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화. 결 정 - 3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무표정하게 시선을 옮기던 은정은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던 무선 이어폰을 뽑고는 보일 듯 말 듯 까딱 인사를 했다. 기영이 말을 이어가려 하자 은정의 전화벨이 울린다. 은정은 다시 이어폰을 꽂고 표정 변화 없이 짧은 대답만 이어갔다.


“네? 네. 네.”


대답만으로 끝난 은정의 통화. 그녀는 얼마 먹지도 않은 밥그릇을 정리하고 나가 버렸다. 기영이 어깨를 올리며 은진에게 자기가 뭔가 잘못했냐는 듯 한 제스처를 보였다.


“저 친구는 이은정이라고 해요. 예전 매니저 있을 때는 굉장히 밝았는데, 요즘은 뭐가 힘든지 통 말도 없고 밥도 며칠에 한번씩만 나와서 개미만큼 먹어요. 저거 봐요. 오늘도 거의 안 먹었잖아요.”


은정의 밥그릇은 사 분의 일 정도만 비어있다.


“어머, 언니. 예전에도 매니저가 있었어?”

“그럼. 나 여기 처음 오고 얼마 안돼서니까, 한 2년 전 쯤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갑자기 아파서 그만뒀대. 그 이후로 나도 몇 번 나갔다 들어와서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매니저님이 들어온 거야.”

“그럼 그 분이 은정씨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기영이 물었다.


“예전 매니저가 쟤 되게 좋아했거든요.”

“아.”

“그 매니저 되게 좋았는데. 잘생기고 아는 것도 많고 성격도 좋고. 왜 이런 곳에서 일하는지 모를 정도로 똑똑했어요. 학교도 최고로 좋은 학교 다녔었고. 근데 막상 은정이는 그 사람 별로라고 신경도 안 썼거든요. 기지배, 눈은 높아가지고.”


은진은 기분 나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어쨌든, 어느 날 사고가 나고, 그 이후로 저렇게 됐어요. 예전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한 육개월 전부터 갑자기 심해졌거든요. 매니저는 아프다고 갑자기 관뒀고요. 그것도 벌써 꽤 됐는데. 그 이후로 쟤는 볼 때마다 점점 심해지더라고요.”


은진의 말을 듣고 있던 기영의 눈이 점점 커진다.


“사고요?”

“네. 뭐가 떨어져서 덮치려는 걸 매니저가 막았다나 봐요. 저도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 아저씨도 그렇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매니저님은 그 이후로 못 봤고, 은정이는 정신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이틀인가? 지나서 깨어났다고 했어요.”

“어머! 난 몰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은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영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매니저는 치료 후에 다른 데로 갔나 보죠?”

“모르겠어요. 원래는 SNS도 다 이어져 있고 연락처도 알았었는데, 그때 이후로 통 연락이 안 돼요. 전화도 끊기고 SNS도 안 올라와요. 디엠 보내도 읽지도 않고. 여기 있을 때는 엄청 자주 연락 했거든요. 뭐, 모르는 게 없고 똑똑하니까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연락 했었어요. 게다가 엄청 잘생겼거든요.”


은진은 두 손을 모으고 지금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표정으로 말하다가 문득 기영을 보더니 수습하듯 둘러댄다.


“뭐, 그렇다고 매니저님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아시죠?”

“네네. 그렇죠 뭐.”


기영 특유의 형식적인 말투가 튀어 나왔다. 은진은 다시 침착하게 설명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저 친구는 좀 어려워 졌어요. 저도 일 년에 몇 개월씩만 여기 있다 보니 그 이상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 쟤도 통 얘기를 안 하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고는 아예 기억에 없대요. 병원에서 깨어난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네요. 매니저님이 뭐 잘못해서 저러는 거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될 것 같아요.”






4층 건물 앞에 고급 승용차가 미용실 입구를 가로막고 주차 돼 있다. 미용실 안쪽에서는 기태가 다리를 꼬고 앉아 허공에 떠 있는 다리를 흔들어 댔다.

들어오려던 손님이 차로 막혀 있는 문을 보더니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그 넓은 미용실에 손님은 오로지 기태뿐이었다. 기다림이 지루한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얀 약통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씹고는 다짜고짜로 원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 이선생 언제 오냐고요!”

“그 친구 오늘 좀 늦게 나오는 날인데 미리 예약을 하고 오셨어야죠. 이렇게 오시면 곤란해요. 저희 영업도 해야 하는데 차를 저렇게 세워두면.”

“그러니까 빨리 좀 불러와야지. 예약하려고 하면 뭐 예약은 해 주나!”


오픈 시간에 맞춰 들어온 기태는 곧바로 은정을 찾았다. 하지만 은정은 어제 야근으로 조금 늦게 출근하도록 시간이 조정 돼 있었다. 원장이 기태를 타일러보지만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은정에게 전화를 하고 포기한 듯 함께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지금 머리 괜찮은데?”

“이게 괜찮다고요? 아, 진짜 원장님 센스 없네 진짜.”

“네? 아니, 그게 아니고 요즘..”

“말하기 싫으니까 빨리 사람이나 불러와요.”


차로 막혀 있는 문이 힘겹게 열리며 은정이 들어왔다.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비좁은 틈으로 겨우 들어와야 했다. 모든 시선이 은정에게 쏠렸지만 은정은 개의치 않고 곧바로 기태에게 다가갔다.

김원장이 은정의 뒤를 따라가며 속삭였다. 원장의 눈은 기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찍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 저 인간이 또 와서 어쩔 수 없이.”


은정은 김원장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더니 카트 하나를 밀며 기태에게로 다가 갔다. 뒤에 남은 김원장은 은정에게 했던 말과는 다르게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은정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그녀 때문에 장사를 망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기태에게 다가간 은정이 거울을 통해 기태의 눈을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오셨어요?”


은정이 들어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기태는 마치 몰랐던 사람처럼 놀라는 척을 하며 말했다.


“어? 왔네! 무슨 직원이 출근 시간이 지난 지가 언젠데, 이제 나타나? 이렇게 해도 월급 받아요?”


은정은 기태의 얼굴을 거울로 뚫어지게 보다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해드려요?”


기태는 여유를 부리며 핸드폰으로 시간과 메시지를 확인했다. 대답이 늦어지자 은정은 미용 카트에서 목에 두를 천과 집게 등을 골랐다. 메시지 확인을 마친 기태가 일어나더니 은정의 얼굴에 바짝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아니, 오늘은 늦어서 그냥 가려고...........요!”


기태는 씩 웃으며 오른손으로 은정의 팔을 툭 건드렸다. 동시에 은정은 온 몸에 힘이 빠지며 들고 있던 것들을 카트 위로 떨어뜨렸다. 기태가 문을 향해 걸으며 김원장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어이, 김원장님. 직원들 교육 좀 잘 시켜야겠네. 방금 봤죠? 손님 대하는 꼴이 저게 뭐야?”


기태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오만원짜리 두 장을 카운터에 던졌다. 그리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매장을 둘러보다가 인상을 쓰고 기태를 노려 보고 있는 김선생을 차갑게 쳐다봤다. 결국 김선생이 고개를 떨구자 좁은 문을 열고 나가더니 검은 차에 시동을 건다.


“아! 저 진상.”

“원장님! 쟤 신고해 버리면 안돼요?”


김선생이 짜증을 내며 말하지만 눈에는 두려움이 숨어있었다.


“이미 했었잖아 몇 번이나. 근데 영업 방해나 스토킹으로 신고해도 그냥 주의만 받고 풀려나더라고. 별 조치도 없고. 저거 봐 봐. 또 돈까지 놓고 간 거. 저러니 신고가 되겠냐고. 은정아, 네가 고생이다.”


김원장은 은정을 위로하는 척하며 카운터에 던져 놓은 돈을 챙겼다. 그리곤 조곤조곤 한 목소리로 은정을 압박 하기 시작했다.


“근데 은정아, 저 진상은 깽판 부려도 매일 돈을 던져 놓고 가니까 뭐, 나야 상관없지만 보는 눈도 있고 한데 얼른 좀 정리를 해야 하는 거 아냐? 개인적인 일인데 미용실에 지장이 있으면 안되잖아.”

“네. 그럴게요.”


은정은 싸늘한 대답과 함께 떨어뜨린 것들을 주워 담았다.

직원들은 모든 것이 은정에게서 비롯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은정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은정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원장에게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태가 나타나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그런 의견이 우세해 졌다. 힘들어하는 은정은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신이 정리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편하게 정의해 버렸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말들을 은정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 다물고 서있던 은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의자를 정리하며 직원들에게 말했다.


“자, 준비해요 다들. 오늘 일 시작하자.”


미용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이제서야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직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은정은 조용히 뒤쪽 휴게실로 휘청거리며 들어갔다. 그리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않아 있는 아저씨와 기영이 서류, 홈페이지 등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 대부분이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들이어서 기영에게는 어렵지 않은 부분이었다.


“일하면서 명심해야 할 게 있어. 여기 3층이 요즘 좀 유명세를 타고 있나 봐. 그래서 유튜브니 블로그니 하면서 사람들이 자꾸 찾아오거든.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들여보내지 마. 괜히 구설수만 많아지고 귀찮아서 난 그런 건 안 하거든.”

“인플루언서들 오면 사람들 더 많이 찾지 않아요?”

“나중에 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지금은 안 돼.”

“네.”

“그리고 누가 여기 손님 이름 대면서 물어보면 절대 말 섞지 말고 모른다고 하고.”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스토커 같은 놈들이 종종 있어.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여자도요? 근데 아는 사람일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물어볼 때 보면 다 알지. 대부분 먼저 전화를 하고 본인이 직접 나오니까 신경 안 써도 되고. 그렇게 공지가 돼있거든.”

“네. 근데 3층은 청소 안 해도 되나요? 말씀해 주신 건 반 지하부터 2층까진데.”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미세하게 사라졌다.


“거기는 나 빼고는 아무도 못 들어가. 거기가 ‘펜트하우스’라고 불리는 곳이거든.

놀랍지 않아? 이런 작은 곳에 펜트하우스라는 곳이 있다는 게? 내가 직접 신경 써서 꾸미고 청소하는 곳이야. 아주 섬세하게 진짜 내 집 같이 하나하나 하니까 거기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중에 일이 손에 좀 익으면 같이 하든가. 뭐 이런 낡은 건물로 장사하려면 그런 특별한 장소쯤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아. 네에.”

“중요한 건, 시설 점검 때문에 사람들 퇴실하면 무조건 내가 먼저 들어가서 정리를 할 거야. 잊지 말고. 그 다음에 들어가서 뒷정리 같은 거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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