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 결 정 - 2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따뜻한 햇볕이 비추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식당은 평화로웠다. 커피와 도톰한 쿠키를 함께 곁들이며 수다를 떨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 두 명이 연신 웃어댔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예쁜 디자인의 식탁보, 햇빛. 모든 것이 완벽한 오전이다.

식당 문이 열리고 기영과 주인아저씨가 들어왔다. 아저씨의 몸은 땀인지 물인지 모르게 흠뻑 젖어있었고, 들어서자마자 일본인 두 명의 언성이 높아지며 코를 막는다.

냄새의 원인을 찾던 둘은 등지고 있던 문에 막 들어선 아저씨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코에서 손을 뗐다. 숨을 멈추고 있는 것이 티가 나긴 하지만 최대한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가볍게 몇번씩 인사를 하고는 뒤쪽 문으로 급히 나가 버렸다.

문이 닫히며 참았던 숨을 급하게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멍하니 서있던 주인아저씨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터덜터덜 걸어 들어와 털썩 주저앉아 버렸고 기영도 눈치를 보며 따라 들어왔다. 땀에 젖어 있던 기영의 옷은 아저씨에 비하면 새 옷처럼 깨끗했다. 아저씨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영씨 고생했어. 변기 새 걸로 갈아버리니 얼마나 좋아. 산뜻하고, 잘 내려가고.”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찮아,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근데 왜 그러고 서있어? 어서 여기 와서 앉아. 첨엔 다 그런 거지 뭘. 제대로 할 것 같았으면 사람 불러다 달았지. 그리고 이런 일은 아주 가끔씩 하는 거라 나도 익숙지가 않아요.”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기영씨 없었으면 아마 아직도 거기 붙어 있었을 거야. 휴~ 우리 여기서 잠시만 쉬자. 여기가 식당인데 사람들이 모여서 주문한 밥도 먹고 저 쪽 컴퓨터 사용해서 간단한 업무도 하는 곳이야.”


아저씨의 위로에 마음이 조금 풀어진 기영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데 게스트 하우스에서 밥도 나와요? 그런 곳은 못 다녀봐서.”

“여기 장기 숙박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주말 빼고 매일 오전까지 인터넷으로 다음날 먹을 사람들에게 신청을 받아.”


주인아저씨는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받아 쭉 들이키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 시원하다.”


시원한 물이 흡수되면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예전 하숙집처럼 우리가 먹는 거 조금 더 해서 같이 먹는 거야. 식당보다는 싸고 품질은 좋은 집밥이거든.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들 집 밥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


다시 물 한 컵을 들이키며 벽시계를 확인한다.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오늘 점심 신청한 사람이 세 명이니까, 기영씨 것까지 네 명 먹을 것만 준비하면 되겠네. 먼저 좀 씻고 금방 해올 테니까 사람들하고 같이 먹어. 오늘 점심은 돼지고기야. 돼지고기 먹지?”

“네 좋아해요. 근데 요리도 하세요?”


아저씨는 알 수 없는 웃음을 보이며 서둘러 나가 버렸다. 이제야 긴장이 풀린 기영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오전에 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나 처음 시작할 때 일주일 가량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충돌도 있고 일종의 텃세 같은 것을 버텨내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에 비하면 이곳은 몸은 좀 힘들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없었다. 게다가 아저씨의 몸에 튀었던 물이 기영의 몸에는 단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단 몇 방울이라도 기영의 몸에 닿았다면 그 작은 물방울을 핑계로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영은 손을 닦으며 옆에 있는 커피머신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가까운 곳에 기기 사용법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등 몇 가지 언어로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다른 기기들에도 설명서가 붙어 있었고, 주의 사항이나 쓰레기 분류 및 수거하는 방법 등 간단한 사항조차도 여러 언어와 그림으로도 표현 돼 있어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며 여은진이 들어왔다. 기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경계하는 눈빛을 보인다. 이제서야 이곳이 여성 전용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다행히 기영의 인상이 나빠 보이지 않았는지 은진이 먼저 조심스레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기영은 빠르게 자리에 앉으며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여은진은 기영과 대각선 방향의 의자를 빼며 부산 억양에 약간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 말투를 쓰려고 하지만 중간중간 사투리 억양이 튀어나왔다.


“처음 보는 분인데,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 여성 전용인데?”

“여기 매니저 아르바이트로 오늘부터 일하기로 했어요.”

“아. 새로 온 매니저시구나. 안 그래도 한 달 전쯤에 아저씨가 광고 올린 거 봤는데. 사람들 그렇게 와도 안 뽑더니 드디어 오셨네요? 반가워요. 여은진이에요. 요 위에 102호에 있어요.”

“네. 반갑습니다.”


면접 같지 않은 면접을 보고 들어온 기영은 사람을 한 달 정도나 뽑지 않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생··· 이세요?”

“그렇게 보여요? 다행이네.”


여은진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까르르 웃었다.


“졸업하고 대구서 일하다가 서울에 취직하려고 올라와 있어요. 뭐, 공부 좀 하느라 맨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러는데, 조금이라도 젊어 보인다니 좋네요. 그 쪽은요?”

“네. 저는 학교 다니다가 음악 좀 해보려고 휴학했어요.”

“맞아요? 와, 대단하네요. 휴학까지 하고. 보통은 사는 게 힘들어서 취미로 하는데. 전 여기 주변에 사회인 음악 동아리에서 보컬하고 있어요.”

“그러세요? 저희는 보컬이 없어서 지금 구하고 있는데 나중에라도 한번 와서 불러봐 주실래요?”

“아니에요. 그냥 취미로 하는 거라. 매니저님처럼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요. 대신 나중에 공연하면 꼭 보러 갈게요.”

“네. 그럼 꼭 와주세요. 저희 SNS 알려드릴게요.”

“그러실래요?”


은진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가득하며 부러움과 아쉬움도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마침 예진이 들어오며 은진과 기영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왔어?”


예진은 소심한 손가락질을 하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기영이 그 모습을 눈치 채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온 매니저에요.”

“네, 안녕하세요?”


예진이 은진의 앞자리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영을 관찰하듯 훑는다.


“얘는 이예진이에요. 대학원 다녀요. 예진아. 이 분 음악 하신다는데? 너도 음악 하잖아, 우리 서로 말은 통하겠다. 분야는 다르지만.”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진이 말하기를 기다리던 은진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 답답해. 얘가 원래 말을 많이 안 해요. 얘, 대학원에서 음악 치료 공부하고 있고요. 뭐, 사람들 도와주는 거, 그런 거 좋아하는 애에요.”

“네에.”

“야, 너 근데 얼마 전에 단기로 들어왔었던 그 취준생 있잖아. 그 왜 좀 통통하고. 이름이, 이서··· 뭐라고 했는데?”

“아. 네 알아요. 그.. 여기 와서 머리 염색하고 잠옷 입고 다니던. 이름이 음··· 서정이였어요. 이서정. 근데 왜요?”

“맞아, 걔! 얼마 전에 보니까 여기 펜트하우스에 아저씨가 3일 넣어 줬다는데?”

“아 진짜? 어쩐지. 나갈 때 보니까 얼굴이 좋아 보이던데. 나도 가고 싶다.”

“펜트하우스요?”


기영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은진에게 집중했다. 펜트하우스라고?


“여기 3층을 펜트하우스라고 불러요. 큭큭. 낡은 건물인데 웃기죠? 거긴 아저씨가 매일 호텔처럼 관리해 줘요.”


마치 이곳이 3층 펜트하우스라도 되는 것 마냥 좁은 창 밖을 내다보며 한쪽 팔에 얼굴을 기댔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는데 꽤 좋은가 봐요. 뭐, 혼자 쓰니까 좋긴 하겠죠. 그것도 추가 비용 없이.”


은진이 몸을 일으키더니 비밀을 말하듯 말했다.


“근데 거기는 원한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네?”

“아저씨가 봐서 그냥 며칠씩 공짜로 넣어주거든요. 거기는 사람을 따로 받지도 않아요. 넣어주는 사람도 그냥 아저씨 마음 대로인 것 같고.”

“아..”

“근데 더 신기한 건, 사람들이 거기서 며칠 지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서 나오더라고요. 그치?”


이예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하죠? 혹시 거기 가 봤어요?”

“아뇨. 오늘이 처음이라. 지나갈 때 향은 좋던데.”


기영은 처음 카페에 들어갔을 때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산들바람 같던 그 향기가 아련하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각각의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 들어왔다. 샤워를 했는지 옷이 바뀌고 머리까지 젖어있었다.


“자자. 오늘 메뉴는 돼지 불고기와 김치찌개입니다. 이건 예쁜 분홍 쏘~세지하고 구운 김이에요. 맛있게들 먹어요. 기영씨 것도 함께 가져왔으니까 같이 먹어. 아! 여러분. 여기 기영씨라고.”

“인사했어요. 사장님.”

“아, 그래요? 한발 늦었네. 기영씨도 같이 얘기도 하고 그래. 이젠 한식군데.”


아주머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가로챘다.


“아! 이 분이 오늘 들어온 기영씨구나. 반가워요! 난 이 양반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주는 사람이에요. 다 자기 맘대로 사람도 뽑고 맨날 적자를 내서 속상해 죽겠는데.”


아주머니가 주변을 훑었다. 시선을 애써 피하며 반찬을 내리는 아저씨는 못들은 척 일에 열중했다. 어느새 예진은 고개를 숙이고, 은진도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


“뭐 어쨌든, 같이 일하게 됐으니 잘 좀 도와줘요.”

“네. 잘 부탁 드립니다.”


빈 쟁반을 싱크대 위에 올려 놓고 나가는 중에 아저씨가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꾸지람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나간 문으로 세련된 펌을 한 여자가 들어오더니 비어있는 기영의 앞자리로 다가왔다. 긴 머리, 긴 치마, 그리고 단아해 보이는 하얀 얼굴, 목 아래까지 살짝 올라온 니트 티셔츠가 잘 어울리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유난히 화려한 손톱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미용실에서 봤던 바로 그 헤어 디자이너였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왼손 검지에는 많이 커 보이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기영이 놀란 듯 은정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엇! 혹시?”


은정은 핸드폰을 식탁 아래로 내리고 화면을 보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은 긴 머리로 반쯤 가려져 있었고, 구슬 크기 정도의 음식만을 입으로 가져갔다. 무안해진 기영은 다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새로 온 매니저에요. 이기영이라고 해요.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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