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
“지금 기온은 3도인데(사실), 그래도 눈이 내리는구나(진실)” 주인공 구로프가 딸에게 말했다.
“하지만 따뜻한 건 땅의 표면이지(사실), 대기의 상층에서는 기온이 전혀 다르단다(진실)”
“아빠, 그럼 왜 겨울에 천둥이 치치 않아요?” 그것도 딸에게 설명해 준 구로프는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 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 (사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진실)
우연히 이상하게 얽힌 어떤 사정에 의해 그에게 소중하고 흥미로우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그 속에서라면 그가 진실하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그의 생활의 핵심을 차지하는 그런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전개가 매우 빠르고 몰입도가 굉장하지만, 단순한 불륜 막장 소설이 아니다.
삶과 인생에서 ‘사실과 진실’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소설의 두 인물 다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이 이런 것에 불과할까?
그들은 잘살고 있던 일상의 공간이 아닌 휴양지 얄따에서 만났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나는 자신의 감정을 구로프에게 토해 놓는다.
구로프는 생각한다.
‘그 여자에겐 어쩐지 애틋한 데가 있어’
휴양지는 실제로부터 일탈하는 곳이다.
그래서 휴양지에서의 정사는 그들에게 삶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몽상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삶의 사실로 돌아간 그들 모두 자꾸 자신의 삶의 사실이 거짓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체호프는 묻는다.
인생과 삶에서 사실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는 사실을 사는척하며 혼자만의 진실을 즐기는 이중성에 빠져 있진 않나?
잘살고 있었던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이후, 자신의 삶의 사실을 계속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그들이 그저 남들이 보기에 잘 살고 있었던 것이지, 그들 스스로 잘 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그들은 삶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도 없이 그저 건강하고 부유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두 사람은 인습의 눈을 피해 몰래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언뜻 보면 가식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과거의 사실보다 이 둘의 은밀한 만남이 진실인 듯도 하다.
삶에서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진실일까?
우리는 사실의 삶을 진실로 살고 있을까?
이중성은 인간의 디폴트 정서인가?
우리는 혹시 사실적 삶을 꿈꾸며,
진실적 삶은 놓치며 살고 있지 않나?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