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싫다는데 왜 상처 입기를 각오해야만 하는가?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쓰고 또 써봐도 결론은 하나다. '참으로 역설적이다'라는 것이다. 상처 입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는 환경을 찾아다닌다. 상처받을 만한 가능성 있는 일은 피하고, 갈등이 있을만한 사람들과는 되도록 부딪히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본다. 낯선 타인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개방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남들이 모르는 모습은 어떤 것이 있고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약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내밀한 정보를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난 모습, 드러내기 부끄러움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신의 약한 모습일지라도 상대방이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대상임을 확인하기 전까지 말이다.
용기 내어 상대방에게 나의 약점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더라도 상대방과의 관계가 마음먹은 대로 친밀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계획한 공식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기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게 사람이고 상대방에게 실망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실망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누구나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해주기를 바라고 내가 주장하는 것에 있어서 상대방도 '네 말이 맞아'라고 맞장구 쳐주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상대방이 '틀렸다'라고 시비를 걸거나 내가 싫어하는데도 굳이 고집스럽게 하고야 마는 모습을 볼 때는 화가 난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내 맘을 몰라주는 건 용납이 되지만 나와 막역한 사이라 여겼던 사람이 내 맘을 몰라준다면 상심이 클 수밖에 없다. 미워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지만 그것만으로는 상처받은 마음이 원상 복구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상처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예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하는 건지,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인간관계의 현실이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 처음 드는 생각은 '확 끊어버리자'라는 것이다. 끊어내야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 것 아닌가. 그러나 끊어내고 난 후, 다시 찾아온 다른 관계에서는 상처가 없을까? 사람은 누구나 갈등을 빚기 싫어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두루두루 잘 지내고 원만한 관계 속에서 적당한 거리에서 지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란 게 어디 그러한가? 서로 다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상처받기 싫어하면 할수록 외롭고, 외로우니까 다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게 된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주저함이 있다. 그들에게는 안전을 확보할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헤어지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관계가 깊어지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진정한 교감을 위해서는 나의 약한 모습까지 보여주게 되는 순간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순간을 버티는 자만이 진정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두려울 것이다.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면 그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비밀스러운 것들, 즉 두려움과 나약한 것들을 관계의 사이에 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과한 관계만이 진정성 있는 관계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사람들이 이토록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기대하게 되고,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믿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바로, 사람을 기대하거나 신뢰하면서 그 사람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내가 그 사람을 아끼는 만큼 그 사람에게도 아낌을 받기 위함이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성실한 하루를 채우고 내일을 계획하는 것, 만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시간과 물질을 헛으로 쓰지 않는 것 모두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사랑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수고가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상처로 돌아온다면 관계를 단 번에 정리하고 싶기도 하다. '이제는 나에게 별 의미 없어'라는 합리적인 이유를 내 걸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싶다. 관계로 인한 상처를 더 이상 받지 않기 위해 갑옷을 걸치다 보면 외부에서는 도무지 그 사람을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대가로 상처를 남기고, 타인이 보았을 때는 '거리감 느껴지는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될 뿐이다. 사람들과의 친밀한 거리를 포기하면 '자유롭다' '홀가분하다'라는 수식어를 얻을지 모르지만 '공허하다' '외롭다'라는 수식어도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나에게도 당신이 필요해요
상처를 입지 않으려 애쓰는 삶은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처 없는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뭐든지 잘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나약하게 생각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부끄럽다 여기지 말자. 내게 있는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누군가가 안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나약하고 의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누구나 그렇다. 그러니 안심하자. 상처 입을까 봐 뒤돌아서 있는 당신이라면 용기 내어 앞으로 돌아서 주어도 좋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돌아선 모습에 인사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는 당신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넬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는 없다.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도 있고 또 누군가와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한 관계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