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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 비평

알 깨기

by 조지조




나는 학창 시절 일등도 해봤고, 꼴등도 해봤다.


⁠한 가지 확실한 기억이 있다. 중학교 3학년 전교에서 유일하게 국사 시험 100점을 맞았던 날.


솔직히 말하면 천재라서 그런 건 아니고, ‘기필코 한 번은 해낸다’는 마음으로, 딱 한 번, 나 자신과의 전쟁을 진지하게 치러본 결과였다.

국사 선생님이 수업시간 나누어준 촘촘한 유인물 10장 정도를 밤새 다 외웠다. 마지막 한 장을 외울 때는 정말 졸리고 힘들었고, 학교 가는 버스에서 내내 졸았지만 시험 전 다시 몰입하여 유인물을 복습했다. 시험은 유인물 안에서만 나오고 지금까지 100점 맞는 사람은 없었다는 말이 나를 자극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친구도, 시험지도 아닌 바로 ‘나’라는 것을.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내가 좋아했던 국사 선생님이 나를 일으켜 세웠고, “조 XX 100점, 박수!”라고 하였고, 반 친구들이 오~하며 박수를 오래 쳤다. 인생의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고, 내가 나를 인지하고 한계를 극복한, 처음으로 ‘나’라는 알을 깨부순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인생 경험이 많아지면서 나는 나에 대한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나는 내가 아는 진짜 나인가? 나는 몇 개인가? 나는 내가 맞는 것인가?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좋은 질문과 물음은 좋은 사유를 만든다.



그 질문과 물음에 다시 불을 붙여준 소설이 바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이 책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순진함에서 자각으로 나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그린다.


초반의 싱클레어는 부모의 보호 아래 선과 정의의 ‘밝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곧 삶의 이면, 즉 죄와 욕망이 가득한 ‘어두운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때 나타나는 인물이 바로 데미안. 그는 마치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처럼, 세상의 이분법적인 시선을 의심하게 만들고, 진정한 자아로 이끄는 안내자가 된다.


작품 속에는 아브락사스라는 상징적인 신이 등장하는데, 이는 선과 악, 빛과 어둠 모두를 포괄하는 존재로, 싱클레어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상적 전환점이 된다. 결국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벗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법을 배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 역시 깨고 나와야 할 세계가 있었고, 소소하게 알을 깬 경험이 있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서 매일 알을 깨려고 하는 중이다.



삶은 끊임없는 자아 인식의 반복이다.

선과 악, 욕망과 절제, 타인의 기대와 나의 진심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싱클레어’처럼 갈등하고, 때론 ‘데미안’처럼 깨달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복잡한 철학과 자기 성찰의 끝자락에서 문득 깨닫는다.



나 자신을 가장 또렷하게 비추는 거울은 ‘연애’라는 것을..

사랑은 내 안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드러낸다.

질투와 소유욕, 이해와 헌신, 회피와 책임감, 사랑과 증오, 연애는 그 모든 감정을 증발시키지 않고 내 안의 나를 오롯하게 ‘관찰’하게 만든다. 좋았을 때보다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서로의 행동과 감정의 밑바닥이 한없이 드러난다.


나는 이성을 사랑하면서 비로소 나를 정확히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웃을 때 내가 웃고, 그녀가 침묵할 때 내가 불안해질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녀가 곧 나의 거울이고,

그녀를 통해 나는 나를 알아간다.



사랑하는 짝(소울메이트)을 찾고 싶다면, 같이 있을 때 시간이 잘 가고 재밌는 사람을 만나라.


나랑 둘이 평생 놀 사람이다. 지루하고 권태로우면 안정된 인생도 지옥이 된다.


개그맨 부부의 이혼율이 0%에 수렴하는 이유가 위의 발언을 증명해 준다.


그러니 말이다,


내 안의 데미안을 찾고 싶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라.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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