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 빛의 먼지 - 1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영천의 노랫소리가 크게 들리며 기영과 장연이 주변에서 빼곡하게 의견을 적고 있다. 평소의 자유로운 연습실 분위기와는 달랐다. 오늘은 각자 만든 창작곡을 발표하는 날이었고, 곡을 발표하는 시간에는 세 명 모두 진지 했다. 마치 오디션 프로의 심사 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지식을 총 동원해서 곡을 평가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렇게 몇 달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가끔씩 서로에게 뭔가를 묻기도 하고 신호를 보내기도 하며 진지하게 악보 위에 의견들을 적어 내려갔다.

영천의 노래가 끝나자 장연이 악보의 특정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다른 부분은 다 좋은데, 이거 이 부분은 또 표절인 것 같은데? 오늘 마지막으로 이거 좀 짚고 가자.”


영천은 표절이라는 말에 벌컥 소리부터 지른다.


“뭐? 무슨! 여기는 아니잖아. 내가 이 부분을 얼마나 신경 써서 만들었는데.”


장연이 핸드폰으로 곡을 찾더니 이어폰 한쪽을 영천에게 던졌다. 영천은 한번을 듣더니 폰을 뺏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다. 기다리던 장연은 지루했는지 전자 기타를 가리키며 기영에게 말했다.


“야. 근데 아까 보니까 저거 이펙터 이젠 아예 안 되던데 너 도대체 그 배터리는 언제 사오는 거냐?”

“맞다! 배터리 남은 거 아예 없지? 지금 쓰는 게 마지막이야?”

“크크크 뭐냐? 너 그거 사온다고 한 게 언젠지 알아? 너 이사 가기 한참 전이야. 그거 몇 주도 아니고 몇 달 전이거든?”

“아, 미안 미안. 나 지금 알바하는 데서도 주변에 배터리 싸게 파는데 있으니까, 담에 올 때 꼭 사올게.”

“야, 그냥 가까운 데서 사자니까. 그거 얼마 한다고.”

“아냐 아냐. 그거 생각보다 비싸. 우리는 또 자주 써야 하니까 싼 데서 사자.”

“그래 그럼. 오늘 하루 더 속아주지. 근데 저거 이젠 소리 아예 안 나거든?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았어. 오늘 영천이는 시간 좀 걸릴 것 같으니까 그만 하자, 지금 뭐 하기엔 너무 늦었잖아. 벌써 새벽 한시 반이네. 나 내일 또 출근해야 돼.”


기영이 고민하고 있는 영천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장연도 정리하기 전에 며칠 전 잡아 놓은 오디션에 대해 다시 공지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접자. 그리고 너희, 아까 말했던 3주 후 오디션 잊지 마라. 그거 잘하면 우리 알바 한개씩 줄여도 되니까.”

“근데 나 알바 때문에 연습하러 일찍 못나오는데 어쩌냐?”


영천은 계속 음악을 돌려 듣느라 정신이 없다.


“편곡이 문제지. 우리가 벌써 몇년째 같이 해서 뭐, 오디션이야 하던 거 가서 해보면 되겠지만, 밴드에 정확한 색이 없잖아. 게다가 우리 셋 다 성향이 달라서 맞추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그렇긴 한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내가 비중을 조금 줄여야 할 것 같아. 이게···”


기영은 장연에게 손 여기저기의 흉터와 페인트 자국을 보였다. 마치 일용직 노동자의 손 같았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남은 흔적이었다.


“며칠 전부터 전체 보수 공사 들어갔는데 알바가 거의 막노동이라서. 난 그냥 너희가 하는 거 따라갈게.”

“거봐 내가 뭐랬냐? 너 그거 속은 거 아닌지 잘 생각해봐. 그리고 기타 치려면 웬만하면 손은 다치지 마라.”


장연이 씁쓸하다는 듯 툭 내뱉고는 영천에게 소리쳤다.


“야 영천아, 너도 그 부분 내일까지 무조건 바꿔와. 안 그러면 곡 선정할 때 그거 내가 책임지고 빼버린다.”

“아, 이 새끼 이런 걸 어떻게 알았지? 난 이 곡 진짜 첨 듣는데.”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만 나가자.”

“야. 너네 먼저 가. 나 이거 좀 더 해보다 갈게.”


영천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악보를 넘기며 펜을 집어 들었다. 장연이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잡고 끌었다.


“야! 됐어. 저거 배터리 없어서 소리도 안난다잖아! 그냥 내일하고 가자 쫌!”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나 저거 안 써!”

“알았으니까 그냥 좀 가자고. 야!”


기영과 장연은 자연스럽게 영천의 짐을 나눠 들었다. 장연이 영천의 팔을 끌고 기영이 연습실의 불을 끄자 영천이 끌려 나가면서 소리쳤다.


“아이씨, 나 안 간다니까! 안가. 배터리 그거 뽑았다가 다시 꽂아봐. 바닥에 던져보든가. 야. 나 안가~.”


하지만 이영천은 팔만 서장연에게 잡혀있을 뿐, 제 발로 걸어 나가고 있다.






숙소로 돌아온 기영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신음 소리가 났다. 평생 써보지도 않았던 근육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휴, 방 좋네. 넓고. 이런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는 비싸겠지?”


이전에 지냈던 그 반지하의 원룸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기는 그 반지하의 꿉꿉함도 없고 훨씬 깨끗했다. 오랜만에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엄청 피곤한 상태였는데 어느새 몸도 가벼워 진 것 같았다.

기영은 침대에 엎드려 게스트하우스 앱을 열고는 문의에 대한 회신을 한글자씩 적어나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전히 신음 소리가 나왔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비하면 충분히 참을만했다.


“아. 어지러워.”


뒤척거리던 기영은 금세 잠이 들어버렸지만 움직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나왔다. 결국 몸을 크게 움직이려다 고통에 잠에서 깨버렸다. 바로 그 때, 천정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며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마치 흐르는 물을 통해 강바닥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흘러가는 것인지 흔들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 본다.


“어? 어? 어?”


천정의 한쪽 구석에서 빛나는 먼지 같은 아주 작은 물체가 불빛을 뿜어내며 방 한가운데로 둥실둥실 떠내려 왔다. 흐린 노란색으로 빛나는, 마치 깨지지 않은 민들레 씨의 동그란 뭉치처럼 생긴 것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떠다녔다.

또 다른 흐린 노란색의 뭉치가 같은 곳에서 두둥실 튀어 나왔다. 첫 번째 불빛은 둥실 둥실 방 안을 돌아다니다가 기영이 있는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마치 기영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불빛이 움직이자 두 번째 불빛도 방향을 바꿔서 기영에게로 다가왔다. 기영은 그 빛나는 뭉치들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게 보고 있었다. 움직이거나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움직이지 못해서 인지, 아니면 그 아름다움에 정신을 뺏겨 움직이지 않았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 저게 뭐지? 진짜 예쁜데, 빛이 나네?”


기영은 반쯤 정신이 나가있는 멍한 상태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저런 것이 보일 리가 없었다. 중력 법칙을 따르지 않고 평상시에는 보이지도 않는 빛의 덩어리. 이것은 꿈이 틀림없었다.


“아, 꿈이라도 참 예쁘네. 저거 무슨 민들레 씨가 빛이 나는 건가? 근데 두 개가 크기도 달라.”


빛의 덩어리들은 기영의 주변으로 다가와 원을 그리다 차츰 속도를 높여가며 다가왔다. 그리곤 미쳐 피하거나 소리 지를 틈도 없이 기영의 주변에서 폭발해 버렸다.

작은 불꽃들은 기영의 몸에 흡수되며 서서히 사라졌다. 바스러진 불빛이 피부에 닿기 직전에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며 피부로 스며 들었지만, 뜨겁거나 아픈 느낌은 전혀 없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피곤에 절어있던 기영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폭발한 불빛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모든 빛들이 몸 안으로 사라진 후였다. 기영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아악!!”


간접 조명을 제외한 어떤 것도 기영의 방에서는 빛을 내고 있지 않았으며 그의 몸도 방금 전과는 다르게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뭐지? 뭐였지? 방금 뭐가 들어온 것 같았는데? 꿈이었나? 아냐. 나 깨있었는데? 그게 잠든 거였나?”


기영은 불빛이 떨어져 흡수된 부분을 더듬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타버리거나 눌린 흔적조차 없었다. 불빛이 튀어 나왔던 천정도 딱딱한 벽이 느껴졌다.


“뭐야 이거. 진짜 꿈이었나? 이렇게 생생한데?”


아직 꿈에서 헤매고 있는 듯 멍하게 불빛을 떠올려 봤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있는 어떤 흔적조차 없었다.


‘확실히... 꿈 이었나 보네.’


의심을 접는 순간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큰 집을 혼자 사용하고 있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어? 위층인 것 같은데? 은정씬가? 무슨 일이야?”


소리는 윗층에서 들리는 것이 분명했다. 매니저가 나설 일은 아니었지만 불안했다. 지금 은정의 상태라면 충분히 안 좋은 일들을 상상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팔을 쓸어 내리며 기영이 카페로 들어왔다. 펜트하우스에 귀를 바짝 대보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네, 잘못 들었나?”


기영은 펜트하우스 앞 테이블과 커피 캡슐을 최대한 조용히 정리하며 다시 소리가 나지 않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에이, 잘못 들었나 보네. 잘됐지 뭐.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기영은 정리를 마치고 맘에 드는 캡슐을 골라 기계에 넣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뒷벽에 등과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허리 주변의 스위치를 더듬더듬 찾아 누르자 카페 전체를 밝히고 있던 간접 조명이 꺼지며 어두워 졌다. 통창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완벽하게 어둡지 만은 않은 그 공간에서, 기영은 고소한 커피의 향이 퍼지는 것을 음미하듯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잠깐 멈췄다가 내쉬었다.


“아, 좋다. 이 시간이 제일 좋아. 근데 오늘은 하루가 엄청 길겠어.”


쌓여가던 커피의 흐름이 멈췄다. 기영은 바로 잔을 들지 않고 잠시 그 자세로 분위기와 향을 느꼈다. 그가 좋아하는 이 고요함, 어둠 속에서 작업했던 곡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허리 뒤의 벽에 대고 있는 손가락이 박자를 맞추듯 주기적으로 움직이며 벽을 때렸다. 커피 향이 카페 전체에 퍼졌을 때는 기영의 머릿속에서 이미 두 곡이 흐른 뒤였다.


커피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센서등의 불이 꺼지며 새벽의 옅은 노란 하늘이 창 밖에서 비춰 들어왔다. 동시에 기영이 서있던 바로 그 곳에서 수많은 빛의 먼지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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