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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사피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비평

작가와 작품,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by 조지조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오?"

"전 피아니스트입…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피아니스트? 이리 와보시오." (피아노를 가리키며) "연주해 보시오."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장작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좋아하는 대사와 장면이다.


나치를 피해 숨어있던 폐허가 된 피아노가 있는 집에서 주인공은 ‘쇼팽의 발라드 피아노 1번’을 슬프고 처연하게 연주한다.


연주를 들은 독일군 장교는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살려준다. 피아노라는 예술이 한 사람을 구원한 실화를 바탕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이다.




걸작 ‘차이나타운’, ‘악마의 씨’등으로 유명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유년 시절에는 부모와 홀로코스트 피해를 겪고 결국 어머니는 이송되어 독일군에게 살해당한다. 장년기에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몰살당한 테이트 - 라비앙카 살인사건의 간접적인 피해자이자 유족이 되었으며, 노년기에는 과거 저질렀던 상습적 아동 성범죄 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영화감독들 중에서 가장 어두운 삶을 산 감독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만 12명에 달하며, 이 중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미성년자이며 성폭행할 때 술과 약물도 이용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인데, 그런 사람이었다니." 속으로 생각했고 신문기사를 접한 당시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한 줄 기사나 누군가의 SNS 글 한 줄이 어떤 작가의 모든 책을 닫게 만든 적이 있다. 때로는 수년간 사랑해 온 문장들마저 낯설게 만든다. 그렇게 내 안에서 작가와 작품은 겹쳐진다.



프랑스 사회학자 지젤 사피로의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는 바로 그 익숙한 질문에서 시작하며 오랜 논쟁거리였던 예술과 윤리의 충돌 지점, 즉 “우리는 문제적인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학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다.


우리는 문제적인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도 되는가? 혹은, 그 작품이 정말 아름답고 울림이 크다면, 작가의 과거는 묻어둘 수 있을까?


책은 단순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 속의 수많은 사례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보여준다.


나치에 협력한 셀린, 미성년자 성폭행 논란의 로만 폴란스키,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비판받은 미셸 우엘벡,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예술사 안에 살아있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복잡하다.



사피로는 묻는다. 우리는 왜 어떤 작가의 죄는 쉽게 잊고, 어떤 작가의 잘못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가? 사회가 허용한 예외와, 대중의 감정이 낳은 배척 사이에서 예술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독자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반드시 연관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 질문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알려줄 뿐이다.


책을 덮고 나면 결국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싶은가? 나에게 예술은 어디까지 윤리적이어야 하는가?


이처럼 예술은 종종 작가의 윤리와 겹쳐 우리 앞에 선다.


그러나 모든 독자는 다르다. 어떤 이는 작가의 인격을 중요시하며 작품을 거부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 둘을 철저히 분리하며 작품만을 향유한다.


그 사이의 수많은 층위와 기준들은 결국 개인의 취향과 철학의 영역으로 귀결된다.




내 마음속 대답은 이렇다.


나는 몰입하고 싶다.


한 편의 문장 속에 감탄하고, 한 장면 속에서 울고, 한 곡 속에서 전율하고 싶다.

그런데 그 순간마다 작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면, 나는 더 이상 그 작품 속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을까?


어쩌면 '할 수 있다'거나 '없다'는 말보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오롯이 나의 취향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작가의 도덕성을 예술의 기준으로 삼는다. 누군가는 작품만을 보고 느끼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진실하게 감동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예술은 정답이 없는 감정의 영역이다.



작가와 작품의 분리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상의 자유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울림에 귀 기울이며,



한 문장을 펼친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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