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다 - 1

Bayonne ~ ST. JEAN PIED DE PORT, 1st Day

by 이작


12시간의 비행으로 파리에 도착했다. 직행이지만 지루하도록 먼 거리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돌고 있는 가방이 오던 길에 구름을 삼켰는지 부쩍 커 보인다.


배낭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면서 찾아간 파리의 도미토리 민박집은 직장인의 기준으로는 작고 불편했다. 짐을 어디에 부려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내 배낭은 도미토리 룸의 입구를 막고 섰다가 하나밖에 없는 작은 책상 위로 올려졌다.


식사 후 바로 2층 침대의 위쪽으로 올라가 내일 찾아 나설 길을 알아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파리의 지하철 노선을 보고 있으니 십수 년 전 이곳에 출장으로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게 파리는 남들처럼 낭만적이고, 좋은 기억의 도시가 아니다. 샤를 드골공항에서의 인종차별을 느끼게 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빡빡한 검사와 비아냥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프랑스 국내선을 타고 남부 지방에 내렸을 때 그 강도는 더 심해졌다.


자존심 높은 파리라고 해도 여행객이 느끼는 도시는 어디나 똑같았고 서울의 명동, 중국의 상해와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거리, 건물, 값비싼 명품매장들이 즐비했고, 길거리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대도시들과 같았다. 출장 시 프랑스가 초행길이었던 일행이 간절히 원하던 한식을 먹기 위해 전화로 예약하고 찾아간 몽마르트르 초입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는 밥이 없다며 곰국에 빵이 제공되었다. 파리 스타일 이라나? 체크아웃 시 계산서에도 전화로 말한 내용과는 많이 달랐다. 약 두 배 가량 비싸게 가격을 치르고 이를 갈며 다음날 호텔 문을 나섰었다. 한국사람들은 절대 외국에서 한국인들을 만나서는 안 된다고 일행에게 핀잔을 주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프랑스 남부 지방에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끝없는 평지처럼 내게 익숙지 않아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다. 그 모습을 기대하며 구부리고 잠이 들었다.





추위에 얼핏 깨어 주변을 둘러보니 캄캄하다. 아직 밤인가 보다.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흐릿한 빛이 침대의 실루엣을 그린다. 그제야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불안했다. 사실 새로운 숙소에서의 첫날밤 서툰 잠자리가 편할 리 없었다. 새로운 도시의 민박집, 아래쪽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흔들거리는 2층 침대에서 처음으로 입고 잠든 등산복과 한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추운 파리, 처음으로 맞춰 놓은 손목시계 알람까지 모든 것이 낯설다. 가슴이 답답하다. 가족들의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 떠올라 슬쩍 눈물이 비친다.






아침을 챙겨 먹은 후 테제베(TGV)를 타고 바욘(Bayonne)으로 향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하며 건강히 잘 걸으시라는 민박집주인아주머니의 말이 정겹다.

지하철로 기차역까지 이동 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빵집에서 빵을 몇 조각 사 들고 테제베에 올랐다. 속도 안 좋은데 빵 맛도 별로다. 파리에서 오전 11시 19분에 출발해서 남부지방으로 18시 30분까지 7시간을 넘도록 달렸는데 그 구간 중에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그냥 멍한 채로 창 밖 지나가는 광경을 TV 보듯 흘려버린 탓이다. 단 한 가지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은 도착 예정 시간인 6시 30분에 바욘에서 호텔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곳이 7시에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이었다.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그 30분을 어떻게 사용해 늦지 않게 이동할지 7시간 동안 고민 했던 것 같다. 미리 예약해 둔 싸구려 호텔의 시설에 대해서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단지 제시간에 도착하기 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무슨 호텔이 문을 닫는담?



그때까지 난, 단지 ‘생각’ 할 뿐이었다. 걱정이나, 기대나, 흥분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고 마음속이 항상 퍽퍽하고 답답하며 왜 그런지 뻐근하게 아팠다. 꼭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던 프랑스의 남부지방에 도착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나?”하는 불길한 생각들이 잠시 머릿속에서 꿈틀거린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 여행에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 제대로 마칠 수 있다면 건강해질 것 같기는 한데 몸 상태로 보면 그보다는 오히려 건강을 잃을 확률이 더 컸고, 게다가 5~6주가량을 계속 혼자 걸어야 한다. 즐거운 것도 2, 3일이면 질려 버리는데 자그마치 5~6주다. 돌아갈까? 하지만 그 시계 같은 삶을 더 이상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테제베(TGV)를 타고 달려 바욘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오후 6시 30분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손에 쥐고 있던 지도는 7시간 동안 손이 닿았던 자국 그대로 땀에 젖어 있었고 목적지에서의 시간이 얼마 없다는 조바심에 도착 전 미리 짐을 꾸려 나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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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역 주변으로 강이 흘렀고 작은 여느 유럽의 소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일방통행이 많아 보이는 길과 강, 다리 건너에 구 시가지가 있었고 그곳 어딘가에 오늘의 목적지인 싸구려 호텔이 있을 것이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여 충분히 걸어서도 갈 수 있겠지만 이미 도착한 후 8분가량을 지체해 버렸다. 7시에 문을 닫아 버리면 체크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전에 호텔에 도착해야 했다.



다행히도 다른 곳들과 비슷하게 기차역 앞에 택시들이 줄을 서있다. 난 무조건 앞쪽의 택시로 달려가서 기사에게 주소부터 내밀었다. 그 싸구려 호텔은 다행히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이름만 보고도 알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택시 기사는 처음에 불어로 한참을 떠들더니 나의 멍한 얼굴을 보고 서툰 영어와 몸짓을 섞어가며 띄엄띄엄 다시 이야기한다. 다리만 건너면 바로이므로 비싼 택시를 타지 말고 걸어가라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곳을 지도만 보고 무작정 출발해서 20분 안에 도착할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등뒤에는 15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지 않은가. 난 상관없으니 괜찮다고 ‘오케이 오케이’를 외치며 짐을 벗어 내렸다.






도착하고 보니 화장실이 없는 방이다. 나무 바닥은 옆으로 기울었고, 복도 끝을 막아 방으로 개조한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별 기대 없이 가격만 보고 예약한 곳이니 상관없었다.

창문을 열고 건물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좁은 골목길을 눈으로 따라 오르다 보니 유명하다는 생트마리 대성당(Cathedrale Sainte-Marie de Bayonne)이 살짝 보인다. 이곳이 역에서도 가깝고 추가비용을 지불하면 아침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살짝 긴장이 풀어진다. 내일 아침까지는 해결됐구나 하는 안도감인지, 아니면 시작이 그나마 순조롭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가방을 침대 위에 던져두고 밖으로 나갔다.






바욘은 깨끗하고 아늑한 프랑스 남부의 중소도시로 햄과 초콜릿, 7월의 바욘 축제(fetes de bayonne)가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또한 프랑스령 바스크(Basque) 지방으로, 프랑스도 아니고 스페인도 아닌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바스크 문화의 대표적인 도시라고도 하며 니브(Nive)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나뉘어 있다. 기차에서 내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 강을 건너야 한다. 도로의 폭도 다른 유럽도시들에 비해 꽤 넓은 편이고 그 위로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지나고 있어서 예전에 들렀던 유럽의 다른 중소도시들에 비해 활기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순례의 시작점인 생장(ST. JEAN PIED DE PORT)으로 가는 기차의 대부분은 이곳 바욘에서 작은 열차로 환승하게 되며, 한 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출발하는 열차를 선택할 수 있어서 일정과는 별도로 방문할 수 있는 첫 번째 도시이다.






이미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여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는 생트 마리 대성당(Cathedrale Sainte-Marie de Bayonne)의 주변을 건조하게 둘러본 후 기차역의 위치만 다시 확인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마침 구시가지 안쪽 골목에서 문을 닫고 있는 빵집을 찾아내 남아있는 빵 두어 개를 골라잡고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앉아 맛도 느껴지지 않는 빵을 우물 거리며 가방을 모두 풀어헤쳤다. 내일 이른 출발을 위해서는 짐 정리를 처음부터 새로 해야 했다. 일단 입고 있던 옷가지들을 벗어 정리하고 전체를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무거운 것들을 아래쪽에 넣고 부피를 생각해 가며 차곡차곡 꾸렸지만 이제는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쓰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청바지, 셔츠 등을 분류하여 가방 안쪽으로 넣었다. 가방이 1.5배는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 물건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장 시 늘 하던 대로 가방 지퍼마다 번호 자물쇠를 달아 열리지 않도록 단속하고, 공항에서 친구가 쥐어 준 곰돌이 젤리는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벨트의 작은 주머니에 따로 챙겨 넣었다. 이로써 스페인어로 순례자를 뜻하는 뻬레그리노(Peregrino)로 완벽히 변신할 준비가 끝났다. 누가 봐도 한눈에 뻬레그리노라고 알 수 있는 55리터(L)의 배낭과 등산복, 등산화로 무장하고 내일부터 치를 전쟁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끝난 셈이다. 삐딱한 바닥에 놓인 침대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 내일 일정을 생각해 본다.



기차를 한 번만 타고 가면 정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내일부터는 정말 순례자가 되는 건가?
순례자가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몸은 준비가 끝났지만 마음속은 복잡하다.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살짝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다. 이런 마음으로 이곳에 와도 되는 건지, 종교와는 상관없는 마음으로 종교인들의 성지순례 길을 걷는 것도 이상하고, 이렇게 누워있는 것 차체가 이상했다. 하지만 사는 게 뭐 다 이상한 거 아닌가? 로봇을 만들겠다던 꼬맹이가 돈이 될만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살아가고,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끌겠다던 수많은 꼬마들도 그저 다들 고만 고만하게 자기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실제의 삶이었다. 애초에 희망도, 꿈도, 열정도 필요 없었던 것처럼 사회라는 시스템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때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체의 부속으로 살며, 한 식구들 밥 먹고 살만큼씩만 평생 조금씩 조금씩 받아 배를 채우고 그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대다수 삶의 방식이 같았다. 그 안의 어디에서도 자기 자신은 없었다






아침 식사시간에 맞춰 벨이 울린다. 뻑뻑한 창문을 힘들게 열고 보니 청소차 한대가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그 주변으로 띄엄띄엄 사람들이 지나간다. 혹시나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식사를 마치자마자 급히 동네를 다시 한 바퀴 돌았다. 모든 상점의 문이 아직 굳게 닫혀있다. 이 사람들은 저녁에도 일찍 닫고, 아침에도 늦장이다. 소득이 없는데 생활은 어떻게 하는 걸까? 난 익숙한 한국인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삶 자체가 다른 것 인가? 낮에 활동하는 동물이 야행성 동물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아무 소득도 없이 아직은 어색한 등산 모자를 찾아 쓰고 조금 일찍 나서기로 했다.






기차는 소란스러웠다. 내 자리는 기차 칸의 중간에서 조금 뒤쪽에 있었고 그 뒤로는 스카우트복장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타고 있다. 목적지까지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프랑스어는 여행 내내 고막을 타고 들어와 나를 괴롭힌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으나 그 음표 사이를 또 비집고 들어온다. 그 소란과 함께 떠밀리듯 목적지인 생장피에드포트(ST. Jean pied de port)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두어 정거장 앞에서 모두 내렸지만 남아있는 소란과 분주함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매미가 울어대듯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