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트라흐라는 장, 하이페츠라는 기준
나는 오래전부터 대가들을 떠올릴 때면 ‘실력’이나 ‘위대함’보다 먼저 어떤 공간이 함께 떠오른다. 그 사람 곁에 서면 숨이 쉬어지는지, 아니면 숨을 죽이게 되는지. 그 차이가 결국 예술의 다음 장면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거장들은 모두 강한 중력을 지닌다. 그러나 그 중력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주변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또 어떤 이는 너무 강렬해서 혼자만의 별로 남는다. 둘 다 위대하지만, 남기는 흔적의 결은 다르다.
기돈 크래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라는 이름이 따라온다. 크래머의 차갑고 실험적인 해석, 때로는 서늘하다 못해 날카롭게 느껴지는 그 음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배경에는 늘 오이스트라흐라는 ‘장’이 있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언제나 중심이 단단했다. 그러나 그 중심은 권위로 굳어 있는 축이 아니라, 인간적인 온기가 남아 있는 균형이었다. 음색은 과시하지 않았고, 프레이징은 말하듯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명령이 없었다. 그 대신 ‘여기서 너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곁에 있던 젊은 연주자들은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었다. 크래머 역시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음색을 변주하고, 프레이징을 해체하고, 시간의 흐름을 비틀어도 중심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오이스트라흐가 이미 바닥을 단단히 다져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완성은 누군가의 가능성을 닫는 완성이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주는 완성이었다.
나는 오이스트라흐를 ‘훌륭한 스승’이라 부르기보다는 하나의 생태계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제자들과 영향을 받은 연주자들을 떠올려 보면 누구 하나 닮지 않았다. 크래머의 서늘한 지성, 크리사의 유려한 선율, 그의 아들이 보여준 온화한 해석까지. 공통점은 오이스트라흐를 흉내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초에 그는 모방될 수 없는 음악을 했고, 모방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음악은 언제나 개인의 고백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건넸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를 하라.” 그 말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이미 충분히 넓은 장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야사 하이페츠를 떠올리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하이페츠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절대적 기준이었다. 정확성, 속도, 음정, 기교, 음색.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20세기 바이올린 연주의 수학적 완성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완벽함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그 위에서는 아무도 자랄 수 없었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하이페츠는 영감이라기보다 비교의 대상이었고, 종종 절망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의 제자들조차 결국 하이페츠를 넘어서기 위해, 하이페츠와는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브라토를 줄이고, 리듬을 해체하고, 감성을 새롭게 해석하는 흐름은 하이페츠의 연장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하이페츠라는 거대한 산을 피해 새로운 대륙을 찾으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나는 하이페츠를 ‘닫힌 존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너무 밝아서 주변의 빛을 삼켜버린 별에 가까웠다. 위대했지만, 함께 머물 수 있는 중심은 아니었다. 오이스트라흐가 중심과 여백을 동시에 남겼다면, 하이페츠는 완성과 폐쇄를 동시에 남겼다.
그래서 두 사람의 영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오이스트라흐의 계보에서는 다양한 해석과 미학이 자연스럽게 확장되었고, 하이페츠의 계보에서는 그 기준을 넘어서는 반작용으로서의 혁신이 나타났다. 확장과 반작용, 둘 다 예술의 동력이다. 다만 예술을 더 멀리 데려가는 힘은 대체로 확장에서 나온다.
크래머는 이 두 힘을 모두 보았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에게서 그는 ‘장’을 경험했고, 하이페츠에게서는 ‘기준’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오이스트라흐의 품 안에서는 실험할 수 있었고, 하이페츠의 그림자에서는 벗어나야 했다. 이 긴장 관계가 오늘날의 크래머를 만들었다.
결국 예술사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당신은 기준인가, 아니면 장인가. 기준은 언젠가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고, 장은 그 안에서 무언가가 피어나기 위해 존재한다.
오이스트라흐와 하이페츠는 모두 위대했다. 그러나 예술을 확장시킨 쪽은 언제나 장을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오이스트라흐라는 이름 앞에서, 하나의 연주자가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