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Richter와 보낸 밤
막스 리히터와의 첫 만남은 영화 〈미스 슬로운〉의 음악, 그리고 유명한 〈On the Nature of Daylight〉가 아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On Reflection〉을 통해서였다. 저음이 아름답게 공명하는 스피커를 테스트하던 순간이었는데, 그 잔잔한 현의 파동이 방 안의 공기를 아주 미세하게 흔드는 감각이 선명했다.
한동안 깊게 잠들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머릿속 소음이 잦아들지 않고, 몸조차 어디 편히 기대지 못하던 때. 그 무렵 리히터의 〈Sleep〉을 만났다. ‘잠을 위한 음악’이라지만, 내게는 인간의 내면을 천천히 가라앉히는 일종의 의식(ritual)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그의 음악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느린 호흡 속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요즘도 가끔 잠들기 힘든 날이면 어김없이 그 앨범을 떠올린다. 사람의 수면 주기에 맞춘 긴 러닝 타임 덕분에,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우주의 한 부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독하고 조용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기분. 공포스러운 꿈을 꾸지 않고 단잠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온전히 의식의 흐름을 맡긴 채 잠에 들길 소망해 본다.
밤이 깊어 고요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순간이면,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바로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