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있다
좋은 영화는 답을 주지 않고, 좋은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의 변주인 박찬욱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겁다.
이떤이들은 노잼이다. 말이 안된다. 어떤이들은 최고의 작품이다. 너무 재밌다.
이것 또한 관객 각자의 몫이다.
관객이 보이는 만큼, 느끼는 만큼, 분석하는 만큼, 본인의 프리즘에 따라 영화는 변형한다.
장면, 대사, 음악, 구도등의 모든것이..영화의 연주자는 본인이다.
영화를 감상 후 본인의 살아오면서 체화한 모든것들과 섞여 재미와 사유를 일으켰다면 그 영화는 당신에게 좋은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할 꺼리가 많은 유머가 곁들여진 영화를 좋아하기에 이번 박찬욱의 어쩔수가 없다는 종합선물세트다.
우선 영화의 장면(씬)에 대해서 내 생각을 연주해 보겠다.
1) 오프닝(완벽한 일상, 장어구이 및 가족 포옹씬) / 분재씬
유만수가 가족과 함께 정원을 가꾸고 장어를 굽고 평온한 일상을 즐기며 가족의 모두 포옹하는 씬(강아지 두마리 포함)에서 만수는 이야기한다. ‘다 이루었다~’라고 하는 대사와 함께 먼가 어색한 포옹에 조금씩 강아지도 아이들도 움직이며 포옹의 균열이 본인다. 포옹은 일대일일때 가장 핏이 맞고 살이 맞닿는 부위가 가장 많아 서로 안정감을 느끼고 두사람이 하나된 느낌이 든다. 먼가 어색했다. 다~이루었다란 말과 함께 모두 떠안으려는 가장의 몸짓안에 앞으로의 닥칠 균열과 불행이 느껴졌다. 다 이룬 완벽한 삶과 완벽한 인간은 없다. / 자연스러운 형상이 아닌 인위적으로 구부려지는 분재의 가지는 인위적으로 구부려서라도 어떤 것을 유지하려는 것은 인간의 통제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 자신의 질서(고용, 생계)가 흔들리거나 무너지면서 만수도 흔들이며,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다시 살인을 통해 자신의 질서를 되찾고자하며, 고시조(차승원)의 시체처리에도 분재형 방법의 사용은 블랙코미디의 진수이다.
2) 구범모(이성민) 제거 씬과 버물어진 가장의 무게와 고집 그리고 아내들
인상적인 씬중에 하나이며, 미장센, 음악, 자세한 대사등은 VOD가 나오면 다시 보고 미시적 분석을 하기로 하며, 거시적 사회학적 관점으로 씬을 연주하여 음미해 본다.
만수와 범모 모두 제지(종이) 전문가이며 둘다 실직했다.
둘은 자신의 직종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며 회사에서 해고된 같은 처지이지만 대처 방법은 판이하다.
범모는 어두컴컴한 자신만의 서재(동굴)에서 음악을 들으며 술만 마신다. 수동적이다. 아내 아라(염혜한)는 남편의 직종의 변화를 권유하지만 그는 구식에 갇혀 변화를 거부한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술만 퍼먹는 남편 대신 건강한 젊은 남자에게 성욕을 푼다. 남편보다 주도적이다. 결국 아라는 범모에게 ‘내가 뭐라도 하라고 했잔아!’라고 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수동적이었던 남편 범모에게 총을 쏘아 살해한다.
만수는 범모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이다. 자신의 직종과 직업을 되찾기 위해 경쟁자들의 살인을 계획한다. 우여곡절끝에 구범모, 고시조, 선출 3세명의 제지회사 경쟁자 살인에 성공한다. 만수의 아내 미리도 만수에게 얘기한다. 다른일해도 돼.. 꼭 제지회사여야 해? 미리도 만수에게 변화를 주문한다. 만수의 아내는 제지전문가 만수를 사랑한게 아니라 그냥 만수를 사랑했다. 하지만 만수도 변화를 거부한다.
만수는 살인으로 제지공장의 일자리를 되찾지만 아내를 공범으로 만들었다.
일련의 씬들은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변화안에서 개인 실직의 문제가 어떻게 윤리 붕괴의 시작이 가족내에서부터 시작되는지 보여준다.
3) 마지막 벌목과 음악
자본주의가 자연을 착취하는 장면으로, 인간 노동자도 마치 나무처럼 베어지는 구조라는 메타포다. 또한 유만수의 정원 세계와 대비되어, 내가 가꿔온 삶조차도 밖의 시스템 앞에서는 무너진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클래식 음악과 함께 슬프고도 잔인하며 비극적이며,
이 영화를 전체를 시처럼 풀어낸 씬 냄새가 나며, 음악에서 서슬퍼런 벌목기계의 쇠소리와 잘려나가는 나무들의 비명과 절규 그리고 묘한 잔인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 영화를 혹자들은 생존이 불확실해지는 공포감, 미래의 불안,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 등으로 해석하며, 특히 AI 시스템과 연결되어, 인간이 기계,시스템에 의해 점점 밀려난다는 암시로도 읽히며 암울한 미래를 반영한다고들 한다.
사실 우린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변혁의 시대이다.
그 안에서 또 우리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할 것이다.
경쟁.. 자본주의의 장점이기도하고 단점이기도한 경쟁..
변혁의 시대에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답은 없다. 태도가 답이다.
제지전문가인 만수와 범도 모두에게 평생 일해온 제지회사에서 해고는 그들에게 사회적 사형선고로 받아들여진다.
사형선고가 아니라 경직된 인생과 똥고집을 버릴 수 있는 유연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에 맟춰 자신의 태도와 행동도 바뀌어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
격동의 시대가 개인 변화의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인생의 태도를 바꾸면 변화는 시대의 선물일 수 있다.
답은 영화의 아내들(미리, 아라)에게 있다고 본다.
장면 2)번애서 그랬듯 아내들은 제지전문가 남편을 사랑한게 아니었다. 그냥 남편 그 사람 자체를 사랑했다.
그래서 어쩔수가 없는 해고의 상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진심으로 응원하며 영상통화를 하고, 뭐라도 하라고 구체적으로 ‘당신 음악 좋아하니까 음악까페 하는게 어때? 내가 돈은 구해볼께?’라고 말하는 아라(염혜란)에게 만수와 범모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똥고집을 부린다.
연봉이 낮아지고 집이 좁아진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낮아지고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위기때 더 똘똘 뭉치고 응원하고 사람을 주는게 진짜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잘 나갈때는 모두가 나를 사랑한다. 아이러니하다.
시대의 기류에 편승하고 변화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실히, 열심히 뭐라도 하다보면 기회는 또 온다.
혹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방식으로 재밌게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는 방법은 널려있다.
가장의 무게와 중산층 이상의 삶에 욕망의 비루함은 내려 놓고 하루하루 진정성 있게 나답게 재밌게 살면 그만인 것이다.
아래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란 말 처럼 수많은 인간 군상 들이 일으키는 사회 현상과 복잡다단한 파열음이, 저 멀리서, 예를 들어, 우주에서 바라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장면들로 가득 차 보일 수도 있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가 죽고 몸과 마음이 쇠락한다.
죽는다는 건 비극이고 슬픔이지만 슬픔의 공간의 내용을 행복과 재미로 채우면 된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 shot – Charlie Chaplin (1889-1977)
만수, 범도 모두 어쩔수가 없지 않았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했어야 한다.
어쩔수가 있었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