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ES ~ BURGOS, 14th Day
아게스의 아침은 다른 지역보다 어두웠다. 6시가 다 되어 짐을 꾸려 나왔으나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듬성듬성 붙어있는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방향을 나타내는 노란 화살표 위에 겹쳐지니 노란 화살표는 더이상 찾을 수 없었다. 흔하던 화살표도 이곳에서는 듬성듬성 보인다. 낭패였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할 무렵 멀리서 어렴풋이 불빛 두어 개가 움직인다. 손전등 불빛 같다. 노란 가로등 아래 그쪽 방향으로 길이 뻗어 있었고 길을 따라 올라가니 비로소 화살표가 나타났다.
화살표를 따라 아스팔트 포장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십 분을 걷고, 한 시간을 걸어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마치 아스팔트 길 위에서 런닝머신을 타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길만 이어졌다. 불안하다. 뒤쪽으로 불빛 몇 개가 흔들리다가 사라져 버렸다.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은 어둠 속에 갇힌 셈이 돼버렸다. 앞이나 뒤나 똑 같은 아스팔트 길이었고 가시 거리 안에 아무 표식도 보이지 않아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마을이 더 가까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보니 문득 내 기준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잘못된 방향이라면 왕복 20킬로미터가 추가되는 셈이지만, 다시 한번 의심을 버리고 앞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커다란 간판 같은 것이 보였다. 혹시 마을 이름이나 도로 표지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가가 불을 비추자 원시인의 얼굴 형상과 그 위에 커다랗게 써있는 아타푸에르카(Atapuerca)라는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난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 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짐을 느낀다.
이곳은 오늘 지나는 길에 보인다던 인류의 조상이 발견되었다는 바로 그곳이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라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런 곳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곳이다. 인류의 조상, 유럽에 최초로 거주했던 인류의 기록이 이곳 석회암 동굴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손전등을 꺼 보니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다시 길을 잃을까 걱정도 됐고, 등에 올라 앉아있는 배낭이 생각을 누르고 있어서 아쉽지만 이 곳을 포기하기로 했다.
날이 밝아올 때쯤 마을이 보였다. 깔끔하고 깨끗한 도시였지만 역시 사람은 없었다. 마치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마을은 옛 건물의 폐허와 새로 지은 건축물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의 끝자락쯤에 익살스런 순례자 벽화를 뒤로하고 걷던 중 차츰 도시가 가까웠음을 알리는 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띄엄띄엄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나고, 도로에는 도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들이 한 두 대씩 지나갔다. 후끈한 공기가 덮쳐오며 익숙한 도시의 느낌이 가까워 짐을 느낀다.
부르고스(Burgos), 이 길에서 만난 최초의 대도시이다. 도시로 진입하자 수많은 현대식 건물들과 자동차를 가장 먼저 볼 수 있었고 옛날에 지어진 성당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난 처음으로 도시구경을 온 사람처럼 주변 상점을 기웃거리다 문득 유리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검게 타버린 몸과, 아직 마르지 않은 빨래가 걸려있는 가방, 흙이 잔뜩 묻어있는 등산화까지 이런 도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페인트로 형식 없이 그려져 있던 노란 화살표 조차도 도시로 들어서며 어느새 도시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세련된 금속 장식의 조개모양 화살표로 바뀌었다가 어느새 파란 표지판으로 대체 되어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의 느낌을 풍겼지만 그것이 날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바쁘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그 작은 표지판은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간 차이나타운 한 가운데에서 지도를 펴 들수 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지도로 대략의 방향을 찾은 후 출발하려는데 사거리의 왼쪽 길에서 팻 일행이 나타났다. 뒤쪽에 주르륵 다른 사람들이 포도송이처럼 달려있었고 모두의 손에는 각각의 지도가 들려 있었지만 모두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길을 묻지도 못하고 그저 서로 추측하며 길을 찾고 있었다.
외국에서 길을 찾을때 약국을 찾아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서툴지만 영어가 가능했다. 길을 확인한 후 기쁜 마음에 팻 일행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이미 다른 사람들과 떠난 후였다. 난 지도를 접어넣고 주변을 구경해 가며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숙소에 다다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제서야 팻 일행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숙소 앞의 새하얀 부르고스 대성당이 가슴을 뛰게 한다. 반사된 햇빛에 눈이 부셨다. 짐 정리와 빨래를 서둘러 마치고, 통조림과 바게트 빵, 1.5리터 음료수를 오늘 저녁용으로 구입했다. 작은 캔 음료수와 1.5리터 페트병의 가격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아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으로 페트병을 집어들었다. 대도시답게 갖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이 도시의 방문길이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내겐 사치로 느껴질 뿐이었다.
숙소 휴게실에 얼마전에 지나쳤던 동양인 모녀가 앉아있다. 한국인이었다. 두 딸은 시온이, 성주라고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었고 어머니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음료수를 함께 마시며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식사로 통조림을 따고 빵을 뜯으니 성주가 한번 먹어보겠다고 거든다. 입맛에 맞는 눈치였다. 때맞춰 오랜만에 보는 윤식씨가 한국 학생들을 우르르 몰고 나타났다. 어제 도착했는데 도시가 너무 좋아서 하루 더 묵어 간다고 하며 새로 만난 친구들을 소개한다. 덕분에 커다란 음료수병은 바닥이 났지만 즐겁고 반가웠다. 내일 시온이와 성주는 차를 타고 메세타를 지나쳐 레온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저녁에 아주머니가 한국 사람들을 모두 모아 칼국수를 끓여 주려 했으나 아쉽게도 이곳은 요리가 불가한 곳이었다.
간단한 식사 후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숙소 바로 앞, 눈부신 부르고스 대성당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 밝게 빛나는 새하얀 대성당은 너무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성벽을 손으로 스치며 걸어본다. 눈부신 흰색이 가슴으로 스며들며 대성당을 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수 백 년이나 된 건물이지만 마치 지금 바위를 자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 진다. 돌아보면 난 유난히 성을 좋아했었다. 학창시절에도 미술시간 숙제로 성을 그려갔을 정도로 좋아했고, 기회만 된다면 꼭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행시 방문했던 곳의 모형을 사 모아올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비워진 마음때문이었는지 이렇게 감동이 마음속으로 전달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짜릿한 느낌이 들어 외벽에서 손을 뗐다. 성의 위쪽부터 천천히 눈으로 훑다가 잠시 오싹한 느낌이 몸을 감싼다. 단단한 대리석을 마치 연한 나무를 조각하듯이 세심하게 깎아놓은 그 모양들을 보니 완벽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치렀을 고통들이 느껴졌다.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박애주의자의 오지랖인가 싶었지만 마치 내 몸이 깎이는듯한 광적인 고통 같았다. 잠시였지만 멍하게 서서 그 느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입에서는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저 사람들…… 완전히 미친 거 아냐?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고통과 맞바꾼 4세기 동안의 작업은 현재까지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감동시키고 있었다. 또한 그 내부에는 발렌시아를 정복한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인 엘시드(EL CID)의 관이 보관되어 있어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더욱 의미가 큰 곳 이라고 한다.
대성당의 뒷벽을 따라 앞쪽으로 돌아 정문에 다다랐다. 마침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여 무료로 표를 받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대성당의 내부를 돌면서 기둥 하나, 벽 장식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녹화를 해가며, 손으로 만져가며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여러 개의 층과 방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 중 작은 기둥 하나, 자투리 장식 하나조차도 함부로 되어있는 곳은 없었다. 문화적 충격인지, 이곳만이 주는 감동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솟구쳤다. 시시때때로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며 짜릿한 느낌이 들곤한다. 마치 내 몸이 발을 통해 대성당과 이어진 듯 하다.
높이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줬던 웅장하고 높은 고딕 양식 성당은 그 빼어남으로 인해 스페인 3대 성당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장소라고 한다. 이곳 내부의 많은 공간들은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각각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장식들을 설계하고, 제작 한 것처럼 보여졌다. 자세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정말 답답한 부분이다. 수많은 의미들을 담아 그 건축물을 통해 후세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들을 표현했어도 귀가 닫혀있어서 알아듣지 못하는 존재가 돼버렸다. 상대방은 말은 하고 있으나 알아듣지 못하는 답답함은 나의 무지로부터 시작됐다.
지식이 아닌 다른 길로도 무엇인가가 계속 홍수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마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주유소의 호수처럼 몸을타고 올라오는 듯한 감정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막혀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가슴이 답답해서 잠시 앉아 쉬다가 일어서고를 반복했다.
흥분됐던 내부 관람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빠르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저녁시간의 대성당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이곳 숙소도 다른 곳처럼 10시가 되면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에 야간의 대성당을 보려면 10시 이전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요즘 이곳의 일몰은 9시 30분쯤 이었으므로 조명을 비친 대성당의 야경을 보려면 약 30분 가량의 시간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대성당 앞 광장의자에 자리를 잡고 아예 신발을 벗고 앉았다. 아,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해가 지며 천천히 색이 변해가는 대성당의 모습을 광장의자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지켜봤다.
밤 9시가 되니 조명이 켜지고 거리 음악가들의 연주가 시작됐다.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 자기만의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명이 켜진 대성당은 큰 규모에 비해 빈약한 조명으로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주변에 느껴지는 사람들의 온기와 활력이 그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10시를 10분 남겨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 침대가 놓여진 층 전체에서 커다랗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범인은 다행히도 반대쪽 끝에서 자고 있는 일본인이었다. 워낙 소리도 컸지만 그 층의 공간이 마치 체육관처럼 하나로 되어 있다보니 소리가 다시 증폭된 메아리로 돌아왔다. 난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 얼굴을 기억했다. 다음에 어느 곳에서든 다른 숙소에서 만나게 된다면 당장 방을 바꿔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와 휴대용 귀마개를 꺼내 양쪽 귀 깊숙이 꽂았다.
천정이 보이는 2층 침대에서 눈을 감고 오늘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느꼈던 감정선을 다시 따라가 본다. 삶, 죽음, 기쁨, 축복등 수많은 감정들이 큰 감동이 되어 다시 밀려왔다. 수용하지 못할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여 머릿속 회로가 타버리는 느낌이다. 그 느낌들을 그대로 가슴에 덮었다. 분석 따위는 그 범위를 좁힐 뿐이었고 나중에 이쪽에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으면 될 일이었다. 그 단순한 결정에 복잡함이 사라졌다. 이와 더불어 가슴에 한 꺼풀 무엇인가가 덮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든 마치 상처에 붙이는 밴드와 같이 내 마음에 덮인 듯 하다. 잔잔한 행복이 찾아 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악명 높은 메세타 지역에 진입하게 된다. 이곳은 지역이 매우 높고 건조하여 여름은 무척 뜨겁고 겨울은 무척 추운 곳이라고 하며, 나무조차 없어서 쉬어 갈 곳도 없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메세타 지역을 쉽게 지나기 위해 부르고스에서 레온으로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
오늘도 많은 순례자들이 레온으로의 탈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난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대로 걷기로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것이 그랬다. 내 바로 뒤 침대에 있던 팻 일행도 메세타를 그냥 통과한다고 한다.
팻은 언제나처럼 일행들과 나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는 몇 점이었는지,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어디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