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역사는 ‘직접 해보며 배우기’ 가장 어려운 과목처럼 보인다. 과거는 이미 끝났고, 실험하거나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라독스 인터랙티브의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크루세이더 킹즈’ 같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 한계를 우회한다. 플레이어는 수백 년 전 국가를 직접 운영하며 외교, 전쟁, 경제를 선택하고 그 결과를 체감한다.
이런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실제 역사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파라독스 게임을 통해 흥미를 갖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에게 게임은 ‘역사적 모국어’이고, 교과서는 나중에 배우는 제2언어다.
게임의 강점은 복잡한 역사적 구조를 규칙과 시스템으로 구현한다는 점이다. 보드게임과 달리 컴퓨터가 모든 변수를 관리해 수천 개의 영토, 국가, 이해관계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대체 역사를 만들어내며, 역사를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다른 선택이 가능했던 과정’으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이런 게임들은 국제정치의 핵심 개념도 체감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안보 딜레마’처럼, 한 국가의 방어적 행동이 오히려 주변국을 불안하게 만들어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를 설명 없이 경험하게 한다. 책으로 읽는 것보다 훨씬 강한 이해를 남긴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게임은 현실을 단순화한 모형이며, 숙련된 플레이어는 시스템을 악용할 수 있다. 잘못된 선택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는 점도 실제 역사와 다르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과정 자체가 역사적 사고 훈련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역사 게임은 진실을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지만, 역사를 이해하려는 동기와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과학·공학이 각광받는 시대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수백 시간을 들여 역사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게임은 역사 교육에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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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분명 효율적이다. 손으로 조작하고, 선택하고, 결과를 즉각 확인하는 과정은 텍스트보다 훨씬 강한 몰입을 만든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고, 추상적인 개념은 시스템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도 모르게 많은 것을 배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흔히 ‘역덕’이라 불리는 사람들처럼, 특정 분야에 강한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왜 공부를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가. 이들은 다른 뇌를 쓰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같은 회로를 다르게 쓴다. 이미 축적된 지식 덕분에 새로운 정보는 암기가 아니라 연결로 처리되고, 이해 자체가 보상이 된다. 학습이 노동이 아니라 탐색이 되는 순간, 공부는 게임과 닮아간다.
문제는 이 강력한 몰입이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글보다 영상으로 배운 것을 더 오래 기억한다. 역사 영화나 드라마가 교과서보다 강렬한 이유다. 하지만 현실과 완전히 같은 재현은 대개 재미가 없다. 그래서 매체는 현실을 압축하고, 단순화하고, 때로는 비틀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실제 역사보다 ‘기억에 남는 역사’를 갖게 된다.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영화는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보지만, 게임은 규칙과 시스템을 통해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국가는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권력은 수치로 표현되며, 전쟁은 계산 가능한 선택지로 등장한다. 이런 전제는 역사 해석 중 하나일 뿐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의심할 수 없는 규칙이 된다. 반복 플레이를 통해 이 규칙이 몸에 배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역사관이 된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게임이 실제 역사와 얼마나 비슷한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전제로 깔고 있는가다. 게임은 체험을 제공하지만,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문화재를 혼자 볼 때와 해설을 들으며 볼 때 얻는 것이 다른 것처럼, 게임 역시 가이드 없이 접할 때는 이해보다 오해를 남길 수 있다.
이상적인 역할 분담은 분명하다. 게임은 입구다. 구조를 체감하게 하고, 질문을 만들어낸다. 텍스트와 교사는 그 체험을 상대화하고, 왜곡을 짚고,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게임으로 “왜 이런 선택이 유리한가”를 느끼고, 실제 역사로 “현실에서는 왜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는가”를 따져야 한다.
게임은 역사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진실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가이드 없는 체험은 기억은 남기지만 판단력은 남기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게임을 옹호하느냐, 배척하느냐의 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사실로 착각하게 되는지를 묻는 일이다.
당장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답은 분명하다. 같은 교과서로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어떤 수업은 몰입을 낳고 어떤 수업은 졸음을 부른다. 교육의 성패는 매체가 아니라, 해석과 전달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