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CESVALLES ~ ZUBIRI. 3rd Day
6시가 조금 넘었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서였는지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순례자들의 인기척 때문인지,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깨어 뒤척거렸다. 옆 침대의 훌리오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아직 그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은 상태지만 말 많고 정 많은 유쾌한 사람인 것 같다.
어제 확인해 놓은 뒷문으로 나갔다. 공기가 신선하다. 희미하고 푸른 새벽이 좋다. 문 옆 오래돼 보이는 수돗가에서 물을 채우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어제 산과 국경을 넘었고 오늘부터 스페인에서의 순례라고 생각하니 어떤 길을 걷게 될 지 기대와 함께 다시 걱정이 앞선다. 금방 물통의 주둥이까지 물이 차 올랐다. 자원봉사자(오스피탈레로)가 이곳 물이 좋다며 꼭 받아가라고 했던 곳이다. 마치 이른아침의 의식처럼 행해진 작지만 소중한 정보였다.
나무로 덮인 오솔길의 초입으로 들어섰다. 푸른 새벽 하늘을 아치모양의 나뭇가지들이 덮고 있었다. 그 길을 혼자 걷고 있자니 론세스바예스의 새벽 공기가 꽤나 선선하고 쾌적하게 느껴진다. 두 명이 딱 걷기 좋은 넓이의 길 양 옆으로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줄을 서있다. 보도블럭 주변의 나무만큼 인공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며 그 길의 끝은 낮은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의 초입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하이
붉은 머리가 섞인 키가 작은 아가씨다. 클레어(Claire)라고 했다. 호주에서 왔고 원주민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녀는 방학을 맞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곳을 걷고 있었다. 영어권에서 온 영어선생님 이라니, 우리나라의 국어 선생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말을 한다. 호주에는 아직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원주민들이 있으며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 대상이고 그 일에 무척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30이 갓 넘은 나이에 자기 주장이 확실한 대찬 아가씨처럼 보인다. 캠핑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취미와는 다르게 내성적이며 약간은 어둡지만 차분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난 버릇대로, 이야기를 하며 그 사람의 표정, 몸짓 등을 관찰했다. 하지만 속마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뭔가 마음속에 다른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아침 식사로 가까운 바(Bar)에 들러 간단한 빵과 커피를 주문하려 했지만 너무 이른 시각이었는지 마을을 통과하는 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마을에서 먹기로 하고 마을을 빠져 나왔다. 한 시간 정도밖에 걷지 않았는데 벌써 몸이 지치기 시작한다. 10년을 넘게 사무실에서만 일했던 몸이니, 몸이 그 환경을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클레어는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결국 난 길 가운데 가방을 내리고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보자는 말과 함께 클레어는 먼저 산을 올랐고 난 그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몇 만 명이 지나간다는 이 길에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직 좀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오늘 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채 다섯 명이 되지 않았다.
다음 마을에 도착해 보니 어디선가 떠들썩하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따라 길 뒤쪽 바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들어가본 바는 허름한 탁자가 문밖에 놓여있는 우리나라 시골의 작은 구멍가게 같았다. 선선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게 앞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어서 난 사람들이 많지 않은 바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춥기도 했지만 솔직히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거북했다.
간단한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평소에 즐겨 마시던 에스프레소로 주문 했는데, 기껏해야 더블샷보다 조금 많은 정도의 양으로 생각하고 그란데(Grande)사이즈를 선택했다. 다른 곳에서 마셔왔던 에스프레소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손에 받아 든 에스프레소 그란데는 두 손 가득한 크기의 유리잔에 가득 채워져 나왔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 정도의 에스프레소는 쳐다보고만 있어도 손이 떨려오는 양이었다. 처음 보는 양에 놀라 쓰고 있던 안경과 크기를 비교해 가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좋은 품질의 커피는 아닌 듯 했지만 고된 운동 후 마시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오늘 지나갈 코스는 론세스바예스로부터 내리막길로 22킬로미터정도다. 비교적 걷기 쉬운 내리막길에 거리도 짧으니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작은 시골 마을들이 3~5킬로미터 간격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젊은 사람들은 볼 수 없었고, 깨끗한 마을 길의 양쪽으로 거의 모든 창가에 꽃이 피어있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가지각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창틀에, 문 양쪽 벽에, 길가 양쪽에도 놓여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마을의 중심가에는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성당들이 웅장하거나 혹은 아담하게 독창적인 모양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 대부분이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 같았다. 투박하거나 흙빛으로 바래 있는 등 어디 하나 닮은 곳 없이 내부까지도 모두 각각 다른 곳으로 느낄 정도로 독보적이었고 개성이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수비리(ZUBIRI)에 도착하기 직전, 산길 옆에 만들어 놓은 소박한 무덤이 눈에 띈다. 책에서 익히 봐왔던 일본인 할아버지의 무덤이었다. 그 주변에 마치 캠프장처럼 긴 나무로 간이 의자를 만들어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이 길을 걷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길 주변에 무덤을 허가해 준다고 하여 걷는 내내 어렵지 않게 이런 무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한 모습의 수비리가 나타났다.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나란히 지어져 있는 마을에 시청은 이상하리만큼 거대하다. 마을 한 가운데에 널찍한 2차선 도로가 지나고 그 양 옆으로 비슷한 건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횡단보도가 없는 구역에서도, 잠시만 길 건너의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차들이 멈춰 섰다.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한가한 느낌의 도시가 나 같은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숙소를 잡아 등록한 후 음식과 여행용 칼을 찾으러 시내로 나서본다. 한국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던 주머니칼이 이곳에서는 길거리에서 바게트 빵이나 치즈, 햄 등을 자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이 마을이 규모가 그렇게 큰 곳은 아니었지만 순례자들이 처음으로 들르는 일정 규모의 마을이어서 이런 도구를 찾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슈퍼와 여행사등 소규모 매장 몇 개를 제외하고는 도통 상점들을 찾을 수가 없다. 작은 집들도 꽤 많이 보이는데 실제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황량하기 까지 했다. 난 다시 빵을 구입했던 슈퍼로 돌아가 일회용 플라스틱 칼이라도 구입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곳에서도 칼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기다려 보라며 안으로 들어가 자기가 사용하던 작은 주머니칼을 가져와 내 손에 쥐어준다. 잠시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난다.
“칼을 가져가서 쓰고 시에스타(낮잠) 시간이 지난 후 가져다 달라는 건가? 아니면 여기서 쓰고 가라는 건가?”
난 멈칫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 칼, 가져갔다가 다 쓰고 돌려줘도 될까요?”
슈퍼 주인은 손과 머리를 휘휘 저으며 그냥 가져가서 쓰라고 한다. 다시 돌려줄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그 동안 겪었던, 나에게는 아주 일반적인 상황들이 떠올랐다. 출장 중 식당에서 그 나라 언어를 못한다고 쫓겨났던 기억, 학생시절 학생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식당에서 쫓겨 나왔던 기억, 공항에서 아무 이상도 없는데 다른 사람과 다르게 검사를 세 번, 네 번 신경질적으로 반복하며 치렀던 기억, 기차표를 구입하려는데 자기나라 말로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며 내 영어식 발음을 흉내내고 비아냥 거리던 기억. 모두 유럽내의 다른 나라들에서 직접 겪었던 기억들이라서 내 머릿속에 유럽이란 곳은 그런 곳으로 각인돼 있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문화자체를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힘과 경제를 앞세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빼앗고 깎아 내렸던 그런 곳이었고, 아직도 개인이 느끼기에는 인종차별도 대놓고 이뤄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뭔가 달랐다. 난 이곳에서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고 순례자였다.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의미는 없었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배정받은 2층 침대의 윗자리에 누웠다. 아직 환한 대낮이라서 사람은 없고 순례자들의 배낭만 덩그러니 올라가 있는 침대가 대부분이었다. 넓은 숙소는 대낮인데도 어둡고 조용했다. 자고 있는 사람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천정을 보고 누워 불안함을 달래려 책을 꺼내 들었다. 종교라고는 주말에 가족들 손에 끌려 교회에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이곳으로 떠나기 전 아내가 손에 쥐어준 것은 기독교에 관한 작은 문고판 책이었다. 책을 펴고는 있지만 막상 그 내용은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몸의 피로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머릿속도 복잡했다.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걷고 있지만 정말 잘한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도 없었다. 사회의 무게에 지쳐 도망치듯 튕겨 나와 버린 나를 믿고 있는 아내와 어머니, 토끼 같은 두 딸들의 눈빛이 보였다. 벌써 집을 떠나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맘 편히 잠들지 못한다. 어쩌다 잠이 들면 근육경련으로 다시 고통을 느끼며 잠을 깼다. 평소 여행과 문화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이런 새로운 문화에 들어와서 새로운 음식, 건물들을 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내 마음은 아직 서울에, 가족들 옆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편한 자세로 누워 잠시 잊으려고 펼친 책을 대충 넘겨보다가 문득 한 문장에서 눈이 멈추고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마태복음 25:21>
사실 그 의미가 문맥상에서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다행히도 알베르게 안은 어둡고 침대의 위쪽을 배정받아 아무도 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실 이 길에서는 그런 얼굴이 드러나도 괜찮을 것 같지만 아직까지는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그 눈물 뒤로 모든 것을 포기하여 내려 놓고 길을 걷기로 했던 결심이 다시 스쳐 지나간다. 오늘 이후 이 어려웠던 결정에 대해 더 이상의 후회나 의심은 접기로 했다. 책이 손에서 떨어졌다. 한층 가까워진 숙소의 천장을 보고 누워 앞으로의 일만 떠올리기로 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벅찬 일이 확실했다. 앞으로의 길은 솔직히 자신도 없고 남아있는 거리는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제나 두려움은 실체라기 보다는 마음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벽과 같았다. 실제로 대면하면 그 크기는 내 생각만큼 거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작과 동시에 해결의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에서는 단지 마음을 내려놓고, 이 길에서의 삶을 그대로 받아드릴 자세가 필요했다.
저녁으로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는데, 산길을 넘어오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스페인 가족일행이 식사를 함께 하겠냐며 손짓으로 부른다. 7명 정도의 대 식구들이다. 그들은 파스타를 삶아 토마토 페이스트만을 살짝 곁들인 소박한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었다. 서양권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싼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대접을 받고 있는 음식이다. 그들의 음식은 결코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검소하고 담백한 것이 매력이었다.
식사를 하며, 몸짓을 섞어서 한국에서 12시간을 날아왔다고 하니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단지 이 길을 걷기 위해서 그 긴 시간과 돈을 사용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을 다시 물어온다. 난 단지 ‘그렇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내 머리로도 역시 지금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식사 후 자동판매기 커피를 한잔 빼 들고 숙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하늘이 어둑해질 즈음 침대로 돌아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훌리오가 한국인을 한 명 데리고 들어온다. 오늘 만난 한국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숙소를 모두 뒤졌다고 한다. 소개받은 사람은 한국에서 체육을 전공하는 대학 졸업반 김윤식씨라고 했다. 한국사람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나로서는 사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워낙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어서 첫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친근하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 서로 어색한 시간이었지만 길에서 만나면 서로 인사라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