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논어’ 비평

배움, 부모, 느긋함과 여유

by 조지조

어릴 적 나는 ‘공자’ 하면 가부좌를 틀고 긴 수염을 매만지는 그림 속 인물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공자의 논어를 읽으며, 그가 단순한 성인이 아니라, 살아 숨 쉬던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그는 가난한 몰락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곡식을 나르고 가축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갔다.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서른, 마흔이 넘어도 나라에서 그를 부르지 않았고, 오히려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며 설득과 좌절을 반복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한 번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긴 무명의 시간 속에서 그는 배움과 부모를 향한 마음을 결코 잃지 않았고 군자의 마음가짐으로 생을 살았다.

그가 배움에 대해 한 말 중에서, 나는 이 긴 구절에 오래 머물렀다.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짧은 금언보다 이 두 문장은 더 깊게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배운다’는 행위를 정보 습득으로만 착각한다. 하지만 공자에게 배움은 살아 있는 순환이었다. 과거의 지식과 지혜과 새로운 지식의 조화, 그 안에서의 깊은 사유를 통한 배움의 선순환. 과거를 지혜과 삶의 지식 곱씹고(나는 고전을 읽는 행위가 그래서 공자의 배움에 대한 사유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거기서 새 의미를 발견하며, 배움과 생각을 서로 번갈아 불러내는 일. 그래서 그는 70이 넘어도 스스로를 ‘아직 배우는 사람’이라 불렀다.
나도 언제부턴가 책에서 느끼고 배운 즐거운 감상과 지혜로운 지식을 주변에 나누고, 내 생각과 사유를 정리하고, 내 가치관을 공고히 만들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글을 쓴다. 인스턴트 즐거움이 아닌 몰입의 충만한 즐거움이 글쓰기엔 꽉 차있어 나의 지적 쾌락의 허기를 채워준다.

그런 그가 부모에 대해 남긴 말에는 유독 따뜻함이 묻어난다.
제자가 “삼년상을 꼭 치러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쌀을 먹고 비단옷을 몸에 걸치더라고 그대는 아무렇지 않은가?”
“그대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렇게 하라. 무릇 군자가 상을 치른다는 것은 좋은 것을 먹더라도 맛있지 않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더라도 즐겁지 않고, 머물러 있더라도 안정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대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렇게 하라.” “딱하구나, 마음이 닫혀서 인을 잃었고, 슬픔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어린아이는 태어나 3년이 되어서 겨우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삼년상은 천하의 법칙에 따른 행위인 것이다. 너의 부모는 너를 키웠을 뿐이지 3년의 사랑을 주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이건 단순한 예법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보낸 시간은 매 순간이 전투였다. 잠 못 이루는 밤, 아픈 아이를 부둥켜안던 새벽, 손을 잡고 걸음마를 떼는 날까지의 기다림. 세 해는 짧지만, 그 속엔 평생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삼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이를 키워보니 공자의 삼년상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비로소 더 깊이 이해한다.

그리고 ‘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가르친 건 배움과 효도만이 아니었다.
그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마음이 평안하여 느긋해한다. 소인은 마음이 불안하여 끙끙거린다.”

공자가 이 말을 한 건 단순한 멋 부림이 아니다. 정치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몇 번이나 나라를 떠돌았던 그는 충분히 조급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기다릴 줄 알았다. 느긋함은 단순히 여유 부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크고 단단하다는 증거였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짜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이 파다하다. 마음이 넓고 단단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것을 가리는 지혜는 다양한 사람에 대한 경험과 진짜 고전, 인문학에 대한 배움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 구절이 나를 향해 동시에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배움은 끊임없이 순환시키고, 부모에겐 시간을 나누며, 사람 대 사람 사이에서는 느긋함과 여유를 품으라고.

내 인생에서 한동한 배움과 독서를 중지한 적도 있고, 부모님께 불효도 많이 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할 법할 인생의 쓴 맛 많이 보았었고 그래서 불안하여 끙끙거린 적도 많았다.


다행히, 이제는 인생에서 쓴맛의 지옥을 많이 경험했기에 어지간한 일에는 멘털이 흔들리지 않고,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나에겐 천국처럼 느껴지고, 본투비 명량하고 긍정적인 편이라 느긋함이 몸에 배어 있다.

마흔 자락부터 책을 다시 가까이하며, 생각과 사유를 하고, 글을 쓰고,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감사한 부모님을 찾아뵈어 토요일 아침을 같이 먹는다. 커다란 대화가 오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따끈한 콩나물국을 앞에 두고 날씨 얘기를 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옛 것을 새로이 배우고, 부모의 세 해를 조금이라도 되돌려드리며, 마음의 여유를 배우고 있다.

어쩌면 공자가 수천 년 전 ‘논어’ 속에 숨겨놓은 선물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이런 사소하고 꾸준한 아침과 단단한 일상일지도 모른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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