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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주는데도(받는데도) 사랑이 담기지 않는다면

by 한꽂쌤

<외로움의 철학>의 저자 라르스 스벤젠(Lars Svendsen)은 '외로움은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욕구의 결핍이 일어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했다. 자기 삶에 만족한다면 절대 집을 떠나 바다를 항해하거나 요새를 정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의 저자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Mariela Sartorius)는 '현대인들은 혼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함께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로워한다. 외로움은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무력하게 만들고 공허함마저 들게 하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듯 하다.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여 이상한 일도, 큰일 나는 일도 아닌데도 말이다.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감정 중 하나이기에 없애버리려고 할수록 부자연스러울 뿐이다.


외로움을 유독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은 친구들을 곁에 두려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 둔다. 당연히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서, 그리고 여럿이서 함께 하는 것이 외롭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신기한 점은 외로워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음에도 막상 그 속에서 있으면 다시 혼자만의 공간으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이러한 대가를 치르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가지만 대가를 치르기에 너무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마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거부하여 외롭게 혼자 지내는 편을 선택한다.


외로움이 싫어서 관계 속으로 뛰어들어간 경우라고 해서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않는다. 함께지만 혼자인 느낌, 즉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음에도 혼자인 느낌이 드는 것도 비슷한 예이다. 연애 중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식은 건 아닌지 끊임없이 확인하게 되고, 평소보다 다른 태도를 보이면 '나 때문인가?' '내가 뭘 잘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알고 보면 자신이 원인 제공자가 아님에도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 기저에는 '나는 결국 혼자가 될 거야'라는 불안감이 깔려있다. 이렇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만연한 경우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린아이는 연약하고 주변을 통제할 힘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과의 관계 경험을 통해 자신의 관계상을 형성하게 된다. 어릴 적 양육자가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언젠가 너를 떠나버릴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냈거나 '내가 이렇게 하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는구나'라는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경우일지라도 이러한 관계 경험은 한 사람의 관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미래의 관계 경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어찌해도 혼자가 될 거야'라는 관계상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의 관계가 결국 혼자로 남게 되는 패턴을 낳는다. 즉, 반복된다는 뜻이다. 혼자가 될 것이라는 신념은 다른 사람이 보내는 자극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타인이 보내는 긍정적인 관심에도 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저 사람이 지금은 잘해줘도 언젠가는 떠나갈 거야. 그래서 결국 나는 혼자가 될 거야'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이러한 상처를 누군들 반복하고 싶겠는가. 결국 상처에 두려움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안정감 있게 맺는데 방해물이 되고 회피하게 되는 관계 양상이 된다.


'나는 절대로 혼자가 되지 않을 거야'라는 관계상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을 곁에 두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된다. 변하지 않을 사랑이 맞는지, 이래도 당신이 떠나지 않을 사람인지 시험하게 된다. 친밀한 관계에 대한 불신이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그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지나치게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이기 때문에 본인과 타인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사랑을 지키려던 행동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질리게 하기 때문에 떠나게 되어 '혼자 남게 되는 나'의 관계상의 각본이 되버리는 것이다.


원치 않는 결말이 생겨나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기 위해 끊임없이 안정장치를 해놓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과 헤어지면 바로 다른 사람을 사귀는 '늘 연애 중인 사람들'이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좋다고 하면 기꺼이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는 친밀감보다는 친밀감을 줄만한 대상이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이다. 마음에 없는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요구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이를 집착이라 부른다. '네가 나를 먼저 좋다고 해놓고선 왜 이래?'라는 태도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연락을 안 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연락이 안 될 때 불안해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상대방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결국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감정 다툼이 충동적으로 자주 일어나게 되는 셈이다.


친밀한 관계상에 배고픔이 있는 경우,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여러 사람들과 연애를 하게 된다. 사랑을 받고, 고백을 받아도 왠지 만족스럽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사람 외에 더 나은 사람, 더 나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람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연애대상을 계속 바꾸거나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게 될때 일어나는 관계패턴이다.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을 채우고 싶어서 하는 행동인데 과연 이런 경우 만족할만한 대상을 만날 수 있을까. 마음 한편이 구멍이 뚫린 상태인데 아무리 사랑을 채워 넣은 들 그득 담길 수 있을까.


어린시절 안정적 관계 경험의 부재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정된 관계 경험을 통해 완성되거나 성숙한 관계로 결말을 맺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늘 안절부절이다. 조금이라도 뭔가 잘못될까 봐, 그럴 조짐이 생길까 봐, 우려하던 일대로 돼버리면 결국 혼자 남을까 봐 두려워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늘 확인하려 하고 늘 확신을 요구하게 되는 이유이다. 혼자여서 둘이 되길 원했는데 둘이 되니 오히려 갈등이 생기고 불안감을 주체할 수 없어 다시 혼자를 선택하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싫어한다. 이러한 틈을 채우기 위해 게임, SNS, 유*브, 채팅 등 다양한 온라인 세계에 함몰되기도 한다.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 틈을 가만두지 못하고 다른 대상으로 채우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코로나 시대에는 강제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제한이 되었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서 어떻게 지내야 좋은지에 대한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온라인 세계에 빠지게 된 상황은 안타깝다. 스마트폰 안에서의 만족감, 기분 좋음의 느낌은 명료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면 좋아하는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내가 어느 순간에 가슴 설레어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미약하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다면 관계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사랑하는 대상이 생겨도 한 사람에게만 충성해야 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가 생기면 동성친구들을 멀리한다든가, '너는 나보다 친구가 소중하니?'라는 말도 안 되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상대를 난감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관계는 한 가지 통로가 아니라 다양한 통로로 이어지며 이 통로가 원활히 순환되어야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건강한 관계로 유지된다. 아주 가까운 관계도 있지만 그보다는 먼 관계도 있다. 소중한 '한 사람'이 생겼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모든 기대를 걸어서도 안되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한 사람에게 올인하게 되면 결국 자신의 곁에 있는 '한 사람'마저 잃게 되고 말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이 싫다고 해서 그 싫음을 대신해줘야 할 대상이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다양한 자원들을 마련해 두면 좋다. 내가 원할 때 언제라도 내게 위로와 기쁨을 줄만한 그 무엇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만족감을 얻고,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서 해소해도 좋고 무엇을 해서 해소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혼자서 해도 좋고 같이 해도 좋다.


중학교 국어시간이었던 것 같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에게 기쁨을 주는 물건'을 주제로 글쓰기를 해서 제출하는 숙제였는데 그때 나는 마을 뒤에 있는 산에서 주워 모은 '수정(돌)'에 대해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제출하고 나서 끝났다면 기억이 안 났을 텐데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내가 제출한 과제 내용을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작은 수정들을 주워와서 자주 들여다보면서 기뻐하곤 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내가 무엇을 했을 때 즐거웠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 지금은 그 대상이 달라졌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는 셈이다.


홀로 있음이 좋지 않은 감정이라고 믿고 있는가? 나약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글의 서두에 이미 밝힌 바 있다.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움이다. 이 자연스러운 감정에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라는 평가를 댓글로 달지는 말자. 대신 자연스러운 것, 함께 해도 괜찮은 것, 나를 성장시켜주는 것,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댓글을 달아보자. 혼자 있음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혼자일 때는 혼자인 채로, 함께 하고 싶으면 또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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