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마등

by 조지조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가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한다.


아래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죽어가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죽음에 직면하면 살아왔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일순간에 끝나는 장면들이 아니다. 영원의 시간처럼 오랫동안 눈앞에 머문다. 내겐 이런 것들이 스쳐간다.


보이스카웃 때 잔디에 누워 바라보았던 별똥별. 집 앞 도로에 늘어선 노란 빛깔의 단풍잎. 메마른 종이결 같던 할머니의 손과 살결. 사촌 토니의 신형 화이어버드(신차)를 처음 구경했던 순간.


그리고 제인(외동딸), 나의 공주, 그리고 캐롤린(아내)....


살다 보면 화나는 일도 많지만, 분노를 품어선 안된다. 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치니깐.


드디어.. 그 아름다움에 눈뜨는 순간,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터질 듯이 부푼 풍선처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면, 희열이 몸 안에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생긴다.


소박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대해..'




톨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도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쭈글쭈글한 프렌치 날자두가 떠오른다. 이 맛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그 시절 일련의 기억이 함께 이어진다. 보모, 형, 장난감…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예술작품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주마등 회상씬에서 유독 소소한 일생에서의 작은 행복들이 비칠까?


회상에서 인생의 큰 성공이나 성취는 거의 비치는 일은 없다.


오늘 독서토론에서 답이 나왔다.


성공이나 성취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타인의 시선에 기반한 비교 대상이 있다.


반면 소소한 나의 행복은 나만의 절대적인 개념과 기억이다. 비교 대상이 없고,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고 오롯이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한 감정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의 생애에 후회를 느낀다.


그는 그를 둘러싼 그들에게서 자신을, 자기가 살아온 모든 것을 보았고, 이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것과 그리고 삶과 죽음을 모두 가려버리는 끔찍하고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분명히 죽음을 앞두고 보았다고 한다.


난 주인공이 느낀 거대한 기만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채 직업적으로 성공한 삶, 남들 보기에 화려하고 윤택해 보이는 삶을 산 자신에 대한 기만으로 본다.


거대한 기만은 자신의 사회적 높은 지위와 가짜 우위의식인 선민의식으로 아이러니하게 집안을 화려하게 꾸미려 하다 높은 사다리에서 떨어져 옆구리를 다친다. 거기부터 통증이 시작되고 이반은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상대적으로 타인의 시선으로 행복해 보이는 성공한 인생은 살았지만, 절대적으로 자기스스로 잘 산 인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기만은 너무나 우리에게 가까이에 있다.


죽음이 삶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모순적으로 죽음은 삶의 동력을 제공한다.


또한, 죽음이 있어서 사랑도 있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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