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함이 향기가 되기까지

존 콜트레인과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하여

by 푸른책

예술이라는 것은 결국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얼마나 오래 함께 견딜 수 있었는가의 기록이 아닐까.
누군가는 군중 속에서 힘을 얻고,
누군가는 고독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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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트레인과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게 태어난 이름들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대륙을 살았지만
이상할 만큼 닮아 있는 두 사람.
그들은 늘 시대의 중심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고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자기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더 정확히 듣기 위해,
눈앞에 스치는 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독할 만큼 집요했다.



우리는 흔히 그들의 삶을
고통과 광기의 서사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늘 어딘가 부족하다.
그들을 고통으로만 읽어버리는 순간,
예술이 태어난 결정적인 이유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도
그들에게는 분명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이 있었다.



반 고흐에게 그 순간은
아를의 봄날에 찾아왔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여긴 색이 노래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이든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바라기와 노란 집, 아몬드 나무를 그리던 그 시기,
삶은 여전히 궁핍했고
마음은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지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을 맛보았다.
우리가 그의 그림에서 느끼는 색의 진동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잠시 붙잡았던 행복의 흔적이다.



병상에서 그린 붓꽃 역시 마찬가지다.
그 그림에는 치유의 선언 대신

“그래도 나는 아직 그리고 싶다”는


연약하지만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다.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린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삶이 아직 손에 잡혔기 때문에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콜트레인도 다르지 않았다.
마약과 알코올을 끊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내 안에서 맑은 숨결을 느끼고 있어.”

그 숨결 속에서 태어난 음악이
〈A Love Supreme〉이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한 기도.
그 짧은 평온의 시간이
그의 음악에 영적인 깊이를 부여했다.



그래서 나는 콜트레인의 음악을 떠올릴 때
언제나 〈Giant Steps〉와 〈Dear Lord〉를 함께 생각한다.
〈Giant Steps〉에는
자기 한계를 끝까지 시험하던 젊은 콜트레인이 있다.
숨 돌릴 틈 없는 코드 위에서
그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따라잡으려 달리고 있다.
그곳에는 평온은 없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만은 지나치게 선명하다.



반면 〈Dear Lord〉에는
모든 싸움을 지나온 뒤의 콜트레인이 있다.
더 빨리 달릴 필요도,
더 증명할 이유도 사라진 사람의 호흡.
그 음들은 기도처럼 낮게 흐르며
지독함이 끝내 향기로 바뀌는 순간을 들려준다.



이 두 사람에게
행복은 결코 크거나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빛이 잠시 손에 잡히는 순간,
음색이 뜻대로 울려주는 순간,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마음을 느꼈던 순간.
그 아주 사소한 온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붓을 들고
다시 색소폰을 들었다.



고독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그 작은 행복이 얼마나 큰 힘이었을지는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예술은 고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고통과 고통 사이에서 발견한
아주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 사람이 끝까지 버텨낸 시간의 결과다.



콜트레인의 연주가 깊은 기도처럼 들리고
반 고흐의 색채가 뜨겁게 떨리는 이유는
그들이 슬펐기 때문이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건넸던
그 작은 행복의 조각들이
예술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희미한 빛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지독함은 그렇게
어느 날 문득 향기가 되고,
예술은 결국
한 사람이 발견한
작은 행복의 온도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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