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소설 ’울분(Indignation)’ 비평

권위주의와 부조리

by 조지조

필립로스의 소설 ‘울분'은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청년이 시대적 부조리에 맞서다 파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매카시즘, 강압적인 대학 규율과 종교적 의무는 주인공 마커스를 옭아매며, 그의 작은 저항조차 거대한 체제와 충돌한다. 로스는 이러한 갈등을 통해,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쉽게 억압될 수 있는지를 냉혹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마커스는 논리적이고 성실하며, 무엇보다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불안, 대학의 강제적 채플 참석, 권위주의적인 제도는 그를 점점 궁지로 몰아넣는다. 마커스의 ‘울분’은 단순한 청춘의 반항이 아니라,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부조리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는 이성을 무기로 삼아 항변하지만, 사회는 그 이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더 잔혹하게 억누른다.

주인공 마커스의 올리비아와의 사랑은 자유와 욕망의 해방이자 동시에 사회적 낙인의 시작이다.
데이트 중 올리비아가 마커스에 펠라치오를 해준다. 마커스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몸의 상징인 부위를 가장 부드러운 부위로 애무를 받는다. 그 당시 동성애와 더불어 펠라치오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금기와 죄악시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보수적인 질서가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는 순간,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로스는 이를 통해 개인의 욕망조차 권위주의적 규율 앞에서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를 드러낸다.

죽은 뒤의 시점에서 서술하는 마커스의 목소리는 이미 예정된 파멸을 암시한다. 그가 아무리 합리적으로 항변하고, 분노하며, 자유를 찾으려 해도, 체제의 벽은 그를 집어삼킨다. 결국 울분은 개인의 분투가 어떻게 시대적 권력과 부조리에 의해 좌절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적 비극이다.

카뮈는 ‘시지프신화’에서 인간의 조건과 세상을 “부조리”로 규정한다. 인간은 의미를 갈망하지만 세계는 끝내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는 그 무의미 앞에서 절망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시지프처럼 “돌을 끝없이 밀어 올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또한 죽음을 앞두고 “나는 세상과 형제처럼 느낄 수 있었다”라며, 삶의 부조리를 끝내 받아들이고 세계와 화해한다.

이에 비해 ‘울분’의 마커스는 끝내 시지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그는 세계의 부조리를 인식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맞서다 산산조각 나버린다.

마커스의 ‘울분’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지만, 그 자각은 부조리를 견디며 삶을 긍정하는 철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울분은 카뮈의 철학과 나란히 놓을 때 더욱 뚜렷한 비극성을 드러낸다. 마커스는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하고 저항했지만, 끝내 그 속에서 의미를 창조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를 껴안으며 살아가는 적극적 삶”과 달리, 마커스의 삶은 시대와 권위의 부조리에 압도당한 비극으로 남는다.

그러나 바로 그 파멸 속에서 독자는 여전히 카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약 마커스가 시지프처럼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끝까지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었다면, 그의 울분은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

세상을 살다보면 부조리한 순간과 권위주의에 마추치게 된다.

자기의 가치관을 지켜 꺽이지 않을 것인지,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찬란한 미래를 도모할 것인지,

각자 개인의 몫과 판단이다.

난 인생 2막 후자를 선택한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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