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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소설 '싯다르타' 비평

옴과 놓아줌

by 조지조




예전 회사에 다닐 때였다.

아침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엄청 쎈 향기가 났다. 그건 그냥 향기가 아니었다.

존재감을 잔뜩 들이부은, 누군가의 ‘나 여기 있다’는 선언 같은 향기였다.


30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향기로 회장님의 출근 여부를 감지했다.

진한 향수를 뿌리고 등장하는 회장님은 차가 4대였고,

그중 하나는 늘 건물 정문 앞에 곱게 주차되어 있었다.


명품에 빠삭한 동료는 그것의 향은 고급 럭셔리 향수라고 하였고,


나는 말했다.


“이 정도면 회장님은 아침마다 향수로 샤워하시는 거다.”


우리는 회장님을 은밀하게 ‘라만이형’이라 불렀다.

힌두교에서 최고 계급인 ‘브라만’에서 따온 우리끼리의 회장님 별명.

출근길에 신성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정도 대접은 마땅했다.



소설 ‘싯다르타’ 주인공도 브라만이다.

지혜롭고 단정하고 준수한 성직자의 아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지식, 명상, 사람들의 사랑.

하지만 그는 무언가 결핍된 듯한 갈증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떠난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고행자의 삶을 택한다.

소유하지 않고, 먹지 않고, 말하지 않으며 자신을 비워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리에 다다를 수 없었다.



그는 붓다를 만난다.

그리고 배우되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스스로의 길을 걸으며 깨닫겠다는 그 고집스러움이 나와 닮아 있었다.


싯다르타는 도시로 들어가 기생 카말라에게 사랑과 쾌락을 배우고,

상인에게 돈의 흐름을 배운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타락했음을 자각한다.

거울을 본 그는 더 이상 브라만도, 고행자도 아니었다.


그는 다시 모든 것을 버리고 강가로 간다.



강물 앞에서 그는 모든 것을 끝내려 했지만

그 순간, 깊은 무의식 속에서 신성한 소리 하나가 들려온다.


“옴(Om)”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속에 나도, 세상도, 고통도

그저 흐르는 것임을 그는 비로소 받아들인다.



그는 말없이 강을 건너는 뱃사공 바수데바와 살며 삶을 다시 배운다.

강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은 돌아온다.”


기생 카말라는 그의 아이를 안고 그를 찾아왔지만, 곧 세상을 떠난다.

남은 사랑하는 아들은 반항하고, 도망친다. 그는 아들을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놓아준다.


그 순간 그는 진정한 ‘놓아줌’을 체험한다.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보내주는 것임을, 말이 아닌 존재로 배운다.



마지막에, 옛 친구 고빈다가 묻는다.

“너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니?”


싯다르타는 말 대신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에는 모든 고통과 방황, 욕망과 집착,

그리고 사랑과 내려놓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아직 그런 미소를 짓지 못한다.

나는 남들이 겪지 않을 법한 인생의 쓰고 매운 경험을 꽤 많이 경험했다.



지혜는 가르침에서 오지 않고 ⁠경험에서 우러난다는 것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진짜 놓아주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집착하는 것을 놓지 못했고, 그 집착이 때로는 관계를, 나 자신을 숨 막히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회장님은 향수를 놓지 못했고,

나는 나를, 사랑을, 자존심을, 외로움을, 집착을 놓지 못했다.



진정한 깨달음과 놓아줌은 말로 하지 않는다.



그건 미소로,

침묵으로,

행동으로 말해진다.



옴~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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