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내가 한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실수한 건 없는지 전전긍긍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반추(反芻, Rumination)는 본디 반추위(反芻胃)를 가진 소나 염소 등이 한 번 삼킨 먹이를 게워내어 되새기는 일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고 생각하는 의미로 쓰인다. 되새김 행동을 통해 소와 염소는 한 번에 소화하지 못하는 식물성 먹이를 잘게 부수고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몸속 영양분으로 흡수한다. 사람에게 있어 반추적 행위는 자신이 했던 일들은 곱씹어보면서 잘했는지, 못했는지의 잣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잣대는 차후에 다시 실수하는 일을 없애는 기능이 있고 기존의 역량을 한 층 더 강화시키는 역할이 되겠지만 너무 지나게 반추 사고가 이뤄진다면 일상생활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삶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뜻밖의 어려움에 당황한 경험이 있게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일이 생겨도 다시 툭툭 털고 자신의 삶에 복귀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이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과거 자신이 경험한 그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심리적 상처로 인해 삶은 무너질 것 같은 것을 외상이라고 부른다. 일명 '트라우마(Trauma)'다.
외상을 경험한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의 후유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오히려 외상 전 경험보다 더 긍정적인 성장이 일어났다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와 '외상 후 성장'의 의미가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외상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성숙한 상태가 됨을 말한다. 외상 경험이 주는 특혜일까? 같은 경험을 하고도 늘 부정적인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괄목할만하다.
이렇게 되면 외상 경험을 한 이후에 오히려 성장한다는 말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심리학자들의 다양한 연구에서 보면 그 원인 중 하나가 반추(Rumination)라는 사실이다. 반추의 역할은 재구성이다. 외상을 경험한 개인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이 가진 기존의 사고, 가치관, 행동 패턴 등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라 하겠다.
이러한 반추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자동적(침습적)인 반추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 반추이다. 자동적 반추는 외상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심리와 관련이 있고 의도적 반추는 외상 경험 이후의 성장과 연관이 있지만 두 가지 모두 간과해서는 안된다. 외상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생활을 살다가도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침습 사고로 인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러한 자동적 반추 사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답을 얻고자 의식적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반추 작업이 의도적 반추로 이어진다. 자동적 반추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고통이 크다는 것을 말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개인의 욕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고통스러운 내적 질문이 외상 후 성장으로 가는 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외상 이후 성장을 위해 개인은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는 노력, 이 일이 일어난 이유와 의미를 가지려는 노력, 이 일이 일어나게끔 만든 대상과 상황에 대한 분노와 처벌 등 외상 경험을 극복하기 위한 한 사람의 노력은 처절하다.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행위 자체는 옳지 않다. 단기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얼마 못 가서 그 바닥이 드러나 고통 속에 떨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고만이 해결책인양 촉진시키려는 시도가 오히려 일시적 위로에 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는 안된다.
외상 경험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스트레스는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를 느낄 때 오는 부담감'이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결단을 내리며, 스트레스의 근원을 관리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 이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거나 자신이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는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자원이 많을수록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지 또한 많아진다.
반추는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의 재발 원인이기도 해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반추는 자신이 했던 행동이나 말을 오랫동안 곱씹어 보다가 부정적인 사고로 마감되기 때문에 처음에 작아 보이던 것이 마침내 큰 산더미로 확대된다. 그러나 반추의 원래 목적은 본래 상처가 된 경험으로부터의 치유를 위한 시도의 첫걸음이다. 외상 후 성장을 위해서는 소가 먹이를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외상의 경험을 신중하게 다루는 성장을 향한 반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고통의 과정이기에 반추를 그만두고 환경 도피를 선택하고 싶게 한다.
과거의 반추는 상처 경험에 대해 들추는 행위라는 인식으로 인해 직면하고 싶지 않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때문에 반추를 줄여야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을 위한 반추는 오히려 힘들고 마주하기 싫은 문제에 맞닥뜨리게 하여 개인의 삶에 안정적 기능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이 시간을 빌어 반추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고 '제대로 봐야 한다면 기꺼이 보는 용기'를 가져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