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스크의 복숭아.

ZUBIRI ~ PAMPLONA, 4th Day

by 이작


다시 새벽. 그란데 사이즈의 에스프레소는 아무 효과도 없었던 것처럼 침대에 눕자마자 다시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며칠간의 행군은 매일같이 온 몸을 한계점까지 몰고 갔다. 온 몸이 쑤시고, 다리, 허리, 손가락 끝까지 어디 하나 통증이 없는 곳이 없다. 살짝 주먹을 쥐어보고 발목을 움직여 본다. 몸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많이 아프긴 해도 붙어있긴 한 것 같다. 마치 컴퓨터를 부팅하듯, 아픈 손을 움직여 팔다리를 조금씩 주무르기 시작했다. 고통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 몸이 적응 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발바닥에 손이 닿았다. 왼쪽 발바닥에 덜렁덜렁 붙어있는 살점이 잡힌다. 어제 피레네 산맥을 내려오면서 동전만한 물집이 생겼다가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몸이 아프니 허리를 굽혀 살펴 볼 수도 없었다. 양쪽 새끼 발가락에는 물집이 두 개씩 사이 좋게 붙어 있다. 온몸의 세포들이 ‘너 지금 뭐하고 있냐’고 악바리같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 소리를 무시해 버린다. 이런 고통 따위는 단 한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쉽게 잊을 수 있었다. 2층 침대로 오르내리는 쇠로 만든 사다리가 그 단 한가지였다. 침대에서 내려갈 때 마치 맨발을 자르고 파고들어오는 듯한 통증이 어제보다 더 심하게 무릎까지 타고 올라온다. 사다리의 마지막 칸에서 바닥에 발바닥이 닿을때는 어제 아침처럼 무심결에 비명을 지를 수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를 악 다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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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리를 빠져 나오며 높지 않은 산을 만났다. 오늘의 목적지는 빰쁠로냐라는 곳인데 이 길에서 처음 보는 큰 도시라 살짝 기대를 해 본다.


문득, 가족들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지나 온 마을은 변변한 상점 하나 없는 곳이었고 앞으로도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상점에 들러 선물을 고른다는 것이 무의미 했다. 더군다나 내 등에는 18킬로그램이 넘는 짐이 이미 올라가 있지 않은가.


난 핸드폰을 꺼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명 한명의 이미지에 맞는 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산과 들판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었고 같은 종류의 꽃이라도 느낌이 모두 달라 가족들과 가장 닮아있는 것을 골라 찍었다. 이 순간만은 마치 가족들과 함께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순례자들이 계속 앞질러 지나 간다. 사진 때문에, 혹은 배낭 때문에 걷는 속도가 느리다고 하지만 결국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걸음에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지금은 그냥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씩만 사진을 찍으며 걸을 뿐이다.






빰쁠로냐는 지금까지 들렀던 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대도시였다. 규모도 클 뿐 아니라, 구도시는 텔레비전에서 종종 봐왔던, 황소를 풀어놓고 뛰어다니는 ‘소몰이 축제’가 열리기로 유명한 곳이다. 도시 진입 전부터 달리고 있는 차가 늘어나고 건물 또한 말끔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진입로에는 길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가 쇠로 만든 가리비 조개모양으로 바뀌는 등 하나하나 정돈된 모습을 보이며 깔끔하게 바뀌고 있었지만, 손으로 그려놓은 노란 화살표만 보고 따라왔던 나로서는 바뀐 표식이 더욱 혼란을 가중시켰다. 주변에 다른 순례자들이 지나가면 따라가기라도 하겠지만 그 수많은 순례자 들은 역시 오늘도 볼 수 없었다. 결국 지도와 안내책자를 들고 길을 찾아가야 했는데 현재 내가 있는 위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막막했다.


책을 덮고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무작정 걷다 두 갈래길을 만났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며 둘러봤지만 그곳에는 사람조차도 만나기 힘들었다. 두 길 중 한쪽 길에서 어린아이 둘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참 해맑은 웃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화살표와 같은 노란 형광색 허리띠를 한 아이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그쪽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색으로 만들어진 쇠 가리비 모양을 다시 만났고 바른 길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서야 이 길에서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할 지 나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내 의지로, 지식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더 이상 저지르지 않기로 다시 다짐 해 본다. 쇠로 만들어진 가리비모양은 높은 담장으로 이어진 도시 진입로로 인도 하고 있었고, 이 진입로의 끝에서 아마 도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뻗어있는 진입로를 별 고민 없이 걷고 있는데 길 옆에 트럭 한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조수석에서 백발의 수녀가 절뚝거리며 내려 과일 바구니를 챙겼고 건장한 청년이 운전석에서 내려 무거워 보이는 박스를 들고 벽에 설치돼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백발의 수녀는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이자 한 손으로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공을 휘휘 저으면서 절뚝절뚝 다가왔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 속에 몇 개 남지 않은 이가 보인다. 난 이 낯선 모습에 흠칫 놀라 우뚝 서고 말았다. 마치 평생을 함께 살아온 손자를 오랜만에 보는듯한 웃음으로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 여기저기를 뒤져 제일 큰 천도 복숭아를 하나 골라 먼지를 털어가며 성큼 손에 쥐어주었다. 그 순간에 백발 수녀의 너무도 선명한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복숭아와 함께 전해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단지 복숭아 하나였지만 그것과 함께 전달 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웃음과 눈물뿐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순례자가 지나가는 이 길에서 단지 그 중 하나에게 어떻게 저렇게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즐거운 일도, 행복한 일도 하루 이틀 만에 질려버리는 세상이다. 난 그 복숭아를 차마 입에 넣을 수 없어서 저녁까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루를 보냈고, 그 이후로도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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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쁠로냐의 숙소는 신도시와는 분리된 구도시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작은 조개 표식만 붙어있어서 주변 상점에서도 잘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 숙소 주변에서만 몇 번을 물어 찾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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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문을 통해 들어간 내부는 현대적이며 커다랗고 깔끔했다. 이제는 익숙하게 등록을 한 후 짐 정리 및 빨래를 먼저 해결 했다. 음식을 구하기 위해 나가 봤지만 낮잠을 즐기는 시에스타(CIESTA) 시간이라서 대부분의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시간이 오히려 다니기는 편했다.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축제 때 소들을 풀어놓는다는 골목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었고, 구도시의 중심가는 그 시간동안 걸어서 돌아보기에도 적당한 크기였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처음 와보는 이런 유명한 곳을 놓칠 수 없었다. 도시 곳곳에는 바스크 지방 독립주의자들의 독립을 열망하는 문장들이 아스팔트 바닥이나 벽등 도시 곳곳에 커다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순례자여, 당신은 바스크나라에 있습니다! (Pilgrim, You are in the Basqu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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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시를 돌아보며 난 토끼같은 두 딸들에게 선물할 황소그림이 새겨진 빨간색 티셔츠와 분홍색 원피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무게에 부담이 없는 조그만 소 모양의 열쇠고리도 챙겼다. 예쁜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살짝 마음이 가벼워 진다.


숙소로 돌아오며 중국인이 운영하는 슈퍼에 들러 스페인 햄인 하몽과 바게트 빵, 그리고 슈퍼주인이 추천하는 즉석 볶음밥요리를 구입했다. 많진 않지만 오랜만에 즉석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빵과 햄은 내일을 위해 가방에 챙겨 넣었다.


침대 주위에는 며칠 전 저녁을 챙겨 줬던 스페인 가족들과 훌리오도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하나하나 아는 얼굴들이 늘어갔다. 걷다가 만나는 순례자들은 순례자의 인사를 하면서 지나는데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니 이제는 서로의 안부도 묻고 정보교환도 하면서 길을 걷는다. 그나마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나에게는 반가운 과정이다.


짐 정리를 하는 중 바로 옆 침대에 두어 번 길에서 마주친 얼굴이 보인다. 아일랜드에서 온 백발의 할아버지와 그의 딸이며, 팻(Patrick) 과 새라(Sarah)라고 했다. 팻은 벌써 이 길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작년 5월 아들과 함께 걸었던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 약 10일 가량의 여정이었으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려 걷는 내내 비옷을 입어야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30대 초반의 막내딸과 함께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를 지나 땅끝마을 피네스테라까지 걸을 예정이었다. 팻은 5년전 지붕 수리를 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하여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집 주변에서 매일 등산을 다니며 재활 치료를 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팻이 옆을 돌아보는 모습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문득 팻의 나이가 궁금해 물었는데 공교롭게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활기가 넘치고 유머가 많은 분이다.


침대에 누워 옆에 붙어있는 독서 등을 켰다. 역시 책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옆 침대 아래쪽에 등을 보이고 잠들어있는 팻이 보인다. 부러웠다. 그리고 많이 아프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