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서양음악의 기원에서 오늘의 음악까지

서양음악의 기원: 말에서 노래로, 공동체에서 의례로

by 푸른책

서양음악의 역사는 놀랍게도 ‘음악’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시작한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감정을 나누기 위해, 공동체의 규칙을 세우기 위해 인간은 말의 억양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듬은 말을 안정시키는 장치였고, 선율은 감정을 길게 잡아두는 도구였다. 음악은 제도보다 먼저 존재했으며, 종교보다 오래되었다. 인간이 “함께 산다”는 조건이 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이 원초적 음악을 철학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문명이다. 피타고라스는 줄 길이의 비율이 음정의 조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는 단순한 음향을 넘어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는 은유로 사용되었다. 이후 플라톤은 음악을 국가 교육의 기초로 삼으며 질서·형식·조화를 강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을 모방, 감정, 서사를 설명하는 장치로 이해했다. 이렇게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형식(플라톤)과 표현(아리스토텔레스) 두 가지 축이 음악을 이론적으로 지탱하는 틀이 되었다.



이 사유는 훗날 교회음악의 형태와 서양 음악사의 흐름 전체에 깊게 스며들게 된다. 하지만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고대 사회의 음악은 이미 기억·전승·의례라는 세 가지 기능을 통해 ‘음악의 종교적 성격’을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전례가 등장할 무렵, 음악은 이미 공동체를 정렬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초대교회는 옛 유대교의 낭송 전통을 이어받아 시편을 부르고 답창을 나누었다. 이때의 음악은 ‘작곡된 작품’이라기보다 말과 노래의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음성적 의례에 가까웠다. 즉, 초기 기독교에서 음악은 예술보다 언어의 확장 형태였고, 예배의 본질에 깊게 결합된 감각적 행위였다.



중세가 시작되면서 음악은 전례 안에서 점차 형식화된다. 단선율 구조를 지닌 그레고리오 성가는 라틴어 전례를 통해 음악을 균일화·정규화·기록화했다. 음악은 처음으로 문자처럼 ‘정착’되기 시작했고, 성가대는 공동체를 대신해 노래하는 대표자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음악은 회중의 자발적 노래에서 벗어나 전문적, 제도적 층위를 가진 예술적 기능으로 이동했다.



르네상스 시대가 오면, 인간 중심의 감각이 음악에도 적용된다. 다성음악 폴리포니는 서로 다른 선율들이 대화처럼 얽히며 음악적 공간을 넓혔다. 음악은 단선이 아니라 구조와 조화의 예술로 재탄생한다. 이 시기 음악의 핵심은 ‘수학적 균형’과 ‘감각적 조화’가 만나는 지점이다. 인간적인 감정은 음악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형식은 여전히 중요했다. 즉, 플라톤적 질서와 아리스토텔레스적 감정이 자연스럽게 공존한 시대였다.

종교개혁은 음악의 지형을 크게 바꾼다. 루터는 회중이 직접 부르는 코랄을 도입했고, 칼뱅 전통에서는 시편을 모국어로 번역하여 노래했다. 이는 음악이 다시 공동체의 언어로 돌아오는 결정적 계기였다. 르네상스까지 발전한 음악적 기술이 회중의 언어와 결합하면서 예배는 한층 넓은 음악적 층위를 갖게 된다.



바로크 직전의 음악은 감정 표현이 뚜렷해지고, 선율과 베이스가 분명해지며,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같은 서사적 음악 형식이 자리 잡는다. 음악은 말의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을 ‘음악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모든 흐름을 한데 모아 정리해보면 이렇다.
서양음악의 기원은 인간의 말과 숨에서 시작되어, 기록과 제도를 통해 정착했고, 인간 중심의 미학을 거쳐 점점 더 풍부한 감정과 구조의 세계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이 모든 흐름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거대한 줄기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 지점이 바로 바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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