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서양음악의 기원에서 오늘의 음악까지

바흐에서 낭만주의까지: 음악 형식과 감정의 두 큰 강

by 푸른책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서양음악의 여러 강줄기가 하나의 거대한 하천으로 모여드는 지점에 존재한 인물이다. 루터교 전통에서 자라 코랄의 언어를 체득했고, 이탈리아의 화려한 선율, 프랑스의 춤곡 양식, 독일의 대위법적 사고를 모두 흡수했다. 한 인간이 동시대의 음악 언어를 이토록 광범위하고 깊게 통합한 경우는 드물다.



바흐의 음악은 철학적으로 보아도 흥미롭다. 그는 플라톤적 질서와 아리스토텔레스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푸가의 치밀한 구조는 수학적이며, 칸타타에서 텍스트를 해석해 내는 감정의 표현은 감각적이다. 바흐에게 구조와 표현은 서로 반대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확장시키는 두 축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형식과 감정이 동시에 극대화된다.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오면 음악은 점차 ‘형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정립한 소나타 형식은 음악이 언어적 의미와 결별하고 ‘자기완결적 논리’를 갖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이때 음악은 순수함을 획득했고, 절대음악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절대음악은 음악을 스스로의 구조 안에서 이해하려는 사유로, 플라톤적 질서의 정점을 이룬다.



낭만주의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베를리오즈와 리스트는 음악에 다시 이야기·서사·자연·감정 같은 외부 세계를 불러들였고, 교향시는 음악이 문학·철학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말러는 교향곡에 철학과 세계관까지 담았다. 이렇게 표제음악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음악관, 즉 음악을 인간 경험의 확장으로 보는 관점을 극대화한 양식이다.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대비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음악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였다.

절대음악은 음악의 의미가 ‘구조 안에 있다’고 보았다.

표제음악은 음악의 의미가 ‘경험 안에 있다’고 보았다.


이 두 흐름은 교회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 찬송가의 안정적 선율과 화성은 절대음악적 감각과 닮아 있고, 현대의 예배 음악은 낭만주의적·표제적 요소—개인의 감정, 서사, 정서적 고양—을 강하게 흡수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맞다”거나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서양음악은 애초에 이 두 축을 동시에 품고 발전해 왔고, 예배 음악도 그 흐름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바흐 이후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이 독립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서사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음악의 두 강줄기—형식과 감정—은 서로 다른 시기와 장르에서 번갈아 중심이 되었지만, 결국 20세기에 들어 이 두 사유는 음악교육철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3부에서는 바로 그 현대적 만남, 즉 리머와 엘리엇을 통해 다시 태어난 음악 철학이 어떻게 오늘의 음악까지 이어지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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