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거시적 선진국이나, 미시적으론 후진국

by 정영효

한국은 거시적 선진국이나, 미시적으론 후진국


정영효 경남일보 논설위원/진주 드림부동산 대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의 미세한 차이가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대전환, 대격변의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의 위치는 어띠쯤 있을까. 거시적으로 보자. 정치적으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민주주의를 구축한 나라로 부러움을 산다. 하나 1990년대 이전까지는 민주주의 흑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였다. 1945년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한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독재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광복 이후 반세기에 가깝게 독재세력와 군부세력이 나라를 통치했다. 그렇지만 민주화 열망이 강했던 국민은 1960년 3·15의거와 4·19 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10 민주항쟁 등 수차례에 걸친 민주화운동을 통해 독재와 군부세력를 몰아냈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내기까지는 근 50년이 걸렸다.


경제적으로는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그렇지만 1960년대 들어 경공업으로 시작한 산업화 정책이 세계 경제 변혁에 맞춰 중공업 중심으로 변화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이어 정보화시대(IT)를 맞게 되자 발빠른 변화로 2022년에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가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2024년 기준 한국 GDP(국내총생산)은 세계 12위,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 군사력(재래무기 기준) 세계 6위, 국방비 세계 8위다.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에는 7번째로 진입했다. 경제 선진국이다. 문화적으로도 세계 무대에서 K-팝과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노벨문학상 수상 등 K-문학, 심지어 K-푸드·K-패션까지 확대되면서 K-컬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한국이 선진 강대국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한국은 여전힌 암울하다. 서서히 가라않는 배 같다.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임에도 정치인들의 정치 수준은 후진국 수준이다. 정치가 갈수록 퇴행되고 있다. 후진정치의 표본인 정쟁과 구태는 그대로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사례만 무려 3번이고, 2번은 대통령이 파면됐다. 국회는 여야 간에 싸움터가 됐다. 소통과 협치는 실종됐다. 국민들은 극단적 진영논리에 갇힌 채 갈등과 대립을 넘어 적대적이다.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된 상태다. 경제적으로도 저성장이 고착화됐다. 잠재성장률이 올해에는 0%대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장기적인 내수경기 침체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은 빚만 잔뜩 안은 채 이미 고사된 상태다. 경제적 양극화가 갈수록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사회적 불안은 더 심화된다. 범죄는 더 잔혹해지고, 강력화된다. 사고와 사건, 재난은 더 대형화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공권력은 예방은 고사하고, 대처에도 무기력하다. 국민의 안전불감증도 여전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나라라는 불명예와 함께 자살율 세계 1위, 높은 노인 빈곤율, 가짜뉴스 생산 세계 2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더 심각해지는 불균형, 더 치열해지는 경쟁, 추락하는 행복 순위 등을 보면 영락없이 후진국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한국을 헬조선(한국 사회를 지옥에 비유하며 희망이 없는 곳으로 여기는 신조어)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거시적으로는 선진국이나, 미시적으로 보면 후진국과 다를 바가 없는 한국. 잘나가는 한국, 그 이면에는 국민이 행복해 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는 결코 진정한 선진 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물질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 성장과 정치·경제·사회적 안전망 확충도 병행돼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 주요인이다. 지도자층과 국민 개개인이 거시적인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시적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해결해 나갈 때 한국은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진정한 선진 강대국이 될 수 있다./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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