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라는 하나의 초상

아, 옛날이여

by 푸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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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쳇 베이커를 들으면
그 풋풋함이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것만 같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달콤함,
툭 건드리면 우수에 잠길 듯한 목소리,
부드러워서 오히려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그런 소리.



그의 노래는 어떤 면에서는 모성애를 자극한다.
지켜주고 싶고, 품어주고 싶고,
마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쓰다듬는 듯한 소리.
그래서인지 평전에서는 그를 두고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라고 했다.



그 말이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지만,
살아온 그의 생을 들여다보면
그 표현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다.



쳇에게 음악은 정말 마약을 사기 위한 도구였을까?
평전은 그렇게 기록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단정하고 싶지 않다.
어딘가 잘해보려고 하는 순간마다 무너졌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우연히 음악이라는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면?
그에게 음악은 생존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붙잡은 마지막 끈 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그이지만
사실 쳇은 이미 버드와 대등하게 연주한 경험도 있고,
루머처럼 악보를 평생 볼 줄 몰랐다는 말도,
기교가 부족해 높은 음을 못 질렀다는 말도
모두 그를 쉽게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많은 곡을 몸으로 기억해냈고,
좁은 다이내믹 속에서도 감정을 선명하게 표현한 연주를
우리는 지금까지 반복해서 듣는다.
이걸 기교가 부족했던 사람이 만들 수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그 좁은 틈 안에서 자신만의 울림을 만들어낸 능력,
그게 바로 그의 재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삶은 그에게 지나치게 가혹했다.
시비에 휘말려 앞니가 부러졌을 때,
그건 음악 인생의 종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점점 더 비틀리고 어두워졌지만
그 비틀림 속에서도 다시 트럼펫을 들었다.
쓰러져도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쳇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마약 소지로 구금되었을 때,
한 아름다운 여인이 문지방이 닳도록
옥바라지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사랑이 무엇이었든,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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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그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공연장 리허설에서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
입구에서 쫓겨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결국 시간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보여준 사람이다.



말년의 연주는,
그의 얼굴처럼
비장하고 쓸쓸했다.
빌리 홀리데이의 마지막 음성처럼
가늘지만 뼈에 사무치는 그런 소리.
마치 살아온 모든 길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작게 인사하는 듯한 음악이었다.



우리는 리즈 시절의 쳇 베이커를 그리워한다.
빛나던 청년,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트럼펫,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초상.
그러나 쳇은 이미 오래전부터
돌아갈 곳이 정해진 노인처럼
허무를 연주하며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 우리는 그를 다시 확인한다.
그 수많은 비극과 비화,
모른 척하고 싶은 그의 어두운 선택들,
그 모든 것들을 품은 채
우리는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듣는다.



누가 그가 이런 삶을 살았다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누가 그 천사의 목소리 뒤에
이토록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고 알았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말한다.

아, 옛날이여


그의 젊은 음색을 들을 때마다,
그의 맑고도 슬픈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쳇 베이커를 사랑하게 된다.
그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은 채로.



그래서 나는 이 초상을 두 곡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Sings(1954) 앨범에 실린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를 들으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속 젊은 청년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사랑 앞에서 아직 세상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얼굴,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반짝이는 그 시선.
쳇의 젊은 목소리는 그 청년처럼 맑고, 그래서 더 불안하다.
이 노래 속의 그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가능성 그 자체다.


그리고 1988년 The Last Great Concert에 남은 'All Blues'
이 곡에서의 쳇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음은 거칠고, 호흡은 짧으며, 트럼펫은 종종 비틀린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기교를 넘어선 노익장이 있다.
무너진 몸으로 끝까지 서 있으려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버팀의 소리.
젊음의 초상이 가능성이었다면, 이 연주는 살아남은 자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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