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7. 화를 멈춰야 해 - 서울 동작동 성당

by 작약

아침부터 또 뭔가 치밀어 올랐다. 묵상을 하면서 한바탕 울고났는데도 스멀스멀 저 밑에서 울분이 올라왔다. 이런 날은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나가야 돼. 햇빛을 쬐자. 성당을 간다는 사람이 잰걸음으로 나서면서도 속은 뾰족뾰족 날이 서 있었다. 무심코 길을 지나는데 거울에 쓰인 글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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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신기했다. 1층 길가 상점처럼 보인 곳에 쓰인 성경 글귀 그리고 마침 지금 이 기분에 딱 맞는 구절이라. ‘잠잠히…’ 그 한 단어의 위력이었다. 읽는 순간 잔뜩 부푼 풍선처럼 압력으로 차있던 마음이 쉬익 하니 바람 빠지듯 가라앉았다. 길 한복판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섭리였다.


분노를 느낄 때 우리 몸은 강한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며 염증 물질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그 독소가 우리 마음과 신체를 좀먹고 결국 우리 인생을 좀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나의 분노 수치를 따지면 우리 아파트 한 동 전체에 살충제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예민하고 급한 성격의 엄마는 난치병이었던 자가면역질환에 걸렸고 나는 그 독소가 얼마나 쉽게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곁에서 보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았고 오늘은 저 한 단어 ‘잠잠히’로 버텨야 함을 깨달았다.



성당에 들어서자 아치형의 하얗고 넓은 회벽과도 같은 성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탁 트였고 뭔가 산토리니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마음이 뻥 뚫리고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천정도 옆면도 전부 둥근 아치였다. 천정에는 어딘가 틈이 있는지 자연광이 들어와 십자가 위를 비추었는데 하늘의 빛이 임하시듯 아름다웠다. 문득 성당을 건축하시는 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성령을 눈에 보일 듯 구현하여 이런 멋진 공간을 디자인하다니 정말이지 귀한 달란트임이 틀림없다.


십자가 앞에 가만히 앉았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파문이 일듯 조용히 말씀이 마음에 퍼져나갔다. 어릴 때 성당이나 교회를 가면 포도알 스티커를 나눠주시면서 잘할 때마다 하나식 붙이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미지와 미사곡을 제일 좋아했다.

‘네, 주님. 지금 저란 나뭇가지는 흔들리다 못해 부러져 어디 거름더미에 떨어지고 그대로 불이 붙어 활활 타버릴 것 같아요. 저를 붙들어 주세요. 제 안의 화염으로 타버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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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텅 비고 하얀 공간에서 오늘 하루 견딜 만큼의 치유를 구했다.

십자가를 가만 바라보는데 중앙에 ‘INRI’라는 글자가 보였다. 가끔 보았는데 이제껏 그 뜻을 궁금해하지 않은 내가 더 신기했다.


I N R I

- lesus Nazarenus Rex Indaeorum

- 나자렛 사람 예수, 유다인의 왕


빌라도가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인 것으로 조롱이자 정치적 경고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진실의 선언이자 예수님은 사랑과 희생으로 다스리는 왕이며 ‘십자가 위에 선포된 왕권’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어디 감히 비할 수가 있겠냐마는 예수님도 땀이 핏방울처럼 맺히도록 고통스러우셨다. 오래전 독실한 친구가 ‘그게 진짜였대’ 하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났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극심한 정신적 압박에 땀샘 주위의 모세혈관이 파열되고 땀과 함께 혈액이 모공으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왕권을 가지신 분께서 땀이 피가 되도록 괴로우셨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하늘에 대고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물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몸과 마음 이제 영혼까지 지친 것 같았다. 세상에 떨어져 대체 그 나이 먹도록 뭐 하는 거냐고 가끔 자신에게 묻곤 했다. 지금은 머리 굴려 답하기도 귀찮았고 그저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 하느님이 필요하니까 고통 안에 두신 거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문득 오늘처럼 치밀어올라 나를 덮치려는 어둠과 싸우는 중이다.


‘저 좀 쉬게 해 주세요.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감을 때까지 저를 옮아 매는 속박과 불안과 분노에서 저를 쉬게 해 주세요.’


옆 창가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였다. ‘돌아온 탕자’ 얘기인가 했다가 그 비유까지 굳이 들지 않아도 지친 이를 안아주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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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흥분되었던 마음이 진정되자 조금은 평안해졌다. 아직 기운을 다 차리진 못했지만 마음속과 세상의 시끄러움에 거리를 두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충전해가고 있다. 하루하루 그렇게 버텨보자. 함께 해달라고 청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