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사회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계급사회라고 생각한다.
충격적인 미래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2090년엔 새로운 계급사회가 도래한다고 한다.
4가지 계급으로 나뉘며 가장 정점인 1계급에는 플랫폼과 기술을 소유한 기업인이며 0.001%를 점유한다.
2계급은 플랫폼 스타들이다, 인플루인서, 크리에이터, 연예인등 강력한 개인 브랜드를 가진 이들이며 0.002%이다.
3계급은 가장 특이한 계급으로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한 AI들이 이 계층을 차지한다. 육체노동은 물론 의사, 변호사, 회계사등 전문직까지 모든 영역에서 AI가 인간을 대신한다. 이들은 쉬지 않고 일하며, 인간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인간이 아니기에 점유율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4계급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불안정한’이라는 의미의 ‘프레카리오(precario)’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한 노동과 생활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계층을 일컫는 용어이며, 예를 들어 쿠팡이나 배민기사등으로 플랫폼에 종속되어 소득을 얻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충격적으로 이들은 인구의 99.997%를 차지하며, 기존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 의식이 약하며,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사회의 대다수이지만 정서적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플랫폼에 길들여져 기존 노동자 계급과 달리 혁명이나 개혁에 취약할 경향이 아주 높다.
싸늘한 미래보고서이다.
지난주 OTT 플랫폼의 습격으로 망해가는 대기업 계열 극장에서 감상한 폴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 영화 ‘One battle after another’는 계급과 혁명에 대한 심각하고 화려한 액션의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내 예상을 처참히 무너뜨렸다.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의 영화는 독창적이고 특별하여 조롱당하는 재미가 있다. 관객을 가지고 논다.
부기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드렁크 러브, 그리고 가장 명작이라고 생각되는 필립 시모어 호프먼,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마스터’에서도 관객의 예상은 대부분 빗나간다.
그 흔한 영웅서사나 클리셰는 없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과격 혁명을 하는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16년이 흐른 뒤, 후유증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무너진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딸 윌라.
하지만 고등학생 윌라의 생부는 과거의 숙적이었던 ‘스티븐 J. 록조’(숀 펜).
혁명의 동지이자 밥의 짝이었던 윌라의 생모는 밥보다 혁명에 열성적이며 록조와 묘한 사이이다.
윌라의 엄마 퍼피디아는 프렌치 75의 행동대장으로, 밥의 연인이다. 이민자 수용소를 습격하던 과정에서 괜히 자아도취에 빠져 록조 대위에게 얼굴과 이름을 까면서 성적 모욕을 주는데 하필 이를 계기로 성정체성을 깨달은 록조의 집착을 불러 일으키는 최악의 실수를 하게 되고, 그 후 그의 스토킹에 뒤를 잡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비밀로 록조와 섹스 파트너 관계가 되며 윌라를 임신하게 된다.
윌라의 생물학적 정체성은 백인 우월주의 아빠(록조)+극좌 무장 단체 과격 혁명가 엄마(퍼피디아)이다.
사상적 상극인 아빠와 엄마는 육체적 결합을 통해 딸 윌라를 세상에 내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윌라는 생물학적으로 계부인 밥이 키운다.
16년 후 계급투쟁과 혁명은 그대로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윌라는 16세 건강하고 당돌하고 똘똘한 고등학생이다.
한편 기득권 백인 우월주의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자신들의 행동대장인 록조를 자신의 모임으로 가입시킨다.
록조는 영예로운 클럽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더 강고한 그들만의 상위계급으로의 편입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제거해야 한다. 제거의 대상은 자신의 과거인 친딸 윌라!
이때부터 관객은 PTA에게 조롱당한다.
묘한 음악으로 점점 긴장감속에 관객을 빠지게 하지만, 왠지 밥(레오)은 딸을 구출하기엔 너무 허술하다. PTA영화엔 영화 테이큰 같은 아빠의 영웅서사란 없다. 묘한 긴장감을 주는 음악으로 긴박한듯하며 조마조마하나 기대 하나 하나 빗나가게 함이 이상하게 관객에게 조롱당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록조 또한 엄청난 빌런은 아니며, 먼가 나사가 하나 빠진 근육질 바보 로봇같다. 사실 극에서 진짜 빌런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이다.
여기가 가장 상위의 계급이다. 그들은 법위에 군림한다.
마지막 추격씬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꿀렁이는 삭막한 황야지역에서의 차 추격씬은 신박하다. 손바닥에 땀을 나게 할 정도로 극장에서 관객에게 어지러움과 구토를 유발하며 한편의 계급투쟁같은 카 체이씽 장면을 펼친다.
계급으로 상징되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VS 근육질 하수인 VS 허술한 기력없는 혁명가 아빠 VS 아직 어려 겁없는 딸 윌라
결국 영화에서는 기득권측 일원들은 죽고 크게 다치고 밥과 윌라는 살지만 영화제목처럼 계급투쟁과 혁명은 미래에도 또다른 전투나 혁명이 이어질 것을 예고하며, 시대가 변해도 계급의 역사는 반복한다는 사실을 은유한다.
영화에서 말한다. 300년전이나 16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신분제도는 없었졌지만 여전히 계급사회다.
션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는 성노동자 아노라와 러시아 재벌의 철없는 아들의 갑작스런 결혼과 이혼을 통해 계급사회를 씁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수준높고 재밌지만 씁슬한 계급우화이다.
마지막에 아노라를 위로해주고 아노라가 안겨 펑펑우는 상대는 같은 계급의 말없지만 의외로 다정하고 옳은말을 하는 기득권 계급이 고용한 가장 낮은 계급의 하수인 이고르이다. 마지막에 차에서 이고르에게 먼저 다가가 관계를 하면서 그를 때리고 안겨 펑펑 운다. 자신에 대한 애증의 은유로 슬프고도 가장 처연한 섹스씬이다. 우리는 영화 후반부를 보고 금권주의로 점철된 우월주의 선민의식 그리고 전혀 우아하고 정의롭지 않은 계급사회의 보이지 않는 철옹성을 느낀다.
작고하신 소설가 조세희 작가님이 말한것처럼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변화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애석하게 지금도 여전히 ‘난쏘공’은 읽히고 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나는 어느 계급일까?
우린 록조나 아노라처럼 계급의 이동을 위해 남몰래 발버둥치고 있지 않나?
당신은 순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