제로 낮추는 것이 훨씬 쉽다. 실제로 얼마 전 그는 유럽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라고 지시했는데, 제약사들은 미국 가격을 내리기보다는 유럽 가격을 올려 가격차를 줄이려 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트럼프가 이런 꼼수를 용납할 리는 없다.

그의 정책 전반을 보면 일관된 목표는 분명하다. 금리 인하를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분야에는 면세나 세제 혜택을 아끼지 않는다. 제네릭 약품 역시 인도와 유럽 등에서 사실상 면세로 들어오고 있다. 관세주의자인 그가 예외적으로 약품 수입에는 관세를 낮추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약값 문제만큼은 미국의 고혈을 빨아먹는 동맹국이 아니라, 자국 제약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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