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라는 말이 있다.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네' '일반인 코스프레하네'라는 말의 경우, 어떤 대상에게 ~ 인 척 보이려는 행동을 묘사해주는 표현이다. 코스프레는 1970년대에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코스프레는 의상을 뜻하는 costume과 놀이의 play를 합성한 단어로서 쉽게 말하자면 '따라서 한다. '모방한다' 정도의 의미이다.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이 될법한데 부정적인 말로 더 자주 사용되는 듯하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나는 어차피 안될 거 같은데'라며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하기 싫어'라는 주문을 거는 격이다. 이러한 부정적 내적 언어가 시작되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될뿐더러,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침습된 생각에 결국엔 시도도 못한 채 포기하게 된다. 요즘 세대들의 대화를 관찰하다 보면 극단적인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망했다. 망했어'라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망했다는 말을 대화의 말미에 넣어서 완성하는 모습을 보며 '듣기만 해도 정말 망한 기분이 든다. 망한 거 맞는 거 같다. 망했다고 말하는데 될 리 있어?'라는 생각이 든다. 망했다는 말이 습관적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 자체가 빨라서 적응하기 버거울뿐더러,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화풀이하듯 뱉어내는 것 같다. 수많은 자격증 준비, 시험, 평가 등 쉴 새 없이 증명해야 하는 인증과 정도 한 한몫한다. 심지어 디지털 시대의 인증도 필수적이다. 어플 하나 깔아도 클릭 몇십 번을 통해 인증해야 하고, 이러한 인증과정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내가 정말 나 맞다구요'라는 게 사실로 증명하는 과정은 다방면에서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애정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당연한 욕구이지만 이 당연함이 올무가 되어 사랑받지 않은 나를 인증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 불안할 때도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나를 정성껏 돌봐주지 않았거나, 오히려 상처받은 경험이 쌓인 경우 '부모의 사랑을 받은 나'의 인증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모도 나를 함부로 여겼는데 뭘...' '내 어릴 적 환경이 좋지 않아서...'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떤 일, 또는 어떤 관계를 시작할 때 발목이 잡히게 된다.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목을 내어준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즉,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겁부터 먹게 되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가풍에서 자란 사람은 패배자 코스프레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게 된다. 지금 자신이 처한 좋지 못한 상황에 대한 원인을 부모에게 두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코스프레의 역공이 일어나게 된다. 자녀를 양육할 때면 '나는 절대 엄마처럼 내 아이를 안 키울 거야' '나는 절대 그렇게 안 살 거야'라는 다짐을 하게 되어 오히려 균형을 잃고 만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막연한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자리 잡아 건강한 부모가 되는 데 방해가 된다.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에 사로잡히다 보면 지나치게 허용적이 되거나, 지나치게 애만 쓰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오래가다 보면 결국 지치게 되고 자녀에게 부담스러운 부모가 되는 게 당연하다. 자신을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단정을 짓고 시작하면 당연히 그 정도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나는 해 낼 수 있어'라고 확신을 갖고 시작해도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말지 확신이 서지 않는 마당에, 부정적인 망언을 앞세워 일을 시작한다면 과연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목표로 가는 과정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도사라고 있다.
패배자 코스프레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별거 아닌 스트레스임에도 불구하고 '힘들어'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이 일을 해내야 해?'라는 부정적 언어에 노예가 되고 만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좌절의 순간이 오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임을 절감하는 순간들이 너무도 많다. 이런 절망적 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패배자 코스프레를 과감히 사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인증을 요하는 삶에서 자신감을 잃은 채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코스프레가 아니라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파국화(Catastrophizing)는 흔히 재앙화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재앙화라는 단어는 인지치료학자 아론 벡(Aron beck)의 인지치료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본 글에서는 파국화와 재앙화를 혼용해서 사용하겠다). 그가 말한 인지적 왜곡 중 하나인 재앙화를 통해서 개인 스스로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재앙화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과해 석함으로써 최악의 결과를 예단하는 것인데 오랫동안 누적된 무기력에 의해서 오기도 한다.
이러한 재앙화는 주식투자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주식시장이 안 좋을 때마다 지나친 공포에 사로잡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이다. 주식투자를 통해 자산을 증식해야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시작한 사람은 시장의 원리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간과하게 된다. 시장의 변동성 속에 자신의 계좌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이러한 재앙화 사고는 더 좋은 투자기회를 놓치게 되고 투자에 대한 자신을 '실패자'로 낙인찍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다른 예로, 통증 파국화의 경우가 있다. '통증 파국화'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고통과 아픔을 과해 석하여 자신의 통증에 대한 태도를 무력하게 하고 통증에 집착하게 한다는 것이다. 통증에 대해 지나치게 두렵게 생각한다던가 '결국 나는 이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더 심한 질병이 발생할 거야'라는 생각에 정상적으로 기능했던 생활의 균형이 깨져간다.
재앙화는 실제적, 합리적, 논리적인 사고가 아니기에 망상에 가깝다. 이러한 재앙화의 올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여기에서 일어난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여기로부터 벗어난 생각,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당장 '멈춰'라고 외쳐야 한다.
모든 해결책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다. 패배자적 사고는 모든 해결책이 내가 아닌 타인, 환경에 의해서라는 무책임에서 비롯된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어깨가 무겁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에 차라리 파국적인 생각을 함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책임지는 일은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지나친 사고가 '내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일이야'라는 오해석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모든'이라는 단어 대신 '가끔' '할 수만 있다면'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나는 책임지고 싶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책임을 질 수도 있고 못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책임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책임감에 대한 무게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무게로 만들어야 한다.
뭔가를 새롭게 계획하는 순간 좋은 것만 오지 않는다. 기대감도 오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오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못 본 적, 내 감정이 아닌 척 구석에 밀어놓아서는 안된다. '내가 지금 실패할까 봐 걱정하고 있구나, 그럴 수 있지. 나도 두려울 수 있어. 당연한 거야'라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주자.
'패배자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패배자 코스프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다.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한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지금-여기의 장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은 그 누구 때문에도 아니고 바로 나로 인해 재창조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더라도 적어도 나만은 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