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하다.
어떤 사람이 누구보다 글을 잘 쓴다면 그만이 갖고 있는 독창성이 있기 때문이다. 독창성이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한 개인의 사적 영역이다. 사적 영역을 나는 비밀의 영역으로 말하고 싶다. 비단 글을 잘 쓰는 사람뿐 아니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도 어찌 보면 모두 각자의 비밀이 존중될 때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비밀은 공간이다. 나와 네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산뜻한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비밀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은 '대중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그 무엇을 감추려 하는 행우'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용납받기 어려운 수준의 정도는 비밀의 주인만이 정할 수 있다. 용납되기 어려운 그 무엇은 은밀하고 응큼하고 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비밀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 제17조에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기업비밀, 영업비밀, 국가기밀, 정보 비밀 등 다양한 비밀이 있다. 만약 기업비밀이 유출되면 어떻게 되겠느가? 한 기업의 존패가 결정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국가기밀이 드러나면 어떻겠는가? 이 또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이처럼 덩치가 큰 비밀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자그마한 비밀도 많다.
비밀이 노출되면 불쾌하기 그지없다. 불쾌는 내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서의 욕구를 침범당함으로 생기는 정서이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묻는다.
어내: "OO아 오늘 몇 시에 들어올 거야?"
남편: <불쾌한 표정으로> 내가 알아서 들어올 테니 좀 물어보지 마.
단순히 몇 시에 들어오느냐고 묻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이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남편의 심리: 내가 뭐 어린앤가? 왜 자꾸 체크해
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여유 있게 들어오고 싶어
이 외에도 다양한 심리적인 욕구가 있겠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일정을 체크하고 간섭하는 행위 자체로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자아에 눈뜨는 시기인 청소년 자녀들은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싶어 한다. 어린아이가 엄마 옆에서 자겠다고 하던 아이가 혼자서 자겠다고 한다. 자기 방이 필요 없던 아이가 내 방을 달라고 한다. 문을 닫지 않고도 잘 지내던 아이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안에서 문을 잠그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자기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딸깍'소리를 내며 문을 잠근다.
"얘! 거기서 뭐하니. 답답하니까 문 좀 열어놓고 살아"
방 안에서 뭘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님에도 엄마는 자꾸 묻는다. 그저 아이는 사적 영역을 지키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사적 영역을 침범당하는 기분은 내가 하루하루 비밀스럽게 쓴 일기를 누군가 읽어버린 느낌과도 같다. 그 일기장 내용 안에 누군가가 읽으면 큰일 나는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무단 침입자를 즉결 처단하고 싶은 마음이 활활 타오른다.
영아기의 아이들도 자기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구석에서 소꿉놀이를 한다든지 칸막이 뒤에서 놀이를 한다든지 할 수만 있으면 누가 보지 않는데서 놀이를 즐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 그러나 비단 어린아이만 이런 심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친한 친구사이라고 해서, 연인관계라고 해서, 부부 사이라 해서 비밀을 없애면 안 된다. 가끔 SNS 계정을 공유하거나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우리는 숨기는 게 없는 관계'라는 자부심을 갖는 관계는 얼마 못 가서 일그러질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사람은 자기만의 비밀을 갖기 원한다.
남편의 SNS 계정을 넘나들며 프로필 사진, 프로필 인사말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아내가 있다.
아내: 그냥 뭐 부부인데 같이 공유하면 어때요
남편: 뭐... 달갑지는 않지만 그냥 놔두고 있어요. 어차피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텐데요 뭘
남편은 아내의 비밀의 공간 침입에 대해 무덤덤해진 지 오래이다. 그들의 잦은 갈등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사적 공간의 불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우 '서로의 계정에 터치하지 말기'를 처방함으로써 사적 공간을 분리하는 미션이 필요하다.
비밀 공간을 충분히 공감해 준 엄마를 둔 아이는 자신의 은밀한 부분까지 존중받은 경험을 한다. '어린애가 무슨 비밀 타령이야'라는 태도로 아이의 비밀공간을 하찮게 여기는 엄마라면 반성해야 한다. 아이는 비밀공간을 침범당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도 침범당했기 때문이다. 비밀을 허락받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타인에게 간섭받는 것에 불쾌함을 느낀다. 상대방은 별 뜻 없이 물어본 말인데도 당사자는 언짢다. 자신을 나무란다는 불쾌한 느낌은 어릴 적 무시당했던 바로 그 느낌과 오버랩된 것이다.
간섭받는 것에 있어서 유난히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은 어릴 적 자신의 사적 영역(물리적, 심리적)을 침범당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기 이해과정을 통해 타인의 사소한 말에 지나치게 예민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별 뜻 없이 하는 말은 별 뜻 없이 받아들여도 좋다. 상대방은 '별 뜻 없이 하는 말이야'라고 하는데도 자꾸만 의미부여를 하려는 자신을 인지했다면 '내가 어릴 때 비슷한 경험에서 수용받지 못했구나'라며 되돌아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