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마음자리 08화

마음자리

안전하다 여겨지는 곳이 있나요?

by 한꽂쌤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여기에서의 자리란 공간이나 장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권리를 주장할 때,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마땅히 자격을 얻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다. 이러한 공간에 한 사람의 지식이 녹아들면 지식이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게 될 것이고 한 사람의 마음이 자리 잡으면 마음이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꼼짝없이 땅바닥에 자리를 잡고 목숨 다하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 풀도 생존본능이 있다. 배수환 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살아야 할 하는 풀들은 대부분 갈대처럼 키가 큰 식물들이다. 키가 작은 풀이 그러한 환경에 자리를 잡게 되면 낭패를 당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수분이 적고 마른땅에선 키가 작은 풀들이 자리를 튼다. 무더운 여름 땡볕과 가뭄이 있더라도 쑥쑥 자라는 풀들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원리이다.


고통이 오는 것도 참 신기하다. 바쁘게 살며 정신없이 살아대던 시절에는 아프지 않던 몸이 정년 퇴임하거나 잠시 휴직하기라도 하면 뜻하지 않게 질병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명절이 되면 지방에 있는 시댁에 내려가곤 했다. 특히 설날은 1년마다 맞는 명절인데 1년에 한 번 명절용 고통이 남편에게는 있었다. 설 연휴 시작되기 2-3일 전부터 슬슬 몸살기가 시작되면서 시어머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내려가면 이내 앓아누웠다. 오한을 느끼고 장염이 생기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반복된 명절앓이 징크스는 우리 부부에게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여보, 이번에도 몸 아플 준비 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그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보, 당신도 당신의 엄마를 보러 가니까 몸이 아픈 거 아냐?'


본인도 이 말에 공감이 되는지 웃으면서 '그러게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라고 하며 내 생각에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다. 남편의 설날 앓이는 해년마다 반복되곤 했는데 아픈 남편을 볼 때마다 '아! 저 사람도 엄마 옆에서 쉬고 싶구나'라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남편에게 찾아온 설 앓이는 몸으로 찾아온 고통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 고통이 마음으로 온 게 된다면 어떨까.


마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 누울 자리를 제때에 찾은 마음은 긴장을 풀고 안락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울 자리를 찾지 못한 마음은 그 어디에도 마음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지쳐서 아무 데나 엉성하게 앉아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울 자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내 마음에 최적화된 크기와 넓이가 있는데 내가 못 잦는 경우라면 어떨까? 마음 자리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 공간이 나에게 안전함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확신이 들어야 한다.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그 느낌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안전해야 그 사람은 그 공간에 마음을 내려놓고 '휴....' 긴장을 내려놓고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그러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가능할까?


또 다른 경우, 다른 사람 눈에는 분명히 누워도 될 것 같은데 눕지 못하고 전전긍긍 힘겨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당신 눈앞에는 지금 당신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얼른 자세히 이리 와서 봐봐요. 당신만 못 보고 있어요'라며 답답함을 토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권유에도 어정쩡한 모습으로 눈치만 보고 있는 그 사람을 보게 된다면 재촉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다. 그 사람이 그 공간이 자신의 마음공간으로 삼을지 말지 생각해보고 가늠해볼 시간을 주어야 한다.


어떤 이는 '저곳이 바로 내 마음을 내려놓을 마음공간이구나'하고 생각하고 덥석 자리를 잡았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었고 연인을 믿었고, 심지어 부모나 가족들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에 철저히 배신당했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마음공간을 발견했더라도 단번에 자리를 틀지 못한다. 자기 꺼라고 우기지도 못한다. '과연 괜찮을까?, 이번에는 정말 상처받지 않을까?'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마음공간의 안전성을 타진하게 될 것이다.


아기는 어릴 적에 엄마품이 자리였다. 몸을 누울 자리, 마음을 누울 자리, 아주 완벽했다. 적절한 온도와 적절한 향기가 제공됨은 물론 아기가 뭘 원하는지 눈빛만 봐도 알아채는 엄마가 자리였다.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된 지금 그 자리는 어디일까? 자신이 아기였을 때 몸과 마음을 뉘었던 그 공간은 이제 없다. 그럼 어디에....


마음이 지치고 곤하다 하여 아무 데나 누우면 안 된다. 주위 사정을 간과하다가 마음 도둑이 들 수도 있고 '여기는 너의 자리가 아니다'라며 힘센 사람에게 쫓겨날 수도 있다. 내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사람도, 내 마음을 함부로 휘두르는 사람은 도처에 깔려 있다. 내가 안전하게 기대어 뉘일 수 있는 마음자리는 안전해야 한다. 남들이 함부로 침입하지 않고 내가 나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안전함이 제공되어야 한다. 늘 조심, 또 조심하자.


정신분석가이면서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의 애착 이론 중 '안전 기지'라는 개념이 있다. 생존에 취약한 아가가 엄마(주양육자)가 안전 기지 역할을 해줌으로써 안전한 돌봄을 받을 수 있었듯이 어른에게도 안전 기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안전 기지가 없는 사람은 불안하거나 긴장 속에서 사는 삶의 연속일 것이다. 거절을 잘 못한다거나, 사소한 지적에도 심하게 상처받는다거나 자신의 존재를 가치롭게 여기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안전 기지의 확보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존재의 안위를 위해 중요한 공간이다. 안전 기지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의 모습 그대로 머물로도 좋은 환경일 수도 있다.


안전한 마음자리(공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의심이 생긴다면 조금은 용기를 내보기를 바란다. 반대로 안전한 마음자리를 찾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찾아보면 된다. 주변 사람들, 주변 환경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잠깐의 명상을 해도 좋다. 더 소소하게는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등 자연이 자신에게 아낌없이 주는 모든 것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거저 준다는데 안 받을 리 없다).


그리고 좀 더 인심을 후하게 써본다면 그러한 마음자리 한편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주면 어떨까? 담소가 깃든 한 끼 식사, 재잘거림이 어우러진 커피 한잔이어도 좋다. 당신이 건네는 체온이 묻은 악수여도 좋고 당신이 건네는 따뜻한 미소여도 좋다. 당신이 보내는 너그러운 말 한마디, 여유 있고 다정한 제스처..... 그 무엇도 괜찮다.


오늘 이 시간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안전한 마음자리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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