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 이 사 - 3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수건을 목에 건 기영이 아직 머리가 다 젖어있는 채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기영의 머릿처럼 개운했고, 거울에 비춰 본 얼굴은 오랜만에 밝게 웃고 있었다. 자기가 보기도 낯선 모습이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책상 위에 놓아 둔 자잘한 물건들을 주머니에 넣는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이! 기영씨. 난데. 짐은 다 옮겼어?”


아저씨였다.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네. 차량까지 지원해 주셔서 오전에 쉽게 다 옮겼고요, 이제 정리 끝냈어요. 막 씻고 나가려는 중이에요. 고맙습니다.”

“허허, 잘됐네. 뭘 별것도 아닌데. 어때? 거기 방은 쓸만해? 아직 도배가 안돼서 생각만큼 깨끗해 보이지는 않을 거야.”


기영은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에 있던 곳보다 훨씬 깨끗해요.”

“그래? 허허 다행이네. 실은 내가 좀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네 말씀하세요.”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며 고함 소리, 급박한 사이렌 소리 등이 전화기 뒤로 들렸다. 아저씨는 급한 일이 생긴 것처럼 당황하며 말했다.


“좀 있다 다시 전화할게.”

“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책상 위에 있던 자잘하지만 주머니에 넣기 애매한 크기의 물건들을 기타 가방에 넣었다. 완벽했다. 책상 위는 깨끗하고 주머니는 편안했다.

기영은 항상 집에 돌아오면 주머니에 있던 것들을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나갈때는 하나하나 다시 넣으면서 눈과 손으로 확인했다. 이렇게 하면 무엇이든 잘 잊어버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주머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주머니에 있는 현금이 몇 백 몇 십 원이 있는지, 그 금액이 어떤 동전들 몇 개로 이루어져 있는지 까지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20분이 지나도 아저씨는 연락이 없었다. 결국 기타를 들고 일어서다가 주저하며 다시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용한 장소에서 아저씨의 목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기영씨 아직 집이야?”

“네. 나가려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세요?”

“내가 지금 나와 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바로 못 갈 거 같거든. 그래서 부탁 좀 하려고. 근데 아직 퇴근 안 했지? 통화는 괜찮아?”

“네. 정리 마치고 나가려던 참인데 괜찮아요.”

“아. 다행이다. 그 왜, 102호 장기 투숙하는 사람 중에 이은정씨라고 있는데 그 분 펜트하우스로 옮겨드려. 내가 준비는 다 해놨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지금 못 갈 것 같아서 그래. 오늘 쉬는 날이라서 아마 집에 있을 거야.”

“네. 그분 알아요. 근데 펜트하우스요? 301호요?”


기영은 확인을 위해 한번 더 물었다.


“어. 기영씨 바로 위층 301호. 카페하고 같은 층에 있는 집 있잖아. 거기. 펜트하우스.”

“네. 그럼 그냥 은정씨에게 펜트하우스로 가시라고 하면 될까요?”

“오늘부터 삼 일이라고 하고. 그냥 같은 집 꼭대기 층이니까 짐은 특별히 필요 없을 거야.”

“그쪽에서 준비할 건 없나요?”

“필요한 건 그때그때 내려가서 가져가면 되니까 따로 준비할 건 없어. 그리고, 어.. 아! 비밀번호는 1234로 맞춰 놨으니까 들어가자마자 바꾸라고 하고, 또 매일 청소해야 하니까 매일 나갈 때 나한테 메시지나 폰으로 연락만 달라고 하면 돼. 퇴근시간 지났는데 미안해.”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문을 나섰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102호 앞에 다다르자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문을 두드렸다.


“은정씨 계세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두드리며 불렀다.


“은정씨 계세요?”


현관문이 열리고 어둡고 무표정한 은정이 문틈 뒤 그늘에 숨듯 서있는 것이 보였다. 식당에서 봤던 그 얼굴임을 알아채고는 웃으며 말했다.


“은정씨 맞죠?”


대답이 없었다. 끄덕거리는 것 같긴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기영은 무안한 듯 웃음을 거뒀다.


“사장님이 오늘부터 3일 동안 펜트하우스에 은정씨를 모셔다 드리라고 해서요.”


문이 조금 더 열렸다.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보였지만 현관문 안전 고리가 단단히 걸려 있었다. 그녀의 왼손 검지엔 예전보다 작은 밴드가 붙어있다. 은정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펜트, 하우스요? 제가 왜요?”


은정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기영은 말을 더듬었다.


“아··· 그러니까··· 에··· 저희 사장님이 전화 하셔서··· 에··· 혹시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은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젓는다. 기영이 멍하게 서 있자 은정이 물었다.


“꼭 가야 하는 건가요?”


기영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 반복되자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입을 뗐다.


“사장님이 펜트하우스로 모시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보다는 거기가 혼자 쓰시는 공간이라 좋으실 거에요. 윗집이니까 짐은 필요하실 때 가져가시고요. 일단 저와 함께 가서 보세요.”


은정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잠시만요.”


대문이 닫히고 겉옷을 한 겹 더 걸친 은정이 문을 열었다. 노란색이 섞인 긴 히피펌 머리에 통통한 볼과 커다란 눈을 가진 세련된 느낌의 SNS 스타를 보는 듯 화려하고 감각적인 외모와는 대조적으로 왠지 모르게 어두운 느낌이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무기력함, 힘없는 목소리는 며칠간 잠도 못 잔 듯 피곤해 보인다.


‘삑삑삑삑, 지~잉.’


쇠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부드럽게 펜트하우스의 문이 열렸다. 기영은 형광등을 켜고 물러서며 들어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기영과 집 안을 번갈아 보던 은정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어가고 기영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외벽 안쪽에 방문이 보였고 작은 거실을 지나면 화장실 문이었다. 기대와 다르게 화려한 곳은 찾을 수 없는, 혼자 살기 딱 좋은 1.5룸이었다. 하지만 3층 가득 퍼져있던 향은 펜트하우스를 열자 더욱 짙어졌다. 그 향에 취하는 듯 기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은정도 분위기가 맘에 들었는지 기영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향이 참 좋고 아늑하네요.”

“다행이에요. 저도 여기는 처음이거든요. 정말 향이 좋네요.”


은정은 눈을 크게 뜨고는 작은 거실을 전체적으로 훑다가 안쪽으로 한 발을 디뎠다.

방문을 열고 불을 켜는 순간, 짙은 청색 벽지가 문틈으로 드러났다. 카페의 벽과 같은 색이었다. 카페의 벽과 공간상의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3층 전체 공간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짙은 청색으로 구분 해 놓은 느낌이었다.

입구의 맞은편에는 커다란 창이 시원하게 뚫려있고 아기자기한 레이스 커튼이 달려 있었다. 깨끗한 침대보로 쌓여있는 침대와 그 옆 보조 테이블도 작지만 감각적이었다. 테이블 주변에는 뚜껑이 닫힌 투명한 디퓨저들과 쪽지가 놓여있다.


“한번 둘러보시고 편하신 시간에 옮기시면 됩니다. 기간은 오늘부터 삼일이라고 하셨어요. 비밀번호는 저 나가면 바로 바꾸시고요. 매일 청소해 드리니까 아침에 나가실 때 아저씨께 직접 연락 주세요.”


처음으로 은정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였다.


현관문이 닫히고 입구의 센서등이 꺼졌다. 어두워진 카페에 희미한 달빛이 비쳐 들어와 간신히 사물이 보일 정도의 빛만 남을 즈음에, 은정의 방 문틈에서 작고 노란 빛의 덩어리 몇 개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하나하나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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