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러스' 비평

사랑..바이러스..그리고 배두나

by 조지조




코로나 전에 만들어져 우여곡절 끝에 올해야 개봉된 기발하고 참신한 발상의 B급 코미디, 로맨스, 재난 영화?? 장르가 의심스러운 강이관 감독의 영화이다.
극장에서도 망한 작품.. 별 기대 없이 플레이를 눌렀다. 하지만 영화는 희한한 맛인데, 계속 보다 보면 그 맛에 약간 빠져 버릴 수 있는 점, 특히 배두나의 연기에..

기력도, 의욕도, 연애 세포도 바닥난 우울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번역가 '택선”(배두나)에게 소개팅이 들어온다.
첫 만남에 청혼까지 하는 모쏠 연구원 ‘수필(손석구)’과의 엉망진창 소개팅 다음 날, 갑자기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다. 러브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한없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괜스레 웃음이 나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화려한 원피스에 눈이 가고, 매일 같이 울리는 자동차 판매원 동창 ‘연우’의 영업용 단체문자도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자신이 치사율 100%의 톡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유일하게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박사‘이균’과 만난 ‘택선(배두나)’은 이 모든 변화가 바이러스의 증상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예기치 못한 여정을 시작하는 게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코로나전 2019년에 3개월 동안 촬영된 작품이다.
보호복을 입고 바이러스 검사를 하는 코로나를 예견한 선견지명이 있는 명작이라고 보기에 영화는 초라하지만 소소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뜨기 전의 손석구, 장기하, 카더가든등 6년전의 스타들의 B급 연기도 볼만하고 일상연기의 달인 배두나의 연기는 피곤하며(피곤한 연기를 잘한다는 뜻이다) 사랑스럽다.
배두나의 연기에는 감정의 과잉이 없어 너무 좋다. 피곤해서 툭 뱉는 대사와 표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작품과 어쩜 가장 찰떡이다.

꼭 명작이 아니라도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작품 속에는 보는 이 각자의 관점과 지성의 뷰파인더를 통해 더 은밀하게 보인다.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 모두 배두나 연기다.



첫 번째 인상적인 장면

감염되면 사랑에 빠지는 ‘톡소 바이러스’ 때문에 택선(배두나)은 이균박사에게 사랑을 느낀다.
슈퍼항체 보유자이지만, 택선은 죽음의 앞까지 내몰리게 되고 치료실 침대에서 사경을 헤매며 꿈인지 공상인지 모를 생각을 죽음의 경계에서 한다.
살아있는 우울한 일상보다, 긍정적이고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사랑에 빠진 상태로 죽는 것이 어쩜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 (이 부분은 좀 아리다.)

두 번째 인상적인 장면

이균박사의 택선을 살리려는 헌신적인 노력+같이 개고생을 정도 쌓고, 점점 더 택선은 박사를 의지하고 신뢰하고 더 사랑한다.
관객은 바이러스 때문인지 리얼인지 헷갈린다.

마침내 택선이 완치될 수 있는 백신을 이균이 택선의 팔에 놓으려고 하자 택선이 지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이거 맞으면 나 이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이균박사 : “네..”
“그럼 다시 나는 혼자가 되는 거예요?.. 나 지금 박사님한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 이 병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이런 감정 몰랐을 거예요.”
이균박사 : “지금 난 당신이 완치되는 게 꿈이에요.”
“완치되고 나서 내가 박사님을 만났는데, 이런 감정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해요?”
이균박사 : “낫게 되면 기억을 못 할 거예요. 감정도 잊을 거예요… 감정은 기억 못 해도, 이 시간들은 우리 몸속에 남을 거예요.”
“기억할 거예요. 당신은 나를 치료하러 왔고,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졌고요. 그리고… 한동안 너무 아팠지만…. 행복했었다는 거….”
그리고 이균에게 파란 백신을 맞으며 이균을 뚫어져 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에게 기대어 안긴다…
(이 장면도 배두나의 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어 또 한 번 눈시울이 아린다.)

별것 아닌 거 같은 이 영화를 다 보고 두 작품이 떠올랐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영화 ‘이터널선샤인’
그리고, 또 한 작품,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이야기한다.
“사랑은 병이야.”

사랑은 바이러스(병)와 닮아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로 우리의 삶에 침투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몸과 마음을 감염시킨다.
항체처럼 우리는 상처와 경험으로부터 면역을 만들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변이로 다가와 그 방어막을 뚫고 들어온다.
자가면역처럼, 때로는 사랑이 우리 스스로를 공격하기도 한다.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지켜내려는 불안과 집착은, 결국 내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바이러스가 된다.
격리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임시 조치이지만, 사랑의 본질은 결국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기에 완벽한 격리는 불가능하다.
사랑은 치유의 항체이자 파괴의 바이러스다.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며, 동시에 우리 존재의 본질과 밑바닥을 드러낸다.
바이러스(사랑)는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다가 떠나고, 치유하고, 회복하면 면력력이 생겨 더욱 단단해지기도 한다.

사랑과 바이러스는 일상생활 곳곳에 공기처럼 숨어 언제 어디서 나에게 어떤 형태로 침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난 영화 ‘바이러스’의 배두나의 사랑바이러스처럼, ‘이터널 선샤인’의 커스트 던스트의 아래 유혹의 시처럼 사랑에 빠지는 선택을 할 것이다.

흠 없는 처녀 사제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세상은 그녀를 잊고, 그녀는 세상을 잊어가네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모든 기도는 받아들이고, 모든 소망은 내려놓는구나.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이 시는 사랑의 번뇌에서 벗어난 평온을 찬양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평온 속의 공허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한번 사는 인생 아쉬워하기 싫고, 후회를 남기기 싫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감정은 그 누구에게나 식게 마련이다.
열정의 사랑의 감정은 완전히 소비될 수 있다. 이 사랑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고, 열정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은 너무 뜨겁기 때문에 불안하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차가워지거나 온도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심하면 집착을 부른다. 뜨거우면 식는 게 세상의 이치다. 유통기간이 있는 사랑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고도의 사랑은 열정이 식은 후의 사랑이다.
사랑의 환상(병)에서 벗어나는 시기이다. 진짜 그 상대방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고도의 사랑에는 정열은 식었으나, 서로에 대한 배려, 각자 다름의 이해, 그리고 존경과 신뢰가 있다. 이 고도의 사랑에는 유통기간이 없다. 깊은 믿음과 신뢰로 불안대신 같이 있든 따로 있든 상대방 존재 자체가 나에게 평안을 준다. 사랑은 존재다.
이 고도의 사랑은 아픔과 슬픔, 행복, 고통의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여 면역이 생긴 성숙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단계이다.

이균 박사의 말처럼,

감정과 기억은 흐려지고 지워져도,

그 시간들은 우리 몸속에 영원히 남아,

우리는 또다시 병인 걸 알면서도

고도의 성숙한 사랑을 할 것이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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