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이론
우리 모두, 누구나에게 우리가 무시하고 회피하고픈, '그림자'가 있다.
-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그림자(Shadow)는 물체나 사람이 빛을 가릴 때 사람이나 물체 뒤의 어두운 실제 실루엣을 말한다. 또한 근심, 걱정 등으로 인해 어두워진 마음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융(Jung)은 그림자를 보면서 심리학 이론을 탄생시키게 되는데 '자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면서 '자아와 비슷한 것 같지만 열등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 사람의 그림자라고 했다.
그림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알아가는 과정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지만 아직 인지하지 못한 인격을 알게 됨으로써 더욱 성장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융이 주장한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는 영역이 바로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한 사람이 한 층 더 성장해 가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이 거북하고 불편하다 하여 피하고 싶어 한걸음에 도망치고 싶겠지만 겁먹지 말고 그림자를 대면해도 좋다. 이 그림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자기실현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림자는 무의식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무의식은 뭔가 음산하고 아득한 그림자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대로 비치고 있는 빛의 근원을 찾게 된다. 융이 말하는 전체성은 늘 양면을 통해 드러난다고 본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던 우리는 어쩌면 그림자놀이를 예전부터 해왔을 것이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심리적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 또한 함께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림자가 있다는 말은 빛이 있다는 말과 같기에 열등한 그림자가 말하는 것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밝은 부분 즉, 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빛의 근원을 말하는 것과 같다.
살다 보면 오해 사는 일이 많다. 오해를 하는 입장도 불편하지만 오해를 받는 다면 그 마음 또한 편할리 없다. 이러한 오해는 무의식을 투사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 곁에 늘 함께 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 친구관계에서도 그림자 투사가 나타난다. 이러한 투사로 인해 관계 속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그림자 투사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알게 된다면 자신이 관계 속에서 느끼는 불편감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그림자가 '나 여기 있어'라고 힌트를 주는 경우가 있다. 타인에게 있는 것 중에 자신을 혹하게 하거나 엄청나게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을 주는 것은 자신 안에 그림자가 있다는 단서이다. 그림자 특성상 타인에게 투사되기 마련이고 그림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왠지 모를 불편감, 혐오감으로 다가와 상대방을 향해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건강한 그림자라면 오히려 존경심이나 부러움으로 표현될 텐데 말이다. 그림자는 타인을 향한 투사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에 직접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높은 도덕성을 자부하는 A 씨는 바람피우는 드라마 장면이 나오기만 하면 화를 낸다.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의 쾌락적 삶이 이해가 안 된다는 이유다. 그러나 여기에서 드러나는 A 씨의 그림자는 '나도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어'라는 무의식이 숨겨져 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 사회적인 잣대를 두려워한 나머지 감히 그런 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 뿐이다. 이런 경우 내가 타인에게 나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경우이다.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는 사람만 보면 기분이 언짢다면 이 또한 그림자가 투사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타인이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적할 수 있다면 대적하지만 할 수 없다면 도망가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학대 수준에 이르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경우 '나는 더 이상 너에게 당하지 않을 거야'라는 단호함으로 멀리해야 한다.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려 하거나 상대방의 변병을 들어주다가는 상대방이 걸어오는 그림자놀이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심리게임은 지속할 필요가 없다.
그림자의 정체를 인식하고 의식화된 통합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간과하며 살아간다. 때문에 자신은 타인에게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고 자신만의 욕심이나 쾌락 정도는 잘 조절하며 산다고 착각한다. '이만하면 됐지'라는 생각은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철저히 숨기게 되는 한편 드러나는 것은 이해심 많고, 공감과 배려가 많은 친절함 등이다.
그림자는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이 겪은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나는 참 정신이 약해 빠졌어'라며 자신을 나무라는 경우가 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혹독한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자책하는 경우이다. 트라우마 사건 후유증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정신이 약하다는 것으로 결론지을 일만은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 내가 겪은 상처를 제대로 살펴보다 보면 고통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반가운 일이다.
이처럼 그림자를 통해 나타나는 것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성숙을 위해서는 그림자의 전체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진정한 빛을 보는 것이다. 결코 어느 한 부분만 존재할 수 없기에 양면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가 바람직하다. 나에게 열등한 기능이 있으면 우월한 기능도 함께 있다. 그러니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 것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 나의 그림자가 주는 단서를 알아채고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통로로 활용해야 한다. 그림자의 전체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기 수용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있는 이기적인 마음, 도덕적이지 못한 사고, 용납하기 어려운 그 무엇들이 내 안에도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또한 내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럴 수 있지 뭐'라는 관대함으로 나와 타인을 너그럽게 봐주는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 우리의 삶이 패배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부족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한다면 더 이상 약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