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기돈 크레머의 피아졸라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전환이 찾아온다.
기돈 크레머가 피아졸라를 연주한다는 사실.
처음엔 나도 믿기지 않았다.
열정과 격정의 음악을
차갑고 투명한 감수성을 지닌 연주자가 어떻게 해석할까.
탱고는 뜨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들어보면
그의 피아졸라는 ‘불꽃’이 아니라
불꽃의 그림자에서 피어난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격동과
한 개인의 망명과 고독을 품고 있다.
그의 탱고는
음악이라기보다
한 나라의 상처와 회한에 가까운 기록이다.
크래머는 그 상처를
불꽃처럼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상처가 지나간 자리의
온도와 질감을 조용히 드러낸다.
나는 그의 피아졸라 음반,
특히 Hommage à Piazzolla를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밤거리의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의 지난날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열정이 타오르기 직전의 침묵,
리듬이 꺼질 듯 말 듯 흔들리는 순간,
그 사이에 숨어 있던 고독이
유리잔처럼 투명하게 드러났다.
이건 분명 크래머만이 할 수 있는 피아졸라였다.
그는 뜨거운 감정을 밖으로 끌어내기보다
그 감정의 ‘심부’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사람이다.
탱고의 리듬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그 리듬 사이의 어두운 공간을
누구보다 명료하게 그려낸다.
크래머의 ‘고독의 미학’은
키스 자렛과 함께한 음반에서도 절정에 달한다.
재즈의 은둔자와
클래식의 방랑자.
두 사람이 만들어낸 소리는
장르의 선을 허물면서
더 본질적인 감정,
인간 존재의 고요한 부분에 닿아 있다.
나는 이 음반을 들을 때면
어떤 음악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말수가 적은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솔직해지는 순간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만큼 소중한 만남도 드물 것이다.
기돈 크레머의 음악은 늘
시대와 개인의 상처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는 스승의 따뜻한 서정에서 출발했지만
자신의 세계를
냉정한 투명함과 구조적 긴장으로 확장했다.
크레메라타 발티카에서는
동유럽의 집단적 기억과 젊은 세대의 감각을 엮어냈고,
피아졸라를 통해서는
열정의 그림자 속에 숨은 고독을 드러냈다.
키스 자렛과의 음악에서는
말보다 조용한 속삭임이 더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종종 생각한다.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은
결국 음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기억이라는 것을.
그리고 청자인 우리는
그들의 기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시 읽게 된다는 것을.
그 점에서 기돈 크레머는
내게 언제나 ‘생각하게 만드는 연주자’였다.
그의 서늘한 음색 속에는
따뜻함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한 인간의 진실한 흔적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