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의 음악노트 대가의 중력장(重力場) 외전2

중력 밖의 성역 — 아서 그뤼미오의 ‘투명한 화려함’

by 푸른책



그뤼미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묘한 평온에 잠기게 된다. 분명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탐스러운 소리가 흐르는데도, 그 어디에서도 연주자 개인의 욕심이나 과시는 감지되지 않는다. 화려함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상태. 그뤼미오의 연주가 지닌 가장 독특한 미덕은 바로 이 ‘투명한 화려함’에 있다.


오이스트라흐가 넓은 대지가 되어 후배들을 품고, 하이페츠가 도달 불가능한 태양처럼 군림하며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때, 그뤼미오는 그 거대한 중력의 충돌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끌어당겨 세력을 형성하는 장(場)이 되지도 않았고, 타인의 기를 눌러버리는 절대적 기준이 되려 하지도 않았다. 그가 택한 자리는 경쟁의 중심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거울 앞에 가장 조용히 서 있는 관찰자의 위치였다.


그뤼미오의 화려함은 덧칠한 색채가 아니다. 그것은 본연의 결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빛이다. 아주 잘 닦인 크리스털 잔에 맑은 물을 채웠을 때, 빛이 그 안을 통과하며 스스로 무늬를 만들어내듯, 그의 음색은 장식 없이도 충분히 풍요롭다. 그래서 그의 연주에는 긴장이 없다. 듣는 이를 압도하거나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저 활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장 고결한 형태의 아름다움 속에 도착해 있음을 알게 될 뿐이다.


이러한 ‘중력 없는 미학’은 그뤼미오를 어떤 계보에도 단단히 묶어두지 않았다. 하이페츠를 넘어서기 위해 분투하던 연주자들에게도, 오이스트라흐의 따스한 품 안에서 자라던 이들에게도 그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뤼미오는 비교의 축이 아니라, 기준 이전의 상태로 존재했다. 비가 내린 뒤의 맑은 공기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분명히 느껴지는 순수함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대가라는 이름 뒤에 따라붙기 쉬운 거대한 자아를 끝내 전면에 세우지 않았다. 누군가를 끌어당겨 키우는 힘도 위대하고, 절대적인 벽이 되어 한계를 밀어붙이는 힘도 분명 위대하다. 그러나 그 모든 인력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나의 성역으로 남는 존재 또한 예술이 허락한 또 다른 구원일 것이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음악. 그뤼미오의 연주는 그래서 유행을 타지 않는다. 언제 들어도 낡지 않고, 언제 마주해도 처음처럼 맑다. 중력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고독한 빛. 그 투명한 화려함 속에서, 바이올린은 다시 한 번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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