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가난을 키우지 않는 법

by 라온제나

엄마는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가난해서 힘들다거나 삶이 고단하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법도 없었다. 가난은 조금 불편한 형편일 뿐 죄가 아니라고,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말고 세상의 무게에 눌리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다.


“부자라고 밥 네 끼 먹는 거 아니고, 여름에 옷을 몇 벌 더 껴입는 것도 아니야.”
부자나 가난한 이나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우리의 상차림이 조금 소박할 뿐 생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니 고개 숙이지 말고 어깨를 펴라고, 하고 싶은 말은 당당히 하되 자신감을 잃지 말자고. 엄마는 그렇게 말로 가난을 키우지 않았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찾아온 갑작스러운 결핍 앞에서 엄마가 선택한 것은 비관이 아닌 침묵이었다. 가난 속에서 가족의 품격을 지켜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았기에, 엄마는 비관할 시간에 차라리 입을 닫고 몸을 움직였다. 그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견뎌야 하는 가족들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이자, 당신이 짊어진 가장 무거운 사랑이었다.


그때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물질적 부족이 아니었다. 더 나아갈 곳 없는 막다른 길목에서, 혹여나 가족이 흩어질지 모른다는 서늘한 두려움이었다. 엄마는 그 절벽 끝에서도 기죽지 않고 그 무거운 공포를 혼자 삼켜내며 우리를 붙들었다.


이제야 엄마의 굽은 뒷모습을 보며 가만히 되물어 본다.
그 깊은 침묵은 사실, 엄마에게도 거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나였다면 진작 포기했을 그 모진 시간들을 엄마는 어떻게 그토록 묵묵히 견뎌내셨을까.


아는 것과 살아내는 것이 다르기에 엄마처럼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 절감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두려움을 집어삼키며 가족이 흩어지지 않게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엄마의 지난날이 너무나 고맙다.


삶의 비바람 앞에서도 비관 대신 침묵으로 자리를 지켜내던 그 모습은, 세월이 흘러 다시 되새겨봐도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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