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질서를 연주할 줄 알았던 사람들
재즈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너무 빠른 장면으로 건너뛴다.
거리의 소음, 즉흥의 폭발, 규칙의 해체.
그러나 재즈가 태어나던 시절, 음악가들이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은 자유가 아니라 질서였다.
이 공간에는 어떤 소리가 필요한가.
그리고 그 소리는 어디까지 허락되는가.
세기가 바뀌던 무렵의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의 스토리빌.
이곳은 흔히 퇴폐의 상징처럼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스토리빌은 밤에만 열리는 음지의 세계가 아니라, 하루 종일 사람이 드나드는 합법적 상업 지구였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단순하지 않았다.
항구에 정박한 해군과 상선의 선원들,
미시시피 강을 따라 이동하던 상인과 세일즈맨들,
철도 노동자와 건설 인부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쓰러 온 중산층 남성들.
그들은 밤의 유흥만을 위해 이곳을 찾지 않았다.
낮에는 술잔을 앞에 두고 거래 이야기를 했고,
계약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낮의 스토리빌에서는
몸보다 말이 먼저 움직였다.
이런 공간에서 음악은
흥분을 유도하기보다 흐름을 관리해야 했다.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침묵을 어색하지 않게 채워야 했고,
공간 전체를 과도하게 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스토리빌에서는
모차르트가 연주되었다.
이 선택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였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사람을 몰입시키기보다 정리한다.
감정을 밀어 올리지 않고,
공간을 고르게 유지한다.
연주자는 주도권을 잃지 않은 채 소리를 배치할 수 있고,
손님은 음악을 의식하지 않아도 그 안에 머물 수 있다.
재즈의 출발점은 낭만이 아니라
공간을 읽는 능력이었다.
이 질서의 감각을
음악 안으로 가장 치밀하게 밀어 넣은 인물이 있다.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이다.
조플린은 랙타임을 유행으로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곡을 악보로 남겼고,
굳이 “천천히 연주하라”는 말을 적어 넣었다.
속도를 늦추면
이 음악이 얼마나 단단한 구조 위에 서 있는지가
드러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랙타임의 왼손은
지독할 만큼 성실하다.
낮은 음이 자리를 잡고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반복은
새롭게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래된 음악에서 이미 충분히 연습되어 온 방식이다.
낮은 음이 중심을 붙잡고,
그 위에서만 다른 움직임이 허락되는 구조.
바로크 음악을 떠올려 보면
이 감각은 낯설지 않다.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자리를 유지하며 흘러간다.
중심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 위에서만 장식이 움직인다.
중심이 무너지면
장식도 의미를 잃는다.
조플린의 오른손은
그 규칙을 깨뜨리지 않는다.
다만 정면으로 박자를 치지 않고
살짝 비켜간다.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르다.
이 어긋남은 반항이 아니다.
질서를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서를 살려두기 위한 장식에 가깝다.
완벽하게 반듯하지 않아서
오히려 생기를 갖는 음.
너무 매끈하지 않아
사람의 몸에 남는 소리.
보석처럼 닦여 있지 않고,
조금 찌그러져서
더 빛나는 진주 같은 음들.
랙타임은
질서 위에 얹힌 장식의 음악이었다.
그래서 조플린이 만든 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가 가능해지는 구조였다.
그의 음악은 아직 재즈가 아니지만,
재즈가 이후에도 끝내 버리지 않을
뼈대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이 구조를
현장에서 실제로 굴리고,
공간의 요구에 맞게 조정하며,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시험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제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이다.
모턴은
스토리빌에서 연주하며 살아남은 음악가였다.
그는 이 공간이
언제 질서를 요구하고,
언제 그 질서를 비틀기를 허락하는지를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재즈를 연주하려면
먼저 클래식 음악을 이해해야 한다고.
이 말은 교양의 선언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내려진
직업 음악가의 판단이었다.
모턴에게 모차르트는
존경의 대상이기 전에 도구였다.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들고,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연주자가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해주는 음악.
그래서 낮에는
질서가 필요했고,
밤이 되면
그 질서를 조금 더 밀 수 있었다.
모차르트에서 랙타임으로의 이동은
격하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바로크에서 장식이 허락되듯,
랙타임에서도 어긋남은
중심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했다.
모턴은
조플린이 악보 위에 고정해 놓은 구조를
현장에서 풀어냈다.
어디까지 흔들어도 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사람들의 몸과 시선에서 읽었다.
그에게 재즈는
이론이 아니라 운용의 문제였다.
질서를 알고 있었기에
질서를 벗어날 수 있었고,
중심을 붙잡고 있었기에
장식은 더 과감해질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재즈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준비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질서를 끝까지 밀어 붙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질서를 현장에서 흔들었다.
바로크와 랙타임이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이면서도
같은 질문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스토리빌에서
모차르트가 연주되었기에
랙타임은 구조를 가질 수 있었고,
그 구조 위에서
재즈는 비틀릴 수 있었다.
재즈는
무질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질서를 연주할 줄 알았던 사람들에 의해,
아주 조심스럽게 준비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질서가 실내를 벗어나
거리로 나가는 순간을 따라간다.
행진과 퍼레이드,
브라스밴드의 리듬 속에서
재즈는
혼자가 아닌 소리를 배우게 된다.
질서는 이제
더 이상 실내에만 머물 수 없게 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