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거기서 거기다
수영은 참 정직한 운동이다.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역할과 직급과 일명 계급장은 의미없다. 오직 물을 잡는 손바닥의 감각과 발차기의 리듬만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일까, 수영장 레인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투명한 위계질서를 가진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는 물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안다.
실력이 좋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물살을 가르는 앞자리에 선다. 반면 자신의 호흡이 앞사람의 발차기보다 더디다고 느끼면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 이 과정에는 어떤 강제나 합의서도 필요 없다. 그저 물이 흐르는 대로, 실력이 흐르는 대로 자리가 정해진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이 무언의 질서에 경의를 표한다. 선생님이 실력의 순서를 매기지 않아도 우리의 줄서기는 늘 완벽에 가깝다.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영장에서는 폼과 속도가 묘하게 비례한다. 힘을 잔뜩 주고 물을 때려잡는 사람보다 부드럽게 물을 어루만지는 사람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겉보기에 우아하고 편안해 보이는 영법이 사실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법이다. 일반인들의 수영 세계에서 '아름다운 폼'은 곧 '빠른 속도'와 동의어다. 물론 타고난 근력이나 신체 조건에 따른 개인차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거친 숨을 몰아쉬며 팔을 허우적거리는 사람치고 선두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물보라 하나 일으키지 않고 유유히 나아가는 이가 레인의 맨 앞에서 전체의 속도를 조율한다.
그러니 굳이 누가 빠른지 시합을 해보지 않아도 된다. 물 잡는 손끝의 각도와 호흡할 때의 여유만 봐도 그 사람의 순번이 보인다. 정기 강습반의 아침 풍경은 그래서 늘 평화롭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자리를 지정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폼을 곁눈질하며 내 자리를 찾아간다.
내가 설 자리가 두 번째인지, 아니면 맨 뒤에서 여유 있게 따라가야 할지 몸이 먼저 안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시스템인가. 세상의 모든 줄서기가 수영장만 같다면 피곤할 일이 반으로 줄어들 텐데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 정직한 시스템에 작은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자신의 실력을 아주 약간, 혹은 대범하게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분명 실력으로는 뒤에 서는 것이 마땅한데 굳이 앞자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미묘한 자리 싸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지나친 겸손함으로 앞자리를 거부하는 '양보의 아이콘'들이다. 실력은 충분히 리드할 만한데, 쑥스러움이나 겸손함 때문에 자꾸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앞선 사람이 뒤선 사람에게 "먼저 가세요"라며 수줍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꽤나 훈훈하다. 거기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실력을 뽐내지 않으려는 미덕이 묻어난다.
문제는 두 번째 유형, 바로 '근속연수'를 앞세우는 경우다. 수영 실력보다는 수영장에 다닌 기간이 벼슬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이 수영장 물을 마신 게 얼만데"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달까. 분명 뒷사람의 손이 내 발을 건드릴 정도로 속도 차이가 나는데도 절대 비켜주지 않는 굳건한 등짝을 볼 때면 존경심보다는 의아함이 앞선다. 이런 분들은 턴을 할 때마다 벽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출발 신호?가 느껴지면 잽싸게 그 자리를 사수한다. 그 집요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종종 물속에서 혼자만의 헛웃음을 짓는다. 약간의 쓴웃음과 함께 근원적인 물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그 자리는 실력의 증명이 아니라 자존심의 최후 보루인 모양이다.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을 나서는 길, 문득 물속의 풍경이 우리네 사회생활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수영장에서의 '자리 고집'은 사무실 파티션 너머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장면이다. 실력과 성과보다는 얼마나 오래 자리를 지켰느냐가 권력이 되는 순간들을 우리는 너무 자주 마주한다. 경력이 오래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력을 앞세우는 후배의 앞길을 막아서는 선배들의 모습. 변화하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붙잡고 상석을 고집하는 임원들의 모습. 수영장의 그 순번 레인을 놓지 못하는 그분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그 모습이 때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물론 경력에서 나오는 노련함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흐르는 물처럼 유연해야 할 조직에서 고인 물처럼 자리를 고수하는 것은 결국 전체의 흐름을 막는다. 앞사람이 느리게 가면 뒷사람 전체의 리듬이 깨지는 수영 레인처럼 말이다.
욕심을 부려 앞서나가려다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수영장이나 회사나 매한가지다. 자신의 속도를 모르고 무조건 빨리 가려다 숨이 차서 멈춰 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정말 나의 실력에 맞는 자리인가 하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객관화'의 능력이다.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갈 수 있는지, 나의 폼은 안녕한지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수영을 하다 보면 내 팔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강사의 지적을 듣거나 영상을 찍어보고 나서야 "아, 내 폼이 이렇게 엉망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몹시 어렵고 고통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실제의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나보다 빠른 사람에게 기꺼이 길을 터주는 '포용'과, 내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수용'의 자세.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이 들어가며 갖춰야 할 진짜 실력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집과 아집이라는 이끼가 끼기 쉽다. 나 역시 경력이 쌓일수록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며 1번 레인을 고집하는 꼰대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다짐한다. 언젠가 내 속도가 느려지는 날이 오면, 기분 좋게 뒷자리로 물러나겠노라고. 그리고 씩씩하게 물살을 가르는 뒷사람의 젊은 등을 보며 "자세 좋은데?"라고 웃으며 말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갖겠노라고 말이다. 그것이 물속에서나 물 밖에서나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일 것이다.
수영장을 나서니 어느새 봄바람이 훅 끼쳐온다. 촉촉한 몸의 감촉들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상쾌하다. 돌아오는 길가에는 팝콘처럼 터진 벚꽃이 만개해 있다. 겨우내 웅크렸던 가지들이 언제 이렇게 꽃망울을 틔웠는지, 자연의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다. 눈으로 봄을 느끼고 피부로 생동감을 느끼는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오늘 하루, 내 분수에 맞는 레인에서 열심히 팔을 저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무리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딱 내 호흡만큼의 속도로 살아낸 하루였다. 그거면 충분하다. 벚꽃 잎 흩날리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내일도 기꺼이 3번, 아니 5번 자리에 설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