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 이 사 - 1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기영이 입을 벌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눈은 반쯤 감겨있고 입 한쪽으로는 침을 흘린 자국이 보인다. 바닥 여기저기 옷이 널브러져 있고, 침대 옆에는 케이스를 씌우지 않은 기타가 눕혀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여기저기 펼쳐진 악보들이 바닥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문 안쪽에서 불투명한 유리를 통해 사람의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반복됐다. 몇 번 소리가 반복되자 깊이 잠들었던 기영이 일어나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기영 학생, 나야 나. 아줌마.”


늦은 밤에 들리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두달째 월세가 연체 돼 있었고 이번 주말에는 다시 월세를 지불해야 하는 날이었다.

집을 나온 이후로 기영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음악도, 꿈도 아닌 월세였다. 매달 지출하는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런 항목이 이곳에 머무는 한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이 기영을 답답하게 했다. 몇 가지씩의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면 거의 대부분이 고스란히 월세로 빠져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집주인 아주머니가 작은 택배 박스를 들고 불쑥 미끄러져 들어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보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집 안을 훑었다. 침입을 당한 기분이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밀린 월세가 한없이 기영을 위축 시켰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집주인 아주머니는 방금 잠에서 깬 기영의 모습을 보고 마치 쓰레기를 보듯 기분 나쁘게 인상을 썼다.


“마침 집에 있었네? 내가 할 말이 있어서 만나보려고 해도 통 집에 없길래,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죄송해요. 일이 계속 좀 바빠서요.”

“바쁘기만 하면 뭐해.”

“네?”


아주머니의 말에 가시가 들었다.


“근데 왜 이렇게 전화가 안돼? 일부러 안 받는 거야?”

“네? 혹시 지난번에 알려드렸던 바뀐 번호로 연락 주셨어요?”


잠깐 당황하던 아주머니는 말을 돌린다.


“그건 그렇고, 저기, 이번 주말에 집세 내는 날인데, 알지?”

“네. 그럼요. 죄송해요. 제가 이번 달에는 한 달 치라도 꼭.”

“아니, 그게 아니고.”


아주머니가 말을 끊었다. 뭔가 불안했다. 아주머니는 기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따지듯 말했다.


“다음 주면 벌써 월세 밀린 게 석달째잖아. 근데 물가도 다 오르고 해서, 예전부터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좀 올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기영 학생이 착실해 보여서, 아들 같아서 받은 거야. 알지?”

“죄송해요.”


사실 기영이 들어오기 전 이곳은 반년도 넘게 비어있던 곳이었다. 계약할 때는 부동산에서 아주머니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적은 보증금 때문에 도배나 장판도 새로 해 줄 수 없다고 했던 바로 그 아주머니였지만, 그 모든 내용을 서로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주머니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천사를 아무런 필터 없이 강제로 자신의 머리에 주입해야 했다.


“근데 이렇게 계속 바쁘기만 하고, 쯧.”


아주머니는 기영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월세는 밀리고 하니까 얼굴 보기도 껄끄럽고, 나도 너무 힘들어서. 우리 애들 등록금하고 학원비도 계속 오르는데 방법이 없더라고. 그래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보증금도 얼마 안 남았고. 근데 마침 여기 오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네?”


기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주머니는 감정 없이 이삿짐의 양을 확인하듯 둘러보며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더 미루지는 말고 다음 주말까지 집을 좀 비워줬으면 좋겠어. 뭐, 여기 갖고 들어 온 짐도 별로 없으니까 원하면 이사 비용 몇 만원 정도는 보증금 까는 거에서 빼줄게.”

“죄송해요.”


집주인 아주머니는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뭐 내가 미안하지. 근데 집은 좀 치우고 살자. 이러다 냄새 나고 벌레도 생기겠네.”


기영은 미안하다는 말의 극명한 온도 차이를 느끼며 이 상황에서 왜 서로 다른 의미의 미안하다는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일지 궁금했다.


“죄송해요. 요즘 좀 바빴어서··· 근데 방을 지금 당장 구하기가.”

“그럼, 다음 주까지 알아보고 결정되면 나한테 빨리 연락해줘. 그 사람이 될 수 있으면 빨리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기영은 말할 기회조차 박탈 당한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기영이 들어온 이후로도 이 집은 계속 매물로 나와 있다고 방을 구하던 장연에게 전해 들었었다. 기영은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시작은 자신의 연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네.”

“그럼 갈게. 잘 쉬고. 아!”


나가려던 아주머니는 들고 있던 택배 박스를 기영에게 건넸다.


“이거, 앞에 택배 와있더라고.”


기영은 두 손으로 작은 박스를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 줘.”

“그럼 제가···”


아주머니는 기영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문 밖에서 아주머니의 투덜대며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쁘긴 뭐 그렇게 맨날 바빠? 돈도 안 되는 거 가지고. 택배 시킬 돈은 있나 보네?”






다음날 아침, 어둡고 피곤한 얼굴로 아저씨에게 꾸벅 하고 인사를 했다. 이미 작업복과 목장갑으로 무장하고 있던 아저씨는 기영이 들어온 식당 정문의 반대쪽에 있는 다른 문의 손잡이를 만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항상 시간은 칼이네.”


기영의 표정이 어두웠다.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기영을 훑어보던 아저씨가 물었다.


“근데 왜 오늘 얼굴이 그렇게 어두워?”


주인아저씨는 잡고 있던 손잡이와 기영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아, 별거 아니에요.”

“어허! 그런 기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지. 우리는 대표적인 관광 서비스 업종이야. 매니저가 여기 얼굴인데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 왜 그런 거야?”


기영은 주저하며 머뭇거리다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실은, 살고 있는 집에 월세가 밀려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요. 벌써 보증금을 두 달 치나 까였거든요. 다음 주면 석 달 치고요. 근데 싼 곳이 마땅한 데가 없네요. 갑자기 다음 주까지 나가라는 데. 그래서 그거 찾다 보니까 잠을 설쳤어요.”

“그래? 힘들겠네. 무슨 집이 일주일 만에 나가래? 아무리 방세가 밀려도 그렇지.”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며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별일 아닌 것처럼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럼 짐 싸서 저 위에 2층 있잖아? 거기 1인실로 일단 들어와. 으차!”


만지고 있던 손잡이가 뽑혀 손에 들려있었다.


“네? 거기 조만간 공사하신다고 일부러 비워둔 곳 아니었어요?”

“아직 공사 전이라서 거기 지금 사람이 없잖아. 방 구할 때까지 거기 1인실 세 개중에 C실을 써. 공사는 사람 없는 곳부터 하나씩 하면 되니까. 뭐, 잘은 몰라도 사람 모으는 것까지 하면 몇 달은 지낼 수 있을 거야.”

“네?”

“2층 가보면 1인실이 A, B, C실까지 세 개가 있는데 그 중에 C실은 그나마 괜찮아. 지지난주까지 사람도 받던 곳이잖아. 근데 A, B실은 지저분해서 잠궈 놨으니까 굳이 들어가지는 말고.”


주인아저씨가 잡아 뺀 손잡이를 양 손으로 잡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자 마치 분해될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이 씨. 이게 왜 이래?”


손잡이가 잘 움직이지 않자 길들이듯 여러 번 반복해 돌렸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가 이전부터 전세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계약 끝나고 6개월도 넘게 지나서야 나갔거든. 그 사람들도 힘든 건 알겠는데 양심도 없지. 결국 여태 공사도 못하고 우리는 계속 손해 보고. 뭐, 나간 이후로 그나마 괜찮은 C실하고 2인실에 급한 사람들만 찔끔찔끔 받다가 지금은 아예 정리하려고 비워 놓은 거야. 원래 있던 사람들도 거기만 썼는지 거기만 깨끗하더라고.”


아저씨는 뽑아낸 손잡이를 쓰레기통으로 던지더니 양손을 툭툭 털어냈다.


“아예 망가졌네. 저건 못 고치겠다.”

“저, 진짜 들어와도 돼요? 올 수 있으면 바로 들어와야 할 것 같은데.”

“그래. 뭐 어쨌든 공사 끝나기 전까진 사람 못들이니까 들어와. 어차피 비워 놓은 곳이라 괜찮아. 근데 거기 먼지 쌓인 거 청소는 들어와서 직접 해야 하고, 월세는 알바비에서 공과금만 뗄 테니까. 그 대신 공짜는 아니야. 집에 있는 동안은 밤에도 투숙객들하고 외국에서 오는 문의 사항 같은 거는 바로 바로 신경 좀 써줘. 시차 때문에 외국 사람들은 꼭 밤에 문의가 오거든. 내가 그것 때문에 아주 잠을 못 자겠어.”


별거 아니라는 듯 아저씨는 입을 딱 벌리고 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텅 비워진 방 한쪽에서 부지런히 박스를 정리하는 기영이 땀으로 젖어있다. 이미 테이프로 포장된 박스 세 개가 쌓여있고 마지막으로 책상 위에 남아있던 잡동사니들을 박스 하나에 차곡차곡 넣었다.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찐득거리긴 해도 이제서야 정이 들려고 했는데. 근데 진짜 짐이 많은 것 같았는데 박스는 겨우 네 개밖에 안 돼? 조금 가까웠으면 직접 옮겨도 될 뻔했네.”


주인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들리자 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보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어, 기영학생.”

“안녕하세요. 전데요. 통화 괜찮으시죠?”

“그럼. 짐은 다 뺐어? 얼마 안됐는데 어떻게 벌써 집을 구했네.”

“네. 아는 분 댁에 잠시 있기로 했어요. 그 동안 감사했어요. 잘 지내다 가요.”

“아이, 내가 미안하지. 그럼 통장 번호하고 거기 방 사진 찍어서 보내주면 확인하고 보증금 잔액 입금해줄게. 그리고 이사 비용도 조금 넣어줄 테니까 다른데 가서도 잘 살아. 건강하고.”

“네 감사합니다. 그럼 사진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알았어. 수고해요.”


전화를 끊자마자 서장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벨 소리마저 짜증이 섞여있었다.


“야! 너 이따가 연습실은 오냐? 요즘 바쁘다고 맨날 빠져서. 야. 씨 요즘 네가 없어서···.”

“그래,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갈 수 있어. 꼭 갈게. 그럼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도대체 뭘 하길래 전화만 하면 바쁘대? 일단 알았다. 그럼 이따 꼭 와라?”

“오케. 이따 봐. 미안.”


기영은 들락거리며 하나씩 박스를 옮겼다. 마지막 박스와 기타를 들고 나가려다가 핸드폰으로 집안 곳곳의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 액정 속 한쪽 구석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박스에 눈이 멈췄다. 며칠 전 주인 아주머니에게 받은 작은 택배 박스가 아직 뜯기지도 않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기영은 그 박스를 큰 박스 위에 던져 올리고 한꺼번에 밖으로 옮겼다.


게스트하우스 내의 숙소로 짐을 모두 옮긴 기영은 뭔가 버려진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홀가분했다. 잠시 월세의 지옥에서 벗어난 것 만으로도 행복했고 그 때문인지 걸음도 가벼워진 것 같았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갑자기 건강해 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기영은 박스를 숙소에 차곡차곡 쌓아두고는 거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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