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by 한꽂쌤

한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이해 받음으로써 한 사람과 연결이 되고, 타인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이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연결감이 상실된 경우 조용히 후퇴한다. 그 관계를 계속 유지했을 경우 자신이 상처를 입든 상대방이 상처를 입든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개인은 조용히 문을 닫아걸고 살기도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경험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입장에서 나를 알아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내가 어떤 느낌인지,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이해이며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공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같이 집중해주고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주는 마음이다.


'내가 이해받고 있구나'


이해받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하는 어떤 몸짓, 마음 짓에 함께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고 어떠한 마음을 먹었고 어떠한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 이 모든 것들에 있어서 틀렸다고 하지 않고 '타당하다' 말해주는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은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내 부모, 가족, 친구, 연인, 스치고 지나는 그 누구도 가능하다.


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나의 과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말을 할 때도, 내가 침묵을 지킬 때도 내 무엇을 민감하게 감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위한 온전한 이해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에 대한 온전함으로 다가온다. 온전한 이해를 통해 한 사람은 안전감을 경험한다. 안전감이 들면 사람은 그 무엇을 새롭게 도전해볼 용기를 낼 수 있다. 새로운 그 무엇에서도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신뢰하기에 가능하다.


사람들은 늘 두려워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선뜻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기에 섣불리 자신을 내 어보 일 수 없다. 사람은 안전감 안에 머물 때 비로소 두려워하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겁나서 미뤄왔던 일들, 고통스러워서 깊숙이 숨겨둔 기억들을 소환시킬 수 있다. 사람은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안전감은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으며 헤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걸 원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으며 나를 무시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 마음이다. 이러한 안전감을 주는 사람은 결코 나보다 먼저 걷지 않으며 내 뒤에서 나를 떠밀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옛 기억을 두려워한다. 다시는 그때의 경험을 재현하기를 원치 않는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실수와 실패는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이러한 불편감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과거 속의 경험했던 무관심과 비난은 자신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갔다. 세월이 흘러 수년이 지나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개인은 그때에 머물러 있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진화되었고 자기가 되는 일치감으로부터 분리되는 방법에 익숙한 채 살고 있다.


안전감은 일그러진 경험을 반듯하게 펴는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의 마음 짓을 민감하게 반응해준다면 개인은 자신의 무뎌진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이해는 한 사람의 억압된 감정을 회복시킬 수 있다. 처음에는 입을 삐쭉이는 정도일 수 있고 그다음에는 주먹을 불끈 쥐는 수준일 수 있다. 그다음에는 눈에 힘을 주고 그다음에는 말에 힘을 주어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 가능해질 수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이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도록 다른 한 사람은 묵묵히 버텨주어야 한다. 더 많은 감정과 접촉할 수 있을 때까지,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까지 버텨 주어야 한다. 그동안 억압했던 감정을 회복한다는 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붙여진 딱지를 다시 떼고 터질 듯 곪아있는 고름을 짜는 고통이다. 이러한 과정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고통이 아물 때까지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상처는 회복된다.


한 사람의 이해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은 책임지는 삶의 주체가 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온전히 곁에 머물러주는 경험을 한다면 한 사람은 주인의식을 회복하게 된다. 가끔 실수를 할 때면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버틸 것이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는 것쯤은 다 아는 사실이니 부끄럽게 숨길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자신이 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는 상대방도 나처럼 생각한다고 가정하면 된다. 이러한 가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소중한 사람과의 마음의 공명을 영원히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사람과 같은 마음의 온도로 그 사람과 함께 존재하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간다. 중요했던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온전케 해줄 한 사람은 분명히 있다. 세상에 대한 비통함을 경험한 사람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은 사람도 단 '한 사람'을 통해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두 사람도 아니고 단 한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 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마음은 마음으로 회복되고 사람은 사람으로 회복된다 하지 않던가. 논리적인 증거를 들이밀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이다. 한 사람을 잘못 만나면 온 세상이 뒤틀린다. 뒤틀린 세상이 전부인양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루를 겨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한 사람을 만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한 사람으로 뒤틀린 세상은 한 사람으로 다시 처음으로 회복될 수 있다. 한 사람의 힘은 온 우주의 힘과 같다. 그 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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