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 오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거리 중에 단연코 으뜸은 대인관계에 대한 주제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모든 삶은 관계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과의 관계만 맺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물건, 음식, 자연 그리고 자신이 하는 생각, 타인이 하는 생각, 지금 이 순간은 당신이 읽는 이 책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를 생각하며,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의미를 공유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모든 관계는 내가 나와 맺는 관계패턴과 비슷하다. 나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떠한가?
친절한가?
다그치는가?
따뜻한가?
냉정한가?
가만히 관계를 느껴보기 바란다. 이러한 관계의 뿌리는 당신이 어릴 적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당신에게 의미 있었던 누군가는 당신에게 친절했거나, 다그쳤거나 따스했거나 냉정했을 것이다. 좋았던 관계도 나빴던 관계도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반응을 지금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20대 초반인 미영 씨는 자주 찾아오는 불안감으로 인해 힘들어한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지만 어떤 일을 시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되도록이면 새로운 만남을 피하고, 사람 많은 곳을 피해 다니며 그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썼다. 시험을 준비하거나 중요한 목표를 세우려고 하면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커서 도무지 시작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라도 시험 준비 스터디 모임에 들어가서 해보려 시도했지만 여전히 힘들어했다. 다른 구성원들의 속도에 맞추자지 힘들고 혼자서 해내자니 불안했다. 그 무엇을 해도 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미연 씨가 사람, 주변 환경과 맺는 관계는 불안한 관계이다. 그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가 기억하는 6살은 아버지가 집에 귀가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밤이었다. 저녁마다 술 취한 아버지가 귀가하기를 기다며 숨죽였던 하루하루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은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적인 언어들이 집안 가득 채웠고 아버지가 잠이 들어야 그녀도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지 않고 귀가하는 날은 '오늘은 편안하겠구나'하며 안도의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들어오든 그렇지 않든 그녀는 늘 불안한 밤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잠이 들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때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와 대화를 하며 살고 있다. 시험 보고 난 후 실망했을 때는 '나는 망했어'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면 그 말을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분명히 누군가가 다른 누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자신을 꾸짖을 때 주로 건네는 말은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로 비롯된 것이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면 그 또한 과거에 부모나 누군가로부터 의미 있게 들었던 긍정적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친절한 말을 전혀 건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 자체를 모를 수 있다. 또는 자신이 친절함의 대상이 될만한 자격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 모든 것들을 배워버렸고 배운 대로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에 자신에게 이러한 영향을 주었던 대상을 원망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들도 아마 그렇게 배웠을 테고 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주었을 테니까.
심리학자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시도한다.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인간관계의 양상이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에서 물려준 관계패턴을 지금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남자 친구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 여성이 있다. 남자 친구를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자신에게 헌신적이었기에 관계에 문제가 없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은 소홀해졌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한 마음을 표현해보셨나요?'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직접적으로 서운하다고 말은 안 했지만 그러한 뉘앙스로 자주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도 그는 내 마음을 몰라줘요'.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정도 이야기를 했으면 알아주겠지'라는 마음에서 상대방이 먼저 알아차려주기만을 바랬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대충 말해놓고 제대로 알아듣기를 바라는 것은 큰 착각이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책임감이 강했다고 한다. 늘 연약한 엄마를 먼저 헤아려서 착한 딸 역할을 해야 했고 모범적인 자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래야 엄마가 아프지 않고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어도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늘 자신보다는 타인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러한 관계는 연애에서도 드러났다. 남자 친구에게 느꼈던 서운함을 그때그때 이야기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급기야 '헤어짐'으로 결말을 맺었다. 제 때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대가이다. 그녀가 표현하는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연애도 똑같이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